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반대되는 이성에 끌린다더니. 남편과 나는 외모부터 성격까지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눈에 보기에도 그리 잘 어울리는 커플은 아니다.
삐죽하니 마른 체격에 새침해 보이는 나와 반대로 남편은 동글동글하니 통통한 체격으로 얼굴엔 늘 웃음기가 떠나질 않았다. 겉모습만 그런 게 아니었다. 성격도 정반대였다. 나는 내성적이고 부정적인 편인데 남편은 활달하고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난 남편의 밝고 자신감 있는 모습이 좋았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니 참 묘하게도 그런 모습이 거슬리고 미울 때가 많았다.
남편한테 서운하거나 화가 날 때면 나는 며칠이고 입을 꾹 다물고 눈길을 피했다. ''왜 그래?''하고 남편이 내게 먼저 물어봐 주길 기다렸다. 일단 물꼬를 터주면 내가 화난 이유를 말하고 서로 속마음을 나누며 뒤틀린 감정을 풀어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은 내 기분을 모르는 듯 아무렇지 않게 TV를 보며 깔깔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어찌나 얄밉던지. 내가 화가 났다는 걸 알 텐데도 평소처럼 행동하는 남편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 읽게 됐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뭔가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았다.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사람처럼 완전히 다른 존재라는 걸 인정해야 관계가 편해진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생각해 보면 같은 나라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말투나 성향이 조금씩 다르다. 충청도 사람은 느긋하고, 경상도 사람은 급하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하물며 화성과 금성이라니. 서로 얼마나 다르겠는가.
특히 기억에 남았던 건, 남녀가 스트레스를 푸는 방식이었다. 여자는 누군가와 대화를 하며 감정을 정리하고 위로받길 원하지만 남자는 자기만의 동굴에 들어가 혼자 조용히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걸 읽고 나니 남편이 갑자기 조금 이해되는 것 같았다. 남편은 그동안 내가 모르는 새에 동굴에서 혼자 문제를 해결해 왔던 걸까? 그래서 나도 자기처럼 스스로 풀고 나오길 기다렸던 걸까?
남편은 홍천에서 태어나 중학생 때부터 서울에서 혼자 지냈다. 부모님과 떨어져 살면서 알아서 공부하고, 대학 가고, 취업까지 해냈다.
“나는 척척이 효자야”라며 부모님께 걱정 한 번 끼치지 않았다고 자랑하곤 했다.
그에 비해 나는 다섯 살 위 언니 뒤를 따라다니던 철없는 막내였다. 시키는 것만 겨우 하고, 혼자선 아무것도 못 하던 아이. 결혼하면 남편이 나를 이끌어주고 챙겨줄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남편은 이렇게 말했다.
“혼자서도 해봐야지. 알아보고 해.”
물론 맞는 말이긴 하지만 얼마나 서운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티격태격하며 살아온 세월이 어느덧 31년이 되었다. 세월의 흐름 때문인지 나도 조금은 단단해졌고 남편은 예전보다 부드러워졌다. 이제 나는 기분이 나쁘다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게 됐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이 늘어났다.
반대로 남편은 수다가 많아졌고, 눈물도 많아졌고, 예전보다 훨씬 더 자주 참견한다. 여전히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예전처럼 밉지는 않다.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는 걸, 누가 옳고 누가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게 됐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별에서 왔지만 지구에서 30년 넘게 살아왔으니 이제는 지구인으로 블러도 괜찮지 않을까. 우리는 지금껏 살아온 것보다 어쩌면 더 많은 세월을 함께 살아갈지도 모른다. 앞으로의 날들은 조금 더 다정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