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냉기가 가신 바람결이 얼굴에 살랑거리는 날이었다. 지하철역 근처, 잡다한 물건들을 싸게 파는 가게 앞 길바닥에 놓인 종이 상자가 내 눈길을 끌었다.
작은 교자상 크기만 한 상자 안에는 다육이 화분들이 옹기종기 들어가 있었다. '한 개에 천 원'이라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얼핏 보면 한 송이 꽃 같기도 하고 닮은 것 같으면서도 저마다의 개성을 뽐내고 있었다. 작은 화분에 꽉 차도록 깜찍한 얼굴을 드러낸 채로 ''나를 데려가줘''하며 내 발길을 잡았다.
어렸을 적 학교 앞 길거리에서 종종 팔던 병아리가 떠올랐다. 노란 솜털 뭉치 같은 병아리가 너무 귀여워서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한참을 서서 보곤 했었다. 손안에 딱 들어올 만큼 작은 다육이 화분들이 병아리처럼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각각의 화분에 이름을 붙여 놓는 친절함은 없었다. 이름은 몰라도 예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처음부터 내 눈을 사로잡은 것으로 골랐다. 만개한 장미가 연상되는 다육이였다. 같은 것으로 세 개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빈 화분이 있어서 옮겨 심을 요량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베란다에 있던 빈 화분과 신문을 준비했다. 원래 심겨 있던 선인장이 죽고 흙만 남겨져 있던 화분이었다. 다육이가 충분히 묻힐 만큼 흙을 파내고 세 개를 모아서 심었다.
작은 화분에 하나씩 담겨있던 모습도 예뻤지만, 함께 모아 놓으니 더 보기 좋았다. 조금씩 키가 차이 나는 사이좋은 세 친구의 모습이랄까. 흐뭇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그저 잘 자라기만을 바랐다.
나는 사실 다육이를 잘 키우는 법을 모른다. 한 달에 한 번 물만 주었을 뿐이데. 화분에서 얼굴만 내밀고 있던 어린 다육이들은 여름, 가을을 지나면서 쑥쑥 자랐다. 옆 옆으로 앙증맞은 아가 다육이들도 태어났다. 겨울로 접어들 즈음엔 한 뼘 넘게 키가 커져 있었다. '겨울을 나려면 집안으로 들여놔야 하나'하고 고민하다 고개를 저었다. 화분에서 나온 벌레 때문이었다.
몇 해 전 기온이 크게 떨어져 집안에 들여놓은 화분 중 하나에서 정체 모를 벌레들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검정깨의 반도 안 되는 미세한 크기였다. 화분에서 나온 벌레는 벽을 타고 올라가 화장실까지 천장을 타고 줄지어 가고 있었다.
기겁하고 즉시 화분들을 베란다에 다시 내놓았다. 약을 사서 화분 주위에 뿌리고 벌레가 나오지 않는지 수시로 살펴보았다. 벌레가 더는 보이지 않게 된 후에도 화분을 집에 들이지 않았다. 벌레를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졌다.
베란다에서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얼어 죽어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했다. 결국 겨울을 나지 못하고 선인장을 비롯한 네 개의 화분 속 식물이 누렇게 변하면서 죽어갔다. 그 후로 얼마 동안은 식물을 키우지 않았다.
날이 추워질수록 베란다에 있는 다육이가 맘에 걸렸다. 화분 주위를 빙 둘러 신문으로 감싸주었다. 묘하게도 다육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잎 크기가 거의 두 배로 커졌다. 초록색 잎이 가운데로 갈수록 노랗게 변하는 것이 마치 그러데이션(gradation) 기법 같았다. 다육이는 점점 화사해졌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예쁘기만 한 이 치장이 다육이한테는 발버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작은 다육이가 찾아낸 제 나름의 겨울을 나는 방법이 아니었을까.
이제 우리 집 다육이는 여느 다육이와는 다르다. 베란다에서 겨울을 잘 견디어 낸 만큼 강해졌기에. 앞으로 다가올 많은 겨울도 이겨낼 것이기에.
사람도 마찬가지일 테다. 역경을 이겨낼수록 더 한 층 성장한 나를 발견할 수 있으리라.
기온이 조금씩 오르면서 다육이는 본래의 제 색으로 돌아가고 있다. 조금은 아쉽기도 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기특하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창문을 열어 손을 내밀면 따스한 햇살이 잡힐 것 같다. 봄이 바로 옆에 숨어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