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해서 애들이 생기면 가족사진을 찍어 걸어놓으리라는 꿈을 갖게 된 건 대학생 때였다. 놀러 갔던 친구 집 거실 벽 한가운데에 커다랗게 걸려 있는 가족사진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사진관에 가서 첫 가족사진을 찍었다. 큰아들이 5살, 작은아들은 돌을 갓 지난 때였다. 지금 우리 집 거실에 걸려있는 사진은 두 번째로 찍은 것이다. 큰아들이 중학교 2학년, 작은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사진사가 각자 위치와 포즈를 정해 주었다. 내가 한가운데 의자에 걸터앉고 남편과 작은애는 내 앞으로 바닥에 다리를 뻗고 앉았다. 교복을 입은 큰아들은 내 어깨를 감싸듯이 손을 얹고 뒤에 섰다. 사진사가 ''웃으세요''를 연발하며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네 명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어린 순간이 사진에 잘 담겼다.
사진사는 만족해하면서 사진관에 걸어놔야겠다고 했다. 그냥 지나가는 말인 줄 알았는데 얼마 안 있어 사진관에 걸려있는 걸 보게 되었다. 사진 속의 우리는 누가 봐도 행복한 가족의 모습이었으리라.
하지만 그때 내 눈에서는 눈물이 마를 새가 없던 나날이었다. 중학생인 큰아들의 사춘기 때문이었다. 학교에는 가지 않고 집에서 게임만 하는 아들에게 소리도 질러보고 애원도 했다.
사진 속 내 얼굴엔 미소가 있지만, 그때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긴 상태였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컴컴한 터널 속을 걷는 듯했다. 행복해 보이는 사진 속에 그런 진실이 숨어있다는 걸 누가 알 수 있을까.
고등학생이 된 큰아들은 언제 그런 사춘기 방황을 겪었냐는 듯 3년을 개근했다. 대학생이 되었고 다음 해에 입대했다. 훈련소에 내려준 뒤 자대 배치 후 두 달이 지날 때까지 코로나 19로 인해 면회도 휴가도 불가능했다. 속을 태우고 있는데 부대 관리자가 밴드를 개설해서 사진을 올리겠다고 연락했다.
밴드에 들어간 첫날이었다. 사진을 아무리 찾아봐도 아들이 없었다. 남편과 머리를 맞대고 몇 번씩 둘러봐도 아들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히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데 못 찾으니 답답하고 애만 탔다. 다음날엔 사진 속 얼굴을 한 명 한 명 확대해서 다시 샅샅이 훑어봤다. 그러다 아들하고 비스름한 얼굴을 발견했다.
처음엔 긴가민가 했다. 시꺼멓게 그을린 피부에 홀쭉해진 볼과 뾰족한 턱의 얼굴. 헐렁한 군복 속 어깨는 왜 그리 왜소한지. 두 달 전 훈련소에 내려준 아들의 얼굴과는 영 딴판이었다. 하지만 계속 보고 있다 보니 아들이 확실했다. 안쓰럽고 걱정될 따름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석 달째부터는 살이 제법 통통하게 오르고 표정도 편안해 보였다. '잘 적응하고 있나 보다'하고 안심되는 한편으론 문득 '우리 가족사진처럼 숨은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하고 염려되었다.
연락 올 때마다 ''잘 지내니?, 별일 없니?''하고 물어보았다. ''불편하고 힘든 게 조금 있지만 그래도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아들의 말처럼, 사진으로 보이는 모습처럼 잘 지내고 있기를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흔히 말하지만 이제는 안다. 사진은 진실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때론 진실을 감출 수도 있다는 것을.
내년에는 보여주기 위해 꾸며낸 미소가 아닌 행복한 웃음이 진심으로 우러난 사진을 찍고 싶다. 보이는 모습과 속에 숨겨진 이야기가 똑같은 사진. 볼 때마다 가슴이 따뜻해지는 그런 가족사진을 찍어서 벽에 걸어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