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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an 29. 2021

그시절에는 낭만이었고 지금은 조금 이상한, 사랑노래

탑골가요

클래식을 잘 모르는 남편은 클래식을 좋아한다.

분명 시동생을 만나면 뽕짝과 오래된 인기가요를 듣는 것 같은데, 참 희한하게도 나와 함께 있으면 라흐마니노프와 드보르작을 듣는다. 얼마나 들었는지, 악보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 곡을 다 외워버렸으니 정말 좋아하긴 하는 것 같다.

우린 신혼살림에 티브이를 들이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하루 종일 소리를 내는 전자기기라고는 냉장고와 미니 컴포넌트가 유일했다. 이마저도 새로 이사한 집에서 클래식 fm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아 가끔 밥솥에서 증기가 빠지는 소리가 저녁시간의 허전한 공기를 데우는 존재다.

이랬던 우리 집에 변화가 생겼다.

탑골가요가 들어온 것이다.

가정 보육 기간이 길어지며, 해 질 녘이 되면 카페인과 흥이 필요했다.

커피는 모카포트로 진하게 새로 뽑으면 됐다. 사실 저녁을 준비할 시간에는 세상의 모든 음악을 들으며 차분하게 마무리해야 하는데, 감정이 포근해지기는 해도 흥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주파수가 잘 잡히지 않아 지지직거리는 통에 귀가 편하지 않았다. 그러던 중 네이버에서 제공해 주는 네이버 NOW라는 채널을 발견했다.

그 안에 탑골 가요 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시절 테크노 여전사였던 이정현이 탑골 여신이 되었더라는 문장을 어디선가 본 기억이 났다.

종로에 있는 탑골공원에서 파생된 탑골 세대라는 신조어. 그 세대가 한창 젊고 예뻤던 시절에 듣던 가요라서 탑골 가요인가 보다. 뭔가 되게 마음에 안 드는 채널 이름이지만, 참 묘하게 수긍이 갔다.

"우리가 어릴 적 듣던 가요들만 나오는 채널이 있는데, 이름이 탑골 가요래."라는 내 말에 친구가 말했다.

우리가 그 탑골 세대가 된 걸 몰랐느냐고.

응. 몰랐어.



중학생 시절의 나는 터보를 좋아했다.

그 시절의 나는 김종국이 신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기에, 신성고에 가고 싶었다. 그곳이 공부 잘하는 미션스쿨인 것만 생각한 엄마도 내게 신성고에 가라고 하셨었다. 거긴 남학교였는데 말이다.

어쨌든, 룰라에도 서태지에도 크게 감흥이 없던 나는 터보가 참 좋았다.

김종국이 수능을 본 다음날, 그 수험장에 감독으로 들어갔다는 가정 선생님의 자랑 섞인 이야기를 귀 쫑긋 세우고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참, 사는데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것이었는데 그 시절 내게는 그게 참 중요했다. 참으로 보수적이셨던 부모님 아래에서 엄하게 자랐기에, 팬클럽에 가입한다던가 콘서트와 방송국을 찾아가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팬레터를 쓰고 앨범이 나올 때마다 사서 늘어날 때까지 듣는 일이었다.

이제 갓 교복을 입은 여중생의 감성에 둠칫둠칫 두둠칫한 감각은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터보 오빠들이 트위스트 킹을 부르며 춤을 추면, 비록 나는 몸치어도 영혼만은 그 스텝을 따라 밟았었다.

난 아직 사랑이란 건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터보 오빠들의 가사가 아름답고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체육 선생님이 담임이었다. 딱히 잘못한 것도 없었는데도 우린 매주 토요일이면 운동장에서 얼차려를 받았다. 대체 우리가 왜 운동장에 머리를 박고 그렇게 혼나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땐 정말 까라면 까야 했던 시절이었다. 모두가 담임을 싫어했다. 하지만 우리 반 모두가 담임을 좋아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캠핑날이 바로 그날이었다. 선생님의 특권으로 우리반만 운동장 캠핑을 했었다. 밤이면 가요를 크게 틀어놓고 아이들이 방방 뛰며 춤을 췄다. 아마 학교의 사방이 산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시절 우리들의 최애곡은 단연 터보의 노래들이었다.





교회 수련회였다.

다들 잠을 자지 않는 밤,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 터보 이야기가 나왔다.

마침 마이마이 안에 터보 앨범을 담아 온 친구가 있어서 친구들과 같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 이 노래가 나오고 있었다.

Love is..

사랑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3+3=0 은 더더욱 이해가 어려웠다. 그래도 좋았다.

노래를 듣던 한 친구가 자기 부모님의 연애 스토리를 이야기해 줬다.

원래 엄마가 연애 중이던 분이 계셨는데 양가의 사정으로 결혼을 못하게 되면서 그 남자가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를 엄마에게 소개해 줘서 두 분이 결혼을 하셨다는 사연이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잘 이해도 못 했으면서 너무나 멋진 러브스토리라고 모두가 감탄을 했던 밤이었다.

탑골 가요에서 쿵작쿵작 나오는 이 곡을 듣다가 문득 그 시절이 떠올랐다.

신기한 건, 이 노래가 더 이상 로맨틱하다 느껴지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물론 친구 부모님의 사연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준 한 남자의 순애보이니 다르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듣게 된 이 노래의 가사는 그저 웃길 뿐이었다.


혼자 짝사랑하다가 3년 만에 고백을 했는데, 여자에게 거절을 당한 남자가 있다.  

그 충격에 군대에 가면서 친구에게 그 여자를 부탁해놓고 갔더니 그 둘이 연인이 되었다는 사연이다.

근데 또 그 여자가 내가 모르는 다른 놈과 잘 되었다면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을 테니, 오히려 친구의 여자가 되어 다행이라는 남자의 이야기다.

저녁밥을 준비하며 대파를 썰다가 생각했다.

'뭐 이런 사고방식 다 있지? 여자가 물건인가?'

자기 친구가 내내 여자친구 주변을 맴돌고 있으면 그 친구는 기분이 되게 나쁠 텐데?





갑자기 진지해진 탑골 아줌마가 다 썰은 대파를 기름에 달달 볶으며 구시렁대는 사이 곡이 바뀌었다.

더 넛츠가 부른 <사랑의 바보>

당시 잘생김이 하늘을 찌르던 키 큰 오빠 지현우가 멤버로 있던 그룹이었다. 댄디한 오빠들이 이렇게 달달한 노래를 불러서 인기가 대단했다.

마침 퇴근해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던 남편에게 대뜸 물었다.

"이런 여자친구 있었어?"


어느 봄날의 인사동이었다.

첫 번째 남자친구에게 입대 전날 이별을 통보하고 만나게 된 오빠와 데이트를 하던 중이었다.

오빠가 스카프를 사주겠다고 하여 한참 고르고 있는데 매장 안에 이 노래가 크게 울렸다.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들의 데이트에 괜찮은 달달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오빠가 말을 꺼냈다. "뭐 이런 병신 같은 놈이 다 있어."


그 사람과의 연애는 오래가지 못했다. 그런 병신 같은 순애보가 첫 번째 남자친구였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결국 그 오빠와의 연애는 쉽게 끝나버렸고, 입대 전날 나에게 차이고 들어가 관심사병이 되었더라는 첫 남자친구는 그 후에도 늘 내 곁에 있어줬다. 내게 더 좋은 사람이 나타나기 전까지 나를 지켜주겠다고 했던가. 그 친구의 최애 곡이 바로 사랑의 바보였다.

그 친구에게 애매하게 보고 지내는 친구 사이도 그만 두자고 확실하게 선을 그은 후 2년이 지난 어느 날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당신에게도 저런 존재가 있었느냐 묻는 내 말에 남편은 끝내 대답을 하지 않았다.

가사를 찾아봐야 한다던 그가 내게 물었다.

“왜? 누군가의 저런 존재였어?”

물론 나는 코웃음만 쳤을 뿐 대답은 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퇴근을 한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저녁에 만들어주기로 한 제육볶음은 고기가 녹지 않아 아직 시작도 하지 못했는데 말이다. 고기가 녹지 않았다는 핑계로 맥북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이 시간, 네이버가 또다시 터보의 노래를 들려준다.

그 시절엔 정말 멋지고 아름답고 애절한 낭만이었을 텐데, 이젠 조금은 이상한 감성이 되어버렸다. 그 시절 우리 세대의 우상이었던 HOT와 젝스키스의 노래도 이 나이에 듣고 있으면 겉멋과 허세 가득한 가사에 어이없음의 웃음이 나니 말이다. 만약 나에게 아들이 있어서, 아들이 그런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면 등짝부터 한 대 때릴 것 같다. 그래도 풋풋하고 발랄했던 그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는 건 너무나 큰 행복이다.


누군가 이 글을 읽으며, 그래서 그 시절의 당신은 HOT 팬이었는지 젝스키스 팬이었는지 존재를 밝히라 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밝힌다.

당시 내 친구의 부모님들은 내가 에쵸티 팬클럽에도 가입하고 젝키 팬클럽에도 가입을 하고 유승준 집 앞에도 찾아가고 지오디 콘서트에서 친구들과 풍선을 흔들었던 걸로 알고 계셨는데, 사실은 친구들이 오빠들을 쫒아 다니면서 부모님께 혼나지 않기 위해 둘러댄 거짓말이었다.


나는 아이돌 그룹 말고 축구선수 고종수를 좋아했다.




더하는 글.


그 시절 안양 엘지 치타스와 수원 삼성의 경기가 있을 때마다, 아버지가 엘지전선에 다니시는 친구 찬스로 직관을 가곤 했다. 순전히 고종수를 보기 위해서였다.

빠르게 달리는 선수들 사이에서 고종수 선수를 찾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경기를 몇 번 보다 보니 요령이라는 게 생겼는데, 그건 바로 그라운드를 달리는 선수들을 쓱 훑어보는 것이었다. 그중 가장 새까만 사람을 찾으면 됐다.

그래서였을까.

피부가 아주 하얀 나는 피부가 아주 검은 남자와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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