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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Jul 08. 2022

받을 유산은

모태신앙 반항기

친정엄마를 만나 오랜 시간을 보내고 오는 주말이면 인생에 대한 회의감이 밀려든다. 

어쩌면 저렇게도 저 연세가 되시도록 세상물정을 모르실까 싶다가도,

한평생 저렇게 세상물정 모르고 세상 본인 잘난 맛에 큰소리 치며 살던 분이었으니 그러려니 싶다가도, 

왜 그 뒷감당은 다 내 몫이어야 하나 싶다. 

세상과 시장이 돌아가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온전히 엄마 당신의 감정대로 대안을 제시하는걸 듣다가 또 다시 뒷목을 잡고 나와버렸다. 


뒤늦게 남편과 드라마 도깨비를 정주행하고 있다. 

어쩌면 늘 내 기도에는 제때 응답이 되지 않거나 띄엄띄엄 응답이 이루어지는걸 보며, 내가 믿는 신은 내 기도를 띄엄띄엄 듣거나 내가 그분이 만취하실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는 것이었나 싶기도 하다. 


"어디 조그만집 구해서 내가 나가지 뭐!"

엄마의 친정 조카에게 빌려준 몫돈도 아직 받아오지 못하는, 아니 아직 이자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엄마는 합가 문제를 두고 또 엄마 혼자 조그만 집을 구해버리면 된다는 억지소리를 하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엄마는 그 돈을 받아오지 못하는 이상 혼자 독립을 하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엄마 눈에 차는 곳에는 절대 그 금액으로 공간을 구하실 수가 없다. 

결국 또 성질을 죽이지 못하고 엄마의 자존심을 잘근잘근 하나하나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훗날 내 딸이 나에게 이렇게나 말로 잔인하게 대하게 될까 문득 겁이 났다.


"언젠가는 꼭 복은 주실거니까. 주셔야만 하니까."

결국 대화의 논리에서 밀린 엄마는 얼렁뚱땅 "언젠가 주실 복, 그 기복신앙"으로 마무리를 지으려 하셨다. 

"그러게 주셔야지. 근데 늘 그렇게 언.젠.가. 라고 시기를 늘려놓으니 아주 믿어라 하고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 같아."

다른말로 잡아놓은 집토끼? 어장속 물고기?


이미 눈 앞에서 너무나도 오른 부동산 값을 보며 내가 살아온 지난 삶이 모두 후회로 밀려온다. 

살고싶은 수준의, 내가 살고싶다고 찍어뒀던 지역에서 밀려났다는 사실에 더 심한 박탈감을, 내 아이에 대한 미안함에 시달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나마 더이상 밀리지 않을 수준의 어느 지역엔가 내 명의의 집과 땅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 다행이라 해야 할까.  


친정엄마와 또 싸웠다는 내 말에 어린이집 엄마들 모두가 나를 나무랐다. 

엄마든 시엄마든 하여간 엄마들과는 싸우면 나만 손해라는게 아이셋을 낳아 키우는 워킹맘 언니의 조언이었다. 엄마들의 도움 없이 네가 어떻게 애 키우면서 일 하면서 살거냐는게 늘 들으면서도 까먹는 이유였다. 


"엄마, 만약에 내가 이 집으로 합가를 하게되면, 합가를 하고 계속 이 집에 살다가 저 어린이가(딸이) 중학교를 가게되면 아무리 못가도 00여중에는 보내야 해. 지금같은 근거리 배정에선 거기가 최선이야."

합가에 당연히 달려오는 현실적 고민에 엄마의 실소 섞인 대답이 뒷따랐다. 

"무조건 00신도시로 보내야지. 엄마는 너 그렇게 전학 시켰다. 엄마는 그런거야."

그랬다. 중학교 1년을 마치고 나는 인근에 생긴 신도시 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 덕에 나는 매일 시내버스를 타고 왕복 1시간을 통학해야 했다. 

통학은 힘들었어도 아이들의 수준이 달라서 좋았다. 그땐 그저 순박하게 공부하는 아이들 무리에 있다는게 그저 좋았던 시절이었다. 나는 그랬고, 엄마는 원래 잘 안되는 "그 전학"을 성사시킨 당신의 능력과, 그렇게 전학을 시킨 후 특목고에 진학한 딸 자랑에 여념이 없었다. 

역시나 엄마의 기억은 그 시절에서 멈춰버려있었다.

내가 무능해서 엄마처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교회와 이웃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엉성한 삶에 만족한 엄마의 인생과 선택의 뒷감당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시는 듯 하다.  

축복받아 부유해 보이는, 실제와는 거리가 있더라도 하여간 그렇게만 보이면 되는 것에 만족하는- 그런 삶. 

부모의 울타리를 벗어나 현실에 살게 되면서 더더욱 밀려드는 지난 인생에 대한 회의를 넘어선 자괴감들 이다. 주변에서 성경적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가정이라 칭송받으며 늘 베풀고 사셨던 삶은 다시 되돌아보니 남의 돈으로 실속차리기 참 좋은 대상이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살면 대대로 복을 받는다 주입인지 설득인지 설교인지를 한 목회자와 그의 자녀들은 다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 철마다 후원을 부탁하러 왔었던 영세한 교회 목회자들은 아빠의 장례에 나타나지 않았었다. 

인간군상의 삶이란 종교도 지위도 성별도 다 막론하고 똑같은 것 같다. 

다만 종교와 가족은 가드를 내리고 있다가 한 방에 당하는 경우가 많아 내상이 큰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결국 내 공격을 뒤집지 못한 엄마는 또 다시 나와는 말을 섞지 않는다는 억지로 대응을 전환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이번달에는 꼭 변호사를 만나 외사촌오빠네 부부에게서 대여금을 받아낼 방도를 세워야겠다는 결심이 들었다. 

내 결심에 사람이 그렇게 악하게 살면 벌을 받는다며 엄마는 나를 나무라셨고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아멘 


그게 벌 받을 일이라면, 다른 신을 찾겠다고. 

이제부턴 내 손을 제때 제대로 잡아주는 신을 내 신으로 믿겠다고. 

남에게 보이는 삶에 만족하는 그런 엉성한 삶은 내 대에서 끊어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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