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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걷다보면 보인다 Nov 21. 2024

끝까지 함께 해주길

''그렇지! 아이고, 잘 걷네. 옳지.''
애정이 듬뿍 담긴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어린아이한테 해주는 칭찬인가?'
아장아장 걷는 모습을 떠올리며 소리 나는 쪽을 쳐다봤다.

여자의 무릎에 닿을락 말락 한 키에 제법 통통하니 건강해 보였다. 흰색 바탕에 검은 얼룩이 섞여 있는 다리 짧은 불도그였다.
''아니야, 그쪽으로 가면 안 돼. 이쪽으로 가야지.''
개가 다른 쪽으로 가겠다고 뻗대는데도 여자는 그저 귀엽다는 듯 말했다.


오랜만에 집 뒤 당현천에 산책하러 나왔다. 10월 말이라 바람이 꽤 차가웠는데 걷다 보니 햇살의 힘이 장난이 아니었다. 땀도 식힐 겸 벤치에 앉았다가 보게 된 첫 번째  광경이었다.


넓은 보폭으로 팔을 힘차게 위아래로 흔들며 빠르게 걷는 사람, 천천히 달리는 사람, 옆 사람과 수다 떨며 어슬렁어슬렁 가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쌩하니 지나가는 사람.

그리고 예전에 비해 개를 데리고 걷는 사람들이 확연히 많아졌다. 개가 걷기 싫어한다고 품에 안고 가기도 하고 아예 강아지용 백팩을 메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유모차 속에 당연히 아기가 들어 있으려니 했는데 강아지가 앉아 있는 광경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각각 저마다의 모습들이지만 여유로움과 생기가 뿜어져 나와 보고 있는 나까지 덩달아 기운이 생기는 듯했다. 주인과 함께 산책하는 개들도 분명 행복한 시간이리라.

천변에서 이러한 개들을 보는 것과 달리 아파트 주변에서는 버려진 고양이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날이 추워지자, 아파트 주차장으로 추위를 피하러 들어오는 듯했다.



한때는 도도하게 재롱 피우며 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했을 텐데. 자기들을 버린 주인을 원망하고 있진 않을까? 그들은 주인을 어떤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TV에서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풍성한 털을 자랑하며 꼬리를 한껏 치켜들고 유유자적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볼 때면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어떤 고양이는 주인 잘 만나서 저렇게 호강하고 어떤 고양이는 버려지고. 불공평해!''

지저분하게 뒤엉킨 털의 앙상한 고양이가 말할 수 있다면 남편의 말처럼 ''너무 불공평하다''라고 하지 않을까.

어떤 날의 고양이는 차 지붕 위에 앉아 있다가 흠칫 놀라는 나를 보며 유유히 내려오기도 했고, 어떤 날은 차 앞 유리창에 발자국을 찍어놓고 존재감을 알리기도 했다. 어두침침한 주차장에서는 보이지 않던 발자국은 밖으로 나왔을 때야 보이곤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편과 나는 종종 머리를 맞대곤 했다.
''개를 키워볼까, 고양이를 키워볼까?''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나를 반기며 졸졸 따라다니는 상상만으로도 기분 좋았다. 하지만 단순히 예뻐만 하기에는 책임져야 할 게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때 되면 예방접종 해줘야 하고, 목욕시켜야 하고, 하루에 한 번은 산책시켜야 하고, 아프면 병원에 데리고 갔다 오고 약도 먹여야 하고. 아가처럼 돌보며 키워야 한다는 것. 나이 먹어 늙으면 사람과 똑같이 각종 노환에 걸릴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앞으로 거동이 불편한 엄마와 함께 늙은 개까지 수발들어야 할 형편이다. 그래도 그동안 동고동락했으니만큼 죽을 때까지 같이해야 하는 건 당연하리라.


솔직히 남편과 나는 계속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키우기 전에 '끝까지 책임지겠다'라는 마음가짐이 먼저여야 할 테니까. 아이 키우듯 보살필 수 있을까를 신중히 고려해야 할 테니까.

세상의 모든 반려 동물들이여!
마음껏 주인을 사랑하고 마음껏 주인에게 사랑받길. 부디 그리 길지 않은 삶의 마지막에도 주인이 함께 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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