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닥투닥 황박이
“대체 집에서 뭐해?”
석가탄신일 연휴.
모처럼 집에 있는 남편이 말했다.
대체 집에서 뭘 하길래 바닥에 쌀알이 밟히느냐고.
요즘 들어 아이가 쌀통을 뒤적이며 놀았었다.
하지 말라고 혼내면 숨어서라도 뒤적이며 노는 게 그 나이 어린이의 심리.
그리고 나는..
한 이틀, 로봇청소기를 돌릴 정신도 없을 정도로 분주했다.
몸과 마음이 아팠고 분주했다는 게 더 정확한 변명이 될 듯하다.
이사와 코로나 19로 인한 가정보육을 하며 챙기지 못한 시험 접수가 생각보다 큰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래도 하나 챙긴 시험이라도 잘 준비해보자 다짐해봐도, 현실은 늘 이모양이다.
기껏 집에서 쉬는 날 집안꼴이 이모양이라 아주 송구하다고 말을 꺼냈다.
나는 그동안 내가 양보하고 못 챙긴, “내 중요한 일” 하러 나갈 테니 두 부녀끼리 잘 계시라고 말을 던지고 책가방을 쌌다.
가봐야 커뮤니티 독서실이겠지만.
가봤자 거기인 그곳을 나는 여태 한 번도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다.
나가려는 나를 남편이 잡았다.
얘기를 좀 하자고 했다.
자기가 말을 잘못한 건 인정한다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거라는 게, 책 읽고 공부하는 게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순간 화가 났다.
그냥 책 읽고 공부하는 거 말고.
시험공부를 해야 한다고.
돌아가신 아빠하고 약속도 했고, 나도 내 이름으로 살면서 돈 벌고 싶어서 나는 이 시험을 봐야 한다고.
그걸 몰라서 지금 물어보는 거냐고.
나는 당신이 내 인생에 도움이라고는 개미 눈곱만큼도 되지 않은 “책 집필”을 한다고 했을 때, 독박 육아로 미쳐가도 군말 없이 뒷바라지해줬고
일주일 내내 독박 육아하고 맞이한 주말에 낮엔 출근하고 저녁엔 친구랑 골프 치러 나간다고 해도 군말 없이 그러라고 해줬는데
왜 내가 내 공부를 하고 내 일을 하는데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지?
왜 내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냐고.
사과는 받았지만
여전히 나는 기분이 나쁘다.
문득 여자에게는 생활의 자립을 꾀할 수 있는 돈과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사색할 수 있는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던 버지니아 울프가 생각났다.
근데 그 버지니아 울프는 자살을 했다던가.
어제 읽은 <일 할 수 없는 여자들> (최성은. 쓰리체어스)에서 여자 석박사 20대 후반, 30대면 시장성이 떨어진다는 문구가 뇌리에 맴돈다.
세상에 가치 있는 기여를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나름 열심히 공부했고, 그만큼의 성과도 있었다.
하지만 서연고, 그다음 순위 학벌인 나를 찾아주는 곳은 없었다.
그저 그런 잉여 인재라는 걸 그때의 나는 인정할 수 없었는데, 이제와 다시 돌아보니... 나는 애매한 고학력 잉여인간, 그 뿐이었다.
남편도 아이도 가족도 모두 소중하지만,
그 사이에서 온전히 이름으로 사는 삶은 사라지는 것 같아 늘 불안했다.
그래서 아빠가 그렇게 말씀하셨나 보다.
여자는 자기 기술이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남자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있다고.
그러니 제발 학벌 욕심부리지 말라고.
어린 나이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아빠의 그 한마디들이 이제야 절절히 와 닿는다.
그때 아빠 말 들을걸.
대학원 가지 말고 취업하고
고시공부하지 말고 9급 볼걸
언젠가 삶이 애매하고 힘들 때면 그냥 아빠 딸로 살으라는 글을 본 기억이 났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고
언제까지나 그렇게 결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나를 눈 안에서 놓친 적 없으셨던 아빠는 더 이상 곁에 계시지 않는다.
그러니 그저 아빠 딸로 살아야겠다.
공원에서 사방팔방 킥보드를 타고 달리는 딸아이를 멀직이 서서 계속 바라보고 있는 남편의 모습에서 문득 아빠가 읽혔다.
포기하지 말아야지.
그리고 꾸준히 챙겨야지.
내 삶과 내 권리를.
역시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세상에 초코파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