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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Mar 19. 2021

얼마나 좋은 일 있으려고

오늘의 수다

"엄마 뭐 좋은 일 있어?"

하루에도 몇 번씩 아이가 물어본다.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느라 혼자 중얼거리는 엄마의 얼굴에서 웃는 표정을 보면 좋은 일이 있느냐 묻고, 안 좋은 표정을 읽으면 힘든 일이 있느냐 묻는 눈치가 생겼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응. 좋은 일은 늘 있고 생길 거야."


사실 요즘 들어 손가락 주변이 성할 날이 없다.

생각해야 할 것들이 많아서인지 쉴 새 없이 나도 모르게 손가락 주변을 뜯곤 한다.

나는 뭐가 그리 불안한 것일까.

나를 닮아 손톱 주변을 자꾸 물어뜯는 아이를 보면서,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도 소용없다.

엄마와 밤에 차 한잔을 마셔야 잠자리에 드는 의식이 생겨버린 아이는, 요즘 엄마가 같이 누워 자기 전까지 안 자고 버티는 습관이 생겨버렸다. 외동아이의 어리광을 모두 다 받아줄 수만은 없어서 지치면 들어가 자겠거니 놔두기도 했지만, 아이는 거실에서 일하는 엄마를 바라보며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기관에 있는 시간 빼고는 하루 종일 엄마와 함께 있는데, 대체 뭐가 그리 불안하고 부족한 건지 도대체가 알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하루에 한 번 이상씩은 꼭 아이에게 정색을 하게 된다.

너는 왜 또 치대느냐고.

다른 집 엄마들은 이 시간에는 아이가 잠들고 육퇴라는 걸 한다는데, 내 딸은 왜 그게 안되는 걸까.

오늘도 아이는 엄마에게 한소리를 듣고서야 방으로 들어가 울면서 잠을 청했다.


집안일도 육아도 부모님도 그 무엇도 신경 쓰지 않고 온전히 내가 할 일에만 집중했던 그 순간이 그립다.

암에 걸리기 전, 그러니까 내가 내 진로를 인문프로그램 기획자 정도로 잡았던 시절, 지원사업에 선정된 사람들이 한 호텔에 모여 숙식을 해결하며 세미나를 들었던 적이 있었다. 아이가 어렸지만 남편이 반차와 휴가를 내며 어떻게든 커버를 해줬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고마웠던 것은, 그렇게 지원을 해줬던 사실보다 그 기회 동안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몰입의 경험을 했다는 점이었다.

아침에 눈떠 밤에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 한 가지 주제만 생각하며 머릿속이 속도감 있게 착착착 돌아가는 그 느낌이란.

요즘 들어 그 순간이 그립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하원 전까지는 온전히 내 일에 집중하게 해 달라 했음에도, 모두가 훼방꾼이다.

남편은 청약을 넣어보라며 메신저로 달달 볶고 아이는 기관에 가지 않겠다고 느닷없이 떼를 쓴다.

유주택자가 청약을 넣는 것을 두고 고민하는데 해줄 수 있는 조언이라는 게 기도를 열심히 하라는 말 뿐인 엄마는 오늘도 당신의 처지가 서글프고 초라하셔서, 이 정신없는 와중에 나는 복장이 터진다.

남편이 청약을 넣자 했던 건 동네 아저씨들이 전부 넣는다 해서였고, 아이가 등원 거부를 했던 건 엄마가 일하는 동안 집에서 애니메이션 보며 놀고 싶어서였다.

오늘은 역대급으로 지각을 해버렸다.

10분이면 갈 거리를 30분이나 더 걸려버린 것이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심하지 않아 외부로 좀 멀리 산책을 시킬 예정이니 늦지 말아 달라고 아침부터 키즈노트에 알림이 울렸는데, 서둘러 나온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도로 중간중간에 공사를 시작했고, 하필 그 시간에 운전면허학원 차량들이 도로로 쏟아져 나왔나 보다.

깊은 숨을 들이쉬며 애써 웃는 나를 차 뒷좌석에서 지켜보던 아이가 물었다.

"엄마 뭐 좋은 일 있어요?"



이 모든 상황은 결코 좋지 않다.

그저 짜증을 낼수록 더 짜증이 날까 봐 애써 웃는 것뿐이고,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사고가 날 것 같아 심호흡을 하는 것뿐이다. 그냥, "오늘 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어서 등원 못하겠습니다."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집에 데리고 있을까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다.


 

남편이 아파트 청약을 날리고, 나는 암에 걸리고, 아빠가 의료사고로 돌아가시고, 이 모든 게 1년 상간에 벌어졌던 시절이 있었다.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는 시간들이었다.

이렇게 주저앉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주저앉아 이 날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버티는 것뿐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때, 우울감과 항암으로 인한 갱년기 증상으로 밤잠 못 이루던 그때 유튜브를 통해 김미경 씨의 어느 강연을 들었다.

삶이 힘들수록 공부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살면서 넘어지고 잘 안될수록 '하늘의 뜻인가 보다' 수긍하지 말고 더 박차를 가하라는 말도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조금 더 버티기 시작한 게.

쉽게 포기하지 않기 시작한 게.

쉽게 좌절을 입 밖으로 인정하지 않기 시작한 게.


오늘은 그런 날이었다.

사실 이런 순간은 늘 있었다. 차가 너무 막혀 비행기를 눈 앞에서 놓쳤던 그날도 그랬다.

그날도 나는 마음속 깊이 읊조렸었다.

'얼마나 좋은 일 있으려고 이러는지 한번 끝까지 보자.'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대체 얼마나 좋은 일 있으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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