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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지 Oct 13. 2022

아이고 주여

모태신앙 반항기

"아이고 주여..."

안방에서 곡소리가 난다.


대면예배를 드리지 못한지 2년이 넘게 지나간다.

그 사이 나는 출석하던 교회에서 더 먼 곳으로 이사를 왔다.

사실 이 집에 살던 어릴적에도 매주 버스를 타고 45분 이상 걸리는 교회에 다녔었고, 급기야 고등학교도 그 지역 학교로 다녔었으니, 멀어서 못가겠다는 건 어쩌면 핑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년이 넘도록 다시 못가고있는 콰이어에서 연습 시작 알림이 왔다.

못오는 경우 미리 이야기를 해 달라고 했는데, 그 시한이 거의 다 되었다.

부모님이 다니시던 교회에서 독립해 혼자 다니기 시작했던 곳이었는데, 어느덧 아이와 남편 그리고 친정엄마까지 내가 다니기 시작한 그 교회에 교적을 두고 있다.

엄마는 현장예배 인원에 들기위해 아침부터 서둘러 늘 첫 예배를 드리고 오시는데, 내가 콰이어에 가자니 가족들의 주말 일정에 문제가 생겨벼렸다.

아이는 시력이 매우 좋지 못하다. 자차를 타고 이동을 해도 멀미를 쉽게 하는 편이다.

이전에 살던 곳에서는 지하철을 타고 15분 가량 걸으면 됐지만, 이젠 무조건 시내버스 50분남짓 아니면 자차30분 이동 뿐이다. 예전, 교회 인근에 살던 시절에야 남편이 아이를 데리고 연습시간 동안 놀아주고 어린이부서에도 데리고 가줬다지만 요즈음의 남편은 주말마다 무언가를 배우러 나가버린다. 그러니 이제는 주말 교회에서의 내 일정동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다.

아니, 있긴 있다. 친정엄마가 계시긴 하다. 엄마가 예배 시간을 늦추시고, 예배 이후에 아이 교회학교 시간과 내 콰이어연습 그리고 예배수종까지 기다려주셨다가 다 함께 집으로 오면 되긴 하다. 하지만 건강이 좋지 못한 엄마의 상황에 사실 이건 무리다.

무리인걸 알면서도 부탁은 드려봤다.

신이 계시다면 그렇게라도 가려고 했던 내 정성은 좀 봐주시기 않을까 싶은 마음이 사실 조금은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틀이 지났나, 그 콰이어를 가지 않고 아이와 둘이 예배만 드리고 오면 안되느냐는 엄마의 대답을 받았다.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속이 명쾌해졌다.

내가 교회를 안가면 그만인 것을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었을까 싶어졌다.


사실 교회는 많다.

지금 집 주위에도 교회는 발에 차일정도로 차고 넘친다.

하지만 가고 싶은 교회는 없다.

이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렇다고 그 먼 곳까지 피곤하고 아픈 아이를 데리고 다닐 정도의 열성이 이제는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나, 안갈래."

걸어다니거나 마을버스 정도 타고 다닐 여건도 아닌데 내가 왜 무엇때문에 황금같은 주말 하루를 길에서 시간을 다 버려야 하는지 이제는 이해를 할 수 없다고 말을 더했던 것 같다.

이후, 안방에선 "하이고 주여..."만 들릴 뿐이다.


엄마가 운전하시는 차량을 타면 온갖 개신교 계열의 종교 라디오 채널이 나온다.

얼마전에는 신앙을 거부하는 딸의 구원을 소망한다는 한 어머니의 사연을 받아 라디오 채널에서 생방송으로 딸에게 전화연결을 한 적이 있었다. 영문도 모른채 전화를 받은 딸은 신앙을 받아들일 것을 좋은말로 강요당했고, 생방송이라는 사실과 엄마의 면을 생각해서인지 그냥 착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좋은 태도로 애써 서둘러 통화를 종료하려는 딸이 수화기 건너에 있었다.

엄마의 옆에 앉아 반 강제적으로 그 방송을 듣다가 화를 냈다.

이건 예의가 없는거라고.

자신들의 관념에 사로잡혀서, 이런 무례함이 신앙을 명분으로 정당하다고 착각하고 있는거라고.


현실적으로 현장 참석이 어려워졌음을 알고 콰이어연습과 본당예배 참여가 어렵다는걸 인정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교회 사람들이 많이 쓰는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마음이 참으로 곤궁하고 어려웠다.

그 어려운 마음의 뒷면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자리를 지켜야 하고, 신에대한 불평을 하면 안된다는 뿌리깊은 관념이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어 더욱 씁쓸했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자랐다.

내가 지금까지 본 목회자들 그 누구도 자기 자식 이름은 나처럼 짓지 않았는데, 어쩌다보니 성경에 나오는 단어를 이름으로 가진 나는 목사들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아는 아빠 밑에서 자랐다.

성경책 위에는 먼지 한 톨도 올라가 있으면 안됐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어도 주일에는 꼭 예배당에 가야했고, 학교 갈 준비는 미리 챙기지 않아도 교회에 입고 갈 옷과 헌금은 미리 곱게 준비해놓고 자는게 습관이었다. 그래서 교회독립을 한 이후로 매주마다 버스를 타고 옆 도시로 향했다. 초등학교 6학년에 말이다.

지금껏 살아온 그 울타리를 이제 좀 넘어서려는데 마음 이곳 저곳 구석에서 발목을 잡는다.

이래서 주일성수를 하고 공동체 밖으로 나가면 안된다 하는구나, 일견 이해가 되었다.


당장 돌아오는 주일의 일정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아이에게 주말 중 하루는 엄마랑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고 읽고 반납하는 습관을 들여주고 싶은데, 마침 도서관에서 만난 학교 친구와 일요일로 팀도 꾸려졌는데, 모든게 뒤죽박죽이다.


태생적 교회언니인 내가 종종 절을 찾기 시작하자 태생적 절 오빠인 남편이 타박을 한 적이 있다.

니 신앙이나 잘 지키라고.  

교회언니와 결혼을 하기 위해 세례를 받은 절오빠가 할 소리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 세례받은 절 오빠는 요즘 주말마다 본인의 발전을 위해 열심이다. 그런데 나는 뭐지.

헌신하고 충성하고 봉사하면 그 분께서 아낌없이 부어부실 것이라는, 신앙의 자리는 절대 지켜야 한다는, 기타등등의 뻔하디 뻔한 반응들이 이미 머리속에 그려진다.

근데, 내 나이 마흔이 다 되도록 대를 이어 그렇게 살았는데, 이 상황이면 그냥 하늘의 그 분은 우리가족을 호구 혹은 잡아놓은 물고기로 알고계신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르겠다.

과연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니, 어쩌면 이미 결론은 나왔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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