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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Sep 24. 2020

버티는 이유

모태신앙 반항기

하루 종일 일진이 좋지 않았다.

5천 원어치 복권을 사고선 거스름돈을 받지 않고 나와버려 왕복 30분 거리를 두 번 오가고, 운전만 하고 다닌 날인데 양 발바닥에서 피가 났다. 오늘따라 내 앞에 있는 차들은 어째 다들 이리저리 갈 길을 잃은 것 마냥 양쪽 차선을 다 밟고 다녀서 사고도 여러 번 날 뻔했고 말이다.

정말 머리가 지끈거리도록 지치는 날이었다.


바짝 날이 서서 핸들을 잡고 있는 엄마의 눈치가 보였는지, 차만 타면 쉴 새 없이 떠드는 아이도 오늘만은 말을 아꼈다.

거스름돈을 받아 집으로 오는 길은 하필 퇴근시간이었다. 꼬리물기를 한 자동차들 때문에 교차로에서 곡예운전을 하며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종일 조용하던 아이가 말을 꺼냈다.

"엄마 나 배가 많이 고파요."


거스름돈 5천 원을 찾으러 다녀오느라 저녁식사 시간이 늦어졌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평소였으면 식사 준비를 거의 마쳤거나 식사를 이미 시작했을 시간이었다. 요즘 외식을 많이 한지라 오늘 저녁에는 꼭 집에서 끓인 된장찌개가 먹고 싶었다. 사실 거스름돈을 안 받고 온 것도 된장찌개에 넣을 감자를 사러 가서야 알았다.

마침 아침에 해놓은 밥이 솥에 있으니 집에 가서 찌개만 금방 끓이면 될 일이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육수 물 올리고, 육수 끓는 동안 양파랑 애호박이랑 감자 썰고 절단 꽃게도 꺼내 씻어 놓고, 된장이랑 재료들 넣어 끓이는 사이에 애 씻기고- 그러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입이 트인 아이는 배가 고프다고 칭얼거렸다. 뒷좌석에서 아이는 계속 징징대고 길은 막힐 대로 막혀 신호마다 다 걸리는 상황.

'아, 거, 운수 한 번 더럽게 안 좋네-'


문득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햄버거 가게가 생각났다.

드라이브 스루 매장이니, 어차피 밀려서 가는 길에 잠깐 들러 치즈스틱을 사주면 되겠다 싶었다.

(드라이브 스루 초입에서는 역주행하려던 차를 만났다.)

무사히 주문을 마쳤다.

내 앞에 주문이 밀려서 5분 이상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주문을 하고 멍하니 운전석에 앉아 있으니, 그제야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이 귀에 들어왔다. 종일 라디오를 틀고 다녔음에도 무슨 음악이 나왔는지 전혀 귀에 들리지 않았는데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세상의 모든 음악"이었다. 나는 아직도 라디오를 컴포넌트로 듣는다. 중고등학생 시절, 라디오 주파수를 손으로 맞춰가며 듣던 습관이 아직도 남아있는 탓이다. 하지만 유독 이 집에서는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아, 이사를 온 후로는 클래식 FM을 듣지 못했다. 그나마 운전을 하고 있을 때는 차에서 들을 수 있었지만, 내가 참 좋아했던 세음을 하는 시간은 주로 집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고 먹는 시간이니 들을 수가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듣는 세음이네."

중얼거리던 찰나, 정말 오랜만에 듣는 가곡이 귀에 들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화내지 말라고..



세월호 추모곡으로 알려진 "내 영혼 바람 되어"를 부른 바리톤 송기창 님의 곡이다. 푸시킨의 명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번안해 작곡가 김효근 님이 곡을 썼다고 한다.

나는 이 곡을 항암을 하던 중에 처음 들었다. 당시 여러 프로그램에서 불리던 "내 영혼 바람 되어"가 귀에 들릴 때마다 채널을 돌려버렸던 시절이었다. 추모곡이라서 싫었다. 그때는 근조화환을 실은 차가 눈에 보이면 눈을 감아버렸고, 장례식장 광고가 보이면 고개를 돌려버렸었다. 그냥 모든 것에 다 조심하던 때였다. 그나마 이 곡은 같은 사람이 불렀는데도 유독 바리톤의 음색이 너무 좋아서 여러 번 들었는데, 그마저도 어느 순간엔가 화가 나서 꺼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힘들어 죽겠는데, 죽어라 힘을 내 버티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을 내고 웃으면 다 잘 된다는 사람들의 인사에 짜증이 났던 시점이었다.

그 뒤로 듣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이다.

볼 것이라고는 답답한 담벼락과 조각하늘밖에 없는 차 안이라 그랬을까.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눈물이 났다.



Should this life sometime deceive you

Don't be sad or mad at it!

On a gloomy day, submit

Trust that fair day will come, why grieve you?

Heart lives in the future, so

What if gloom pervade the present?

All is fleeting, all will go

What is gone will then be pleasant

-알렉산드르 세르게예비치 푸시킨


힘들고 슬픈 일들은 연달아 온다고, 정말 그런 시기를 보냈다.

기껏 받은 아파트 청약을 날리고

아빠가 의료사고를 당하시고

나는 암에 걸리고

항암을 하던 중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지금이야 대략 네 줄로 쓸 수 있는 과거라지만, 그때는 미치고 환장하리만큼 힘들었던 시절이었다.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면 어떻게든 해결을 해 내며 살았던 인생이기에 어떤 일이든 내가 마음먹고 나서면 다 해결이 되는 줄 알고 살았는데, 그게 아님을 밑바닥 끝까지 내려가며 확인을 했던 시절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발버둥을 치면 칠수록 내 힘만 빠져 더 깊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손발이 다 묶인 것 같았다.  

그저 눈 감고 귀 막고, 그저 지금 현재를 살아내는 것 말고는 없었다.

정신이 무너지면 죽을 것 같았다.

죽으러 나갔다가 못 죽고 잡혀 왔는데, 또 그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그냥 눈을 감고 귀를 막아버렸다.

그렇게 버텼다.


그 시절의 나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이 종종 묻곤 했다.

어쩌면 그렇게 굳건하고 단단하게 잘 버텼느냐고.

그들의 의도를 나는 안다.

신앙의 힘이 있어서 버텼다라거나, 다 주님의 덕으로 버텼다는 간증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원하는 답을 끝내 해주지 않았다.

그저 덤덤하게 견뎠을 뿐이니까.



사람들은 정말 쉽게 말을 한다.

신을 간절히 붙잡고 매달리면 다 살려주시고 고쳐주신다고.

그러다 세상을 떠나면 그건 하늘의 뜻이라고.

게다가 말들은 또 왜 그리 길고도 많은지.

진리를 전한다면서 왜 그리 말이 긴지 모르겠다.

원래 진리와 핵심, 고갱이는 단순하고 간결한 건데 말이다.

나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살아있는 것도 신의 은총이라는 것을.

아빠가 의료사고를 당하신 후로 거의 반년 가까이 살아계셨던 것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이 나이에 암 환자가 된 것은 분하지만, 그래도 일찍 찾아 비교적 수월하게 지나올 수 있었던 것 또한 은혜인 것을.

하지만 이 간단한 세 줄로 정리되기까지 내 마음 밭은 지옥이었다.

기도를 열심히 해서 살려주신다면, 그럼에도 죽는 건 신에게서 버림받는 것이고 내가 더 기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냐고  따지고 싶은 걸 누르고 눌렀다.

아빠가 의료사고를 당하시고 두 번의 심정지가 왔을 때, 주변에서 기도 좀 하셔서 은사가 많다는 분들이 그랬다.

여기서 떠나실 것이니 준비하라고.

그건 누구나 아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틀렸다.

아빠는 의사가 환자 듣는 앞에서 이틀을 못 넘길 거라는 말을 들은 후로 반년을 넘게 사셨다.

신의 응답이랍시고 이웃의 가슴을 찢어 놓던 그들은 알까.

자기들이 한 짓이 결국 신의 이름 팔아 돈을 벌어먹는 예수 무당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는 분이라는 고백을 하면서도 그들은 그걸 몰랐던 것 같다.

그때 알았다. 신앙이라는 것은 그렇게 쉽고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나는 늘 이렇게 대답을 했다.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그저 버텼던 것뿐이에요."

기도조차 할 수 없이 힘이 들어서, 그저 버텼을 뿐이었다.

술도 퍼마실 수 없고 화를 낼 기운도 없어서, 그저 이 또한 지나갈 거라 믿고 견뎠다.    

그저 신에 대한 의리를 저버리지 않으면 신 또한 그러하리라 믿었을 뿐이었다.



삶이 힘든 이에게 해 줄 말은 그리 많지 않다.

힘들어 죽겠다고 말을 한다 해서 "그럼 나가 죽던가."라고 할 수도 없고 말이다.

정말 힘든 사람은, 이미 죽도록 힘을 내고 있는 중이다. 그가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그러니 힘내라는 말에 그토록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사실 그 시기의 인생은, 무슨 말을 들어도 다 상처로 알아듣기 쉽다.

돌이켜보면 나는 사람들의 열 마디 말보다 조용히 주고 가는 닭백숙이 고마웠고, 백 마디 말보다 병원에 동행해 주는 그 걸음이 고마웠고, 천 마디 말보다 내 새끼의 생일과 안부를 챙겨주는 말이 더 고마웠다.



힘든 날들을 참고 견딘다는 것이 긍정의 힘으로 억지로라도 웃으며 힘을 내는 것과 같지 않다는 것을 이제야 깨닫는다. 하긴, 러시아 문학에 리얼리즘을 일으킨 그가 긍정의 힘 같은 걸 내포했을 리 만무하다.


곡을 따라 흥얼거리다가 문득, 노래 속 화자가 나에게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속삭여 주는 것 같았다.

순간 울컥하며 눈물이 흘렀다.

종일 인상 찡그리고 앉아 운전을 하던 엄마가 느닷없이 라디오 볼륨을 올린 채 엉엉 울자 아이가 물었다.

"엄마 이 노래 되게 소중한 노래야?"

우느라 제대로 답도 해주지 못했다.

노래가 소중하다기보다는, 너와 내가 견뎌온 날들의 추억이 생각나서 울었다고 말해줘야 했는데 말이다.



운수 사납던 하루가 지나갔다.

잘 견뎠으니 내일은 기쁨의 날이길 바랄 뿐이다.




상지 | 商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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