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방극장 속 작은 멜로디

by 하루담은

나는 뮤지컬을 참 좋아한다. 노래를 듣다 보면 인물의 감정이 마치 내 감정처럼 절절해지곤 한다. 그 어떤 열정적인 대사보다 노래가 주는 울림이 내겐 더 깊고 크다.



어렸을 적 뮤지컬의 매력에 처음 빠졌을 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순수한 감정과 기억들.

그 시절엔 밤 9시만 되면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납니다.'라는 문구가 TV에 나왔다. 그걸 보며 평일에는 영낙없이 9시면 자야 했지만 주말만은 예외였다. 11시가 넘어서야 끝나는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다. 만화책이 해롭다고 보지 못하게 했던 아버지도 영화 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땐 몰랐지만 아버지도 영화를 좋아했던 게 아니었을까.

나는 토요일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저녁밥을 먹자마자 제일 먼저 씻고 나와 이불 위에 누웠다.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어찌 그리 길던지. 졸음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눈꺼풀이 천천히 내려오다가도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눈이 말똥말똥해졌다.

국민(초등) 학교 6학년이었는데도 나는 부모님 사이에서 자는 어린 티를 벗지 못한 막내였다. 영화 중반쯤 가면 엄마와 아버지는 잠이 들었다. 깜깜하게 불이 꺼진 방 안은 오로지 나만의 영화관이 되었다. 혹여 엄마 아버지가 깰세라 TV 소리를 줄인 채 화면 앞에 바싹 다가앉아 영화를 보았다. 때론 웃음을, 때론 눈물을 삼키면서.

그렇게 안방극장에서 보던 뮤지컬은 내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그중에서도 'Singing in the Rain'과 'Sound of Music'은 내 인생의 명작으로 남아있다.

사랑에 빠진 남주인공 진 켈리가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도 행복한 표정으로 탭댄스를 추며 부르던 'Singing in the Rain'. 영화 속 행복감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와 어두운 방 안을 가득 채우는 듯했다. 그 장면은 단순한 영화의 한 장면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오래도록 따뜻한 기억으로 간직되었다.

또 'Sound of Music'에서 마리아 선생님이 환한 미소를 머금고 기타를 치며 아이들에게 음계를 가르쳐주는 장면은 참 다정하고 사랑스러웠다. 그녀의 손짓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서로를 바라보며 따라 부르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했다.

'도레미파솔라시도' 음계가 노래가 되고, 노래는 단순한 음계 학습을 넘어 마음의 문을 열고 서로에게 다가가는 지름길이 되어 주었다.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같이 울고 웃으면서 음악이 가진 힘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도 라디오에서 그 노래들이 우연히 흘러나올 때면 영화의 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어느새 그 시절의 나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노래가 있는 뮤지컬이 참 좋다. 아늑한 안방극장에서 영화에 푹 빠져 있던 13살 소녀를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그때의 순수한 감동과 행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으니까.

삶이 힘들고 지칠 때면 그 멜로디가 살며시 마음에 다가와 나를 토닥여주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