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만큼 좋아해야 덕질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학생이었을 때도 교생 선생님이나 총각 남자 선생님을 좋아하는, 있을법한 스토리 한 번 없었다. TV 음악 방송이나 스포츠 중계 속에서 응원봉을 흔들며 함성을 지르는 소녀들을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나와는 다른 세계 사람으로 보였다.
드라마 속 남주인공에게 잠깐씩 빠지긴 했다. 꽃보다 남자의 이민호, 도깨비의 공유, 시크릿 가든의 현빈 그리고 연모의 로운까지. 하지만 드라마 캐릭터와 잘생긴 외모에 잠시 현혹되었던 것뿐. 드라마 종영과 동시에 언제 적 이야기냐는 듯 까맣게 잊어버리곤 했다
그런데 이번엔 월화드라마 '선재 업고 튀어'의 남자 주인공 변우석한테 제대로 빠져버린 듯싶다. 드라마가 끝난 지 10개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이 나이에 아들뻘 되는 배우 덕질을 하게 될 줄이야!
변우석은 조각 미남은 아니어도 눈코입이 오밀조밀 조화롭다. 거기에 189cm의 압도적인 키와 서른이 넘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는 청량한 미소를 가지고 있다. 고등학생 수영선수 역할부터 34세 가수 역할까지 어쩜 그리 매력적인지. 실제로 노래까지 잘 부르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고 할 만하지 않은가. 인터뷰 영상이나 기사에는 선함이 듬뿍 묻어 나와서 읽다 보면 미소가 절로 저어졌다.
나는 월요일, 화요일 8시 50분을 손꼽아 기다렸다. 드라마 방송 시작 5분 전부터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TV 앞에서 대기했다. 변우석의 대사 한마디라도 놓칠세라 이어폰을 꽂고는 남편도 아들도 주위에 얼씬거리지 못하게 했다.
그의 미소와 눈물에 나도 같이 따라서 웃다가 울다가 했다. 드라마가 끝나면 네** 드라마 오픈톡방으로 들어갔다. 백만 명 넘게 들어와 있는 톡방에서 방금 끝난 드라마에 대한 메시지가 미친 듯이 올라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쓸데없이 왜 거기서 수다 떠냐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오픈톡방이 필요한 이유를 '선재 업고 튀어' 드라마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오늘 선재(드라마 속 남주 이름) 너무 멋있었어요'
'솔(드라마 속 여주 이름) 이만을 향한 직진. 최고!'
'선재 미소, 선함 그 자체!'
화면을 멈춰서 메시지를 하나씩 읽으려면 시간과 참을성이 꽤 필요했다. 내가 할 말을 대신한 듯한 메시지에 공감 이모티콘을 붙였고, 나도 어떻게든 이 벅찬 감정을 표시하는데 동참하고 싶었다
톡방의 사람들도 나와 같은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게 아닐까. 메시지를 써넣자마자 빛의 속도로 사라져 버릴 테고 누구 하나 읽어주는 이가 없을지라도 말이다. '기쁨을 나누면 배가 된다'라는 그 흔한 말 뜻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드라마를 하지 않는 다른 요일에는 유**에서 그를 만났다. 영상을 많이 보다 보니 화면이 온통 그의 영상으로 가득 찼다. 7년 전까지 거슬러올라가 그가 나온 영상을 찾아 보여주는 알고리즘의 친절함이 무섭기까지 했다. 덕분에 매일 아침 그의 영상으로 기분 좋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지만.
변우석이라는 연결고리로 인해 인스타그램에도 기웃거리게 되고, 팬카페가 어떤 곳인가 들여다보기도 했다. 굿즈나 대본집을 파는 팝업스토어가 열리고 위버스나 버블 같은 팬 커뮤니티 플랫폼 앱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게 되었다. 덕질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광활했다.
언젠가 덕질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무료해하고 우울감에 빠져있던 엄마가 임영웅 팬이 되면서 활력을 찾았다고. 덕질은 행복이라고.
'월요병을 낫게 해 주네요.'
'월요일을 기다리긴 처음입니다.'
유튜브 영상의 댓글처럼 덕질은 힘든 일주일을 시작하는 누군가에게 활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내게도 분명 드라마를 보고 있던 6주 동안 변우석은 월요병 치료제였고 비타민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팬카페나 버블도 가입하지 않았고 팝업스토어에도 가보지 않은 내가 덕질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래도 내성적인 내가 주위사람들에게 변우석을 좋아한다고 말하곤 했다. 치약맛이라 싫어하는데도 모델이 된 그가 추천한다는 이유만으로 민트초콜릿 아이스크림을 사 먹기도 했다. 또 그의 모습이 인쇄된 치킨 포장 종이백을 모아두기도 했다.
앞으로 그의 연기를, 노래를 더 많은 사람이 좋아해 주길 바란다. 앞으로 어떤 배역이든 잘 소화해서 승승장구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가 행복하길 바라면서 동시에 나까지 행복한 이런 게 덕질이 아니면 무엇이랴.
지금 나는 덕질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