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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Dec 07. 2019

개운법, 그 쉬워 보이는 거짓말

모태신앙 반항기

금 기운을 보충하려면 흰색을 사용하시고, 운동도 금속을 이용한 종목으로 하세요. 등산을 간다면 금기운이 강한 산으로 가서 바위 위에서 쉬는 것이 좋습니다. 특정 시간에 금은방에 가면 금기운이 올라갑니다. 흰색 지갑을 쓰세요. 방향은 서쪽이 길합니다.

또 뭐가 있었더라..

운을 좋게 만든다는 것이 소품과 행동 방식 몇 가지를 바꾸는 것으로 되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또 속았다.

개운
사람들은 “개운”하다 라는 말을 마치 무언가 특별한 행위를 통해 악운을 막고 새로운 운의 문을 열고 가는 것처럼 여기지만, 사실 개운을 한다는 것은 매일 늘 순간순간의 내 삶을 개선해 가는 행위의 결과라 했던가.

누가?
내게 사주명리를 가르쳐준 분이.

아이를 임신하고 기초 사주명리 강좌를 들으러 다녔다. 순전히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내가 짓기 위함이었다.
독실한 개신교도이신 친정 부모님의 작명 센스는 성경책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 뻔했고 나는 그게 싫었다. 어느 유명한 절 큰 스님께서 사주를 풀어 특. 별. 히. 지어주셨다는 남편의 이름을 보자니 아이 친가에 작명을 부탁드려도 안될 것 같았다. 이 와중에 남편은 적어도 이름만큼은 사주를 풀어지어야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던 중, 마침 동네에서 기초 사주명리 강좌가 열린 것이다.
기초 명리를 배우고, 심화과정 이후에 한의학 수업으로 넘어가는 커리큘럼이었다. 어차피 나는 기초 수업이 끝날 즈음에 산달이라서, 여러모로 시의적절했다.

“부적을 지니고 뭐 하고 그럼 운이 좋아질 것 같지? 아니야. 개운을 한다는 건 말이야, 네 사주에 마무리가 부족한데 실제로 너는 끝맺음을 못할 때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는 그 시간들이 모여 네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것, 그게 개운을 하는 거거든.”

그래서 개운이라고 했다.
고칠改 운運

배우고 들어 알면서도 태생이 나태한 인간의 속성은 어쩌지 못하나 보다.
무언가 속이 상하고 앞날이 답답할 때면 여지없이 시선을 내 밖에 두고 정신없이 쉬운 방법들을 찾아다니기에 여념이 없다.
운에 대한 유튜브를 하루 종일 보고, 느닷없이 소품들을 바꾸고, 번쩍번쩍 스타일링에 변화를 주고, 산책코스를 변경하고, 선인장도 말려 죽이는 인간이 화분을 집에 들여다 놓고, 모든 사물과 음식에 오행을 따져 취하고 버렸다.
하지만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다.

이런 바보 같은 짓을 반복하면서도 매번 또 혹하는 것을 보면 삶의 방식을 바꿔 내 것으로 만들고, 운을 새롭게 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가 보다.

한 해가 지나고 새로운 해가 오는 연말이다.
신랑이 가져다준 초록색 신년 다이어리를 보며, 초록색의 목기운이 내게 유익할지를 자연스럽게 따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에라이 인간아.
네가 그러니 인생에 개선이 없지.

나 자신에게 꿀밤을 주며 생각했다.
새해에는 조금 더 나은 삶의 방식을 체득하는 그 힘든 일을 꼭 성공하고 싶다고.
중간중간 확실한 개운법이라며 쉽고 편해 보이는 함정들이 있겠지만 잘 피해보겠다고.



파이팅이다.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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