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하 Apr 04. 2024

우리 엄만 매일 내게 말했어, PM이 뭐하는 사람이니?

사실은 나도 잘 모른다.

살다 보면 우리는 너무 자주 다른 사람들에게 나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이러한 자기 소개는 너무 일상적으로 자주 일어나는 일인 데다가 대체로 생판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진행해야 하는 긴장되는 일이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소개를 템플릿으로 만들어 사용한다.


안녕하세요, 어디 학교 몇 학년 몇 반 누구입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자기 소개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저 정도 얘기하면 더 얘기할 것도 없었다.


안녕하세요, 어디 대학교 무슨 학과 무슨 전공 몇 학번 누구입니다.


대학교를 가서도 크게 어렵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그 때 막 유행하던 신생학과인 '~융합' 학과를 전공했던 나는 그 뒤에 전공에 대해 한참 설명하는 시간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런 게 귀찮으면 그냥 대학생입니다, 하고 말면 됐었다. 그런데 대학교를 딱 졸업하자마자 내 이름 앞에 붙일 수식어가 마땅치 않아졌다. 4학년 막학기 종강을 12월 달에 하고 3월에 첫 회사에 취직을 하기 전까지 나는 나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걸 어려워했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얘기를 구구절절 해야 하긴 싫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그럴싸한 명함이 나오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고 믿었다. 약 2주 간의 짧고도 치열한 구직 생활 끝에 나는 운 좋게도 첫 직장에 입사했다. 엄마, 나 합격했어! 짜장면 사줘! 이력서를 넣기 시작한지 일주일만에 합격 통보를 받은 나를 보면서 엄마는 남들 다 어렵다는 취직을 너는 무슨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해치웠냐고 신기해했다. 뭐 하는 회산데? 무슨 일인데? 짜장면을 먹으면서 나는 대답했다. 회사 이름은 OO인데, 거기 PM이야. 미국에서 기업 대상으로 이메일이랑 SMS 마케팅 솔루션을 제공하는 회사래. 엄마가 되물었다. 그래? 근데 PM이 뭐니? 무슨 일을 하는 거야? 흠, 나는 짧은 고민 끝에 대답했다. 기획자 비슷한 건데 나도 잘 몰라. 가서 해봐야 알지 뭐.


그리고 그로부터 3년이 지났다. 첫 직장에서 PM으로 업무를 시작한 나는 1년 만에 2번째 회사로 이직했다. 2번째 회사에서도 PM으로 1년을 버티고, 또 1년을 채웠을 때쯤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매년 회사를 옮겨 새 명함을 파면서도 나의 직업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Product Manager. 하지만 우리 엄마한테는 물어보면 아직도 우리 엄마는 대답을 못할 거다. 그, 뭐, 컴퓨터 그거 뭐 만드는 거 아냐?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맞는 말도 또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쉽게 정정해주지 못하는 이유는,


1. 프로덕트 매니저의 업무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회사가 작아지면 작아질 수록 프로덕트 매니저가 해야 할 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2. 그렇다보니 회사마다 프로덕트 매니저에게 원하는 업무 범위가 너무 다르다.


의 두 가지 이유 때문일 거다. 손쉽게 한 단어로 딱! 설명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엄마의 말을 정정해주려다보면 말이 길어지는 게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하고, 또 이런 일도 해야 해. 근데 그러면 뭐도 알아야 하고 뭐도 알아야 하는데... 나는 이제 겨우 고작 3년 차인데 뭐 이렇게 얘기할 것들이 많은지. 결국 말을 시작하려다가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할 말이 너무 많으니까.


근데 비단 우리 엄마 뿐일까? 사실 나는 나조차도 가끔 프로덕트 매니저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의 일을 해야 하는지 헷갈릴 때가 너무 많다. 행운인지 불행인지 회사를 자주 옮겨다니다보니 그 부분이 더 아리까리해졌다. 그래서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언젠가 누가 또 우리 엄마한테 그 집 딸내미가 뭐한다고 했더라? 피, 뭐시기? 하고 물어보면 이 블로그 링크를 보내주라고 하려고. 뭣도 모르고 그냥 PM이라는 단어가 멋져 보여서, 돈 잘 번다고 하니까 되고 싶다고 하는 어린 친구가 있으면 그 친구한테도 보여주려고. 언니가 그래서 회사에서 하는 일이 뭐야? 라고 묻는 막내동생한테 언니가 이런 이런 일을 해왔단다, 라는 자랑을 좀 격조 있게 하려고.


물론 그렇다고 이 글이 공증받은 프로덕트 매니징의 바이블이라거나 이런 건 아니니, 오해하진 마셔라.

이 글은 전적으로 내 경험에 비추어 쓰는 회고록에 가까우니까.




다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내가 어쩌다 첫 커리어를 프로덕트 매니저로 시작해 현재까지 프로덕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지를 간단하게 얘기하는 것이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직무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나라고 프로덕트 매니저가 어렸을 때부터 꿈이었던 건 아니다. 대학교를 진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나는 연예인이 되고 싶었다.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 하지만 하늘도 무심하시지, 음악을 사랑하는 것만큼 음악을 잘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집안의 반대도 컸다.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던 첫 번째 꿈이 무너지고, 특수목적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나는 그 꿈을 거의 접다시피 했다.


하지만 대학을 가려니 스멀스멀 그 꿈이 다시 꿈틀거렸다.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이 될 수 없다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사람들을 만나는 사람이 되겠다! 라는 꿈이 생긴 나는 수시 원서 6개를 난다 긴다 하는 대학의 미디어학과에 넣었다. 하지만 넣은 5개의 수시 원서는 줄줄이 탈락했고, 나는 정시 수능 성적표를 받았다. 재수하겠다고 뻗대던 나에게 엄마가 웬 처음보는 학과 이름을 내밀었다. 그 때가 한창 대학에서 OO융합학부 같은 게 만들어지던 시대였다. 입학하면 실용음악과 교수님 수업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갑자기 마음이 혹했다.


그렇게 모 학교의 무슨 융합학부를 들어간 나는 이번에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될 수 없다면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보자! 라는 생각으로 실용음악과 교수님이 맡는다는 융합 수업을 줄줄이 들었다. 근데 커리큘럼이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주파수가 어쩌구, 음악의 소스를 가지고 튜닝을 어쩌구... 나는 내 창의성을 수업에서 발휘할 줄 알았건만 그렇지 않았다. 동시에 나는 전공 기초인 물리학과 수학 과목, 컴퓨터 전공 과목들 역시 들어야 했다. 암울했다. 안 되겠다 싶어 2학년 때 테크 트리를 바꿨다. 전공 수업 중에 그나마 재미있어 보이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게임과 UI/UX 디자인을 전공으로 정했다. (당시 해당 학과는 학부 내 전공 간 교차 학점 이수가 가능한 데다가 전공도 여러 개를 선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 처음으로 나는 내가 기획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고학번이 되자 팀플 형식의 수업이 매우 많아졌다. 특히 UI/UX 전공 과목에서는 우리 주변의 문제를 찾아 해당 문제를 웹이나 모바일 프로덕트로 해결하도록 하는 팀플을 기계적으로 진행했다. 2년 간 나는 약 5번의 팀플을 통해 5개 정도의 프로덕트를 구상해냈다. 그 과정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 방법을 도출하고, 그걸 예쁜 프로토타입으로 만든 다음, PPT에 집어넣어 남들 앞에서 간지나게 발표하는 일을 5번 반복했다. 팀플이 언제나 그렇듯 무임 승차 인원들을 끌고 가는 일이란 쉽지 않았지만, 가끔 정말 괜찮은 친구들을 만나 진짜 재밌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정말 내가 해결하고 싶었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를 고민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그게 진짜로 눈에 보이는 산출물이 된다는 것이 즐거웠다. 휴대폰을 연결해 마치 정말 있는 모바일 앱인 것마냥 프로토타입을 시뮬레이션 해볼 때는 내가 스타트업 CEO가 되기라도 한 것 같아서 마음이 들떴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한 번의 창업(사업자 등록)과 투자(교내 대회 수상)을 경험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기획자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학교를 졸업했다.


근데 정말로 운명처럼, 마치 프로덕트 매니저가 내 천직이기라도 한 것처럼, 어느 날 빵을 팔면서 진상을 응대하는 일이 거지 같아 충동적으로 사람인에 이력서를 60곳 정도 넣은지 약 이주일만에 나는 덜컥 어느 중소(중견?)기업의 프로덕트 매니저로 취직에 성공했다.



PM이랑 서비스 기획자의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올해 초, 열심히 이직을 준비하던 나에게 모 회사의 면접관이 물어본 질문이다. 준비된 면접자, 김박하는 막힘없이 대답했다. 업무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프로덕트 매니저가 조금 더 장기적으로 프로덕트의 로드맵을 설계하고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대답을 듣자마자 그 면접관은 비웃듯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PM은 그냥 서비스 기획자들의 대빵이에요. 그리고 나서는 한참 동안 내 생각이 어디가 어떻게 틀렸고, 요새 어린 친구들은 왜 그런 잘못된 생각을 하고, 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표정은 점점 썩어갔다. 어쩌라고, 이 꼰대야... 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 면접관이 틀린 말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일을 해보니 서비스 기획자와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단어가 업계에서 비슷하게 쓰이는 것은 사실이다. 채용 공고 페이지에 대놓고 '서비스 기획자 / 프로덕트 매니저' 로 채용 직군을 섞어서 써놓는 회사들도 많다. 요새는 이 사이에 하나가 더 끼어서 서비스 기획자와 프로덕트 매니저와 프로덕트 오너, 이 세 가지가 무슨 떡튀순처럼 붙어다닌다. 그래서 세 개의 차이점이 뭐냐고 나한테 물으신다면 글쎄다.


원래 언어는 사용하는 사람들의 문화와 배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 DDD에서 Ubiquotous Language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도 다 그런 것 때문이다. (이 얘기는 나중에 더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을 거다.) 목에 걸면 목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요새 보면 그냥 다 같은 일을 하는데 회사에서 무슨 단어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서비스 기획자였다가, PM이었다가, PO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원래는 분명히 다른 뜻의 단어였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그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섞이면서 지금은 사람마다, 회사마다 그 직무에 대해 이해하는 바가 다 조금씩은 다른 것 같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아래와 같은 관계가 성립된다.


서비스 기획 < 프로덕트 매니저 < 프로덕트 오너


이 포함 관계는 절대 능력을 나타내는 포함 관계는 아니다. 프로덕트 매니저들이 서비스 기획자들보다 더 낫다거나 프로덕트 오너가 프로덕트 매니저보다 더 업그레이드 된 직무라거나 그런 뜻이 아니라는 거다. 굳이 따지자면 책임과 권한의 포함 관계라고 할까? 대부분의 회사에서 기존의 서비스 기획자에게 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고 싶을 때 채용 공고에 프로덕트 매니저, 라고 쓰는 것 같고 프로덕트 매니저보다 더 많은 책임을 지고 결정을 내릴 사람이 필요할 때 프로덕트 오너를 찾는 것 같다. 결국 셋의 출발점은 같은데 프로덕트의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결정할 권한이 있는지가 셋을 구분하는 선이 되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그래서 프로덕트 매니저는 서비스 기획자들의 대빵이다! 라고 말한 그 면접관의 말이 틀렸냐 하면 그것은 아니다. 위의 포함 관계 수식에서 알 수 있듯, 프로덕트 매니저란 본질적으로 서비스 기획자보다 프로덕트에 대해 더 넓은 영역에서 더 많은 결정 권한을 가지기 때문에 보통 한 프로젝트, 한 프로덕트 단위에서 팀을 리드하는 역할을 맡을 때가 많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내 대답이 틀렸냐 하면 당연히 아니다. 그러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더 장기적인 관점으로 프로덕트의 로드맵을 수립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 가끔 링크드인을 보다보면 부트캠프나, 프로덕트 매니징 관련 강의를 홍보하는 이미지로 서비스 기획자와 프로덕트 매니저, 프로덕트 오너를 비교하는 표를 만들어 사용하시는 걸 발견하곤 한다. 물론 그 표의 내용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보다는 차라리 포함 관계의 밴 다이어그램을 그리시는 게 어떤가, 하는 게 나의 의견이다. 차이라고 부를 건 거의 없다. 그냥 얼마나 더 많은 것을 결정하고, 더 많은 것을 고민해야 하는지만 달라질 뿐이다.


나는 그 면접에서 결국 탈락했다. 어차피 뽑아줬어도 가진 않았을 것이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 사이에서 매일 매일 결정을 내려야 하는 프로덕트 매니저를 뽑는 자리에서 당당하게 '네 말이 틀렸어!' 라고 C레벨이 얘기하는 회사라니...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해당 면접 경험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할 말이 많다. 내가 본 서른 마흔 오십 번의 면접 중 감히 최악의 면접으로 꼽겠다.) 아무튼 간에 중요한 것은 결국 서비스 기획자, 혹은 프로덕트 매니저, 혹은 프로덕트 오너가 그래서 뭘 하는 사람이냐는 것일 거다. 나는 3년 동안 내내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직함을 달아왔기 때문에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단어를 쓰겠지만 셋 중 어떤 직무에 대한 설명이래도 틀릴 것은 없으니 이 글에서만큼은 세 단어들 사이에 뭐가 맞고 뭐가 틀리다라는 논쟁은 좀 접어둬도 좋을 것 같다.


아, 맞다. 그래서 프로덕트 매니저가 대체 뭐 하는 사람이니? 라고 오늘도 엄마가 또 물으면 나는 대답한다.

좀만 기다려 봐 엄마. 할 말이 아주 많아.


프로덕트 매니저라는 단어에 대한 오해를 푸는 짧은 글을 마치고 다음 글부터는 본격적으로 프로덕트 매니저가 어떤 일을 하고, 또 어떤 능력을 갖춰야 하는지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한 줄 요약

프로덕트 매니저는 본질적으로 서비스 기획과 동일하다. 서비스 기획과 프로덕트 매니저와 프로덕트 오너의 차이점을 얘기하는 데에 집중할 필요는 없다. 그건 그닥 중요한 게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