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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Sep 13. 2019

명절에 친정엄마와 호캉스 가는 큰 며느리

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딸. 데리고 와줘서 고마워 정말 좋다.”


아빠 가시고 처음 맞이하는 명절이다.

하필 나는 형제도 없어서, 그 큰 집에 엄마 혼자 덩그러니 계실 것을 생각하니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와 둘이 오도카니 앉아 보낼 생각을 하니 좀 궁상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였다.

급하게 서울시내 소재 5성급 호텔을 예약했고, 아이를 남편과 친가에 보내고 친정엄마와 호텔로 향했다.


나는 시가에 잘 가지 않는 며느리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암 확진 이후, 공식적으로 왕래를 끊었다. 시집 식구들과의 갈등과 스트레스로 인한 분노의 감정 같은 건 이미 옛이야기이고, 그냥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마음 편하게 살고 싶었다.


내가 있어야 할 곳.

아빠가 세상을 떠나시고 나니,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더욱 선명해졌다. 명절에 내가 있어야 할 곳은 혼자되신 우리 엄마 옆이다.

그래도 명절인데, 시댁에 먼저 갔다가 일찍 친정으로 넘어가서 세 식구 오붓하게 있는 아름다운 광경을 선사해드리는 게 사람 된 도리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빠가 계실 때에도 두 분은 딸 없이 오롯이 두 내외가 맞이하는 명절날 아침을 쓸쓸해하셨다.

앞으로는 명절 연휴에는 엄마와 서울시내 호텔에서 맛있는 것 먹으며 지내겠다는 내 결정에 엄마는 시어머니가 서운해하시겠다고 염려를 하셨다.

뭐, 나야 이미 내놓은 며느리이기도 하고, 사실 어머니에게 나라는 존재는 시어머니 당신의 소중한 큰아들과 손녀에 딸려와 음식이라거나 아이 뒤치다꺼리를 하는 며느리라는 호칭의 여자 아니던가.


치매와 노환으로 고생하셨던 시어머니를 공양하셨다는 우리 시어머니의 입장에서는 큰며느리가 이모양이라 기가 막히고 괘씸하실 테지만, 사실 어머니의 효도에 대한 보상이라는 것은 며느리가 아닌 아들에게 받으셔야 하는 것이 아닐까. 남자들은 결혼을 하면 느닷없이 효자가 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남편과의 불화를 야기하는 것 중 “우리 남편은 저엉말 효자예요.”라는 이유가 그렇게 큰 비중을 차지한다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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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앞두고 남편이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내가 아내를 앞세워 효도를 하는 남편이 될까 봐 두려워.” 저엉말 효자여서 문제라는 남편의 본질적인 문제는 효자인 것이 아니다. 곁에 있는 타인을 앞세워 효도를 하는 행위가 바람직하고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것에 있는 것이지. 그런 의미에서, 내 남편은 참 꾸준히 노력 중이다. 물론 사고방식이 이렇게 생겨먹는 내가 옆에 있어서 가능한 것이겠지만 말이다. 군대에서도 하루도 빠짐없이 안부전화를 드렸다는 태생적 효자인 내 남편, 그는 참으로 정성을 다해 그의 부모님께 스스로 효를 다 하고 있다. 그 덕에 나는 내 부모님에 대한 효를 다 할 수 있으니, 생각하면 할수록 고마운 일이다.


온전히 핏줄로 연결된 가족이 모여 즐거운 건지 엄마와 편안히 즐거운 시간 보내라고 배려를 해주는 것인지, 아이의 실시간 사진 같은 것도 없는 연휴 첫날 밤이다. 예쁘게 키워 공주처럼 입혀 보낸 어머니의 손녀가 이제는 제법 말도 노래도 앙팡지게 잘해서, 아마 어머니는 그 아이 보시는 즐거움이 상당하시겠지.


낮에  로비에서 커피를 마실 때만 해도 뭐하러 귀찮게 집 밖에서 먹고 자고 다니느냐던 엄마의 표정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좋다.

좋다.

고맙다.


편안하고 풍요로운 명절.

아빠랑 사시며 이미 좋은 곳들 많이 다니셔서 아무런 미련이 없다 하셨으면서도 명절날 호캉스는 생각도 못하셨다 했다.

하루 종일 호텔에서 놀고먹고 구경하고 뒹굴거렸다.

그 누구도 손에 물을 묻히지 않는, 편안함.

배가 고프면 룸서비스라는 게 있는, 풍족함.

진정 편안하고 풍족한 명절이다.

송편과 산적이 없어도 아쉽지 않다.

나는 누구네 집 큰 며느리이기 이전에 우리 집 외동딸이라고 정체성이 정리되니, 모든 것이 쾌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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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앞으로는 명절마다 이렇게 다니자.”

내가 예약 잘해볼게.


풍요로운 명절이 뭐 대수인가.

몸 편하고 마음 편하게 잘 먹고 잘 쉬면 되는거지.


 호텔 이곳저곳을 구경하러 다니다가, 문득 아빠 생각이 났다.

“엄마, 아빠가 하늘에서 우리를 보시고 뭐라 하실까

?”

허랑방탕하게 놀고 있다고 하시려나?


잘했다 하시며 웃고 계시겠지. 슬픔에 빠져있지 않고, 예쁘게 즐겁게 좋은 것 먹으며 잘 쉰다고. 잘했다고.


이 글은 박민트씨의 브런치북 <우리가 언제부터 시집을 갔다고> 에 이어지는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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