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먹거리를 살 일이 있어도 마트까지 나가는 일이 드물다. 클릭 한 번이면 다음 날 아침, 문 앞에 가지런히 놓인 상자를 받아 드는 게 일상이 되었다. 그 편리함에 익숙해져 있다가 모처럼 바람도 쐴 겸 장 보러 밖으로 나섰다. 평소라면 번거롭다 여겼을 이 외출이 이상하게도 기분 좋게 느껴졌다.
마트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왼편 과일 코너가 시야를 가득 채웠다. 투명한 플라스틱 상자에 담긴 복숭아가 눈에 들어왔다. 아직 제철이 아닌지라 크기는 작고, 껍질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었지만 그 싱그러움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왔다. 손을 뻗어 상자 하나를 들었다. 낯익은 촉감과 향기. 아, 이건 나를 설레게 하는 과일이다.
복숭아는 입이 짧고 편식이 심한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과일이다. 특히 단단한 복숭아. 사람마다 취향이 갈리는 법인데 나는 언제나 ‘딱복’ 쪽이다. 탕수육을 두고 ‘부먹’이냐 ‘찍먹’이냐 나뉘듯이 복숭아 앞에서도 사람들은 ‘물복’이냐 ‘딱복’이냐로 갈린다. 말랑하고 달콤한 물복의 매력도 인정하지만 내게 복숭아는 단연코 아삭아삭한 식감으로 다가와야 한다.
단단한 복숭아를 보면 언제나 외할머니가 떠오른다.
“우리 막둥이 먹으라고 꽝꽝한 거 골라놨다.”
여름이면 외할머니는 시장에서 단단한 복숭아만 골라 사 오셨다. 돌아가신 지 벌써 20년이 넘었는데도 할머니의 그 목소리는 여전히 내 마음에 살아 있다. 마치 한입 베어 물면 그때의 여름이 다시 찾아올 것만 같은 기분.
어릴 적에는 복숭아에서 벌레가 나오는 일이 흔했다. 벌레를 미리 발견하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부분만 도려내고 먹으면 되니까. 하지만 이미 한입 베어 문 뒤, 반쯤 잘린 벌레를 보게 되는 순간의 충격이란. 그럴 때마다 외할머니는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복숭아벌레를 먹으면 미인이 된다고 해서 옛날엔 불 끄고 먹었어.”
그 말에 나는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도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복숭아의 껍질은 흰빛과 노란빛이 섞인 뽀얀 바탕 위로 선홍색이 붓질하듯 살짝 얹혀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솜털을 털듯 흐르는 물에 씻어내고 얇게 껍질을 깎는다. 껍질 바로 아래의 단단한 과육이 드러나면, 그 아삭한 식감을 상상하며 조심스레 한 입 베어 문다. 아삭, 소리와 함께 입안 가득 퍼지는 은은한 단맛이 입속을 감싼다.
물론 말랑한 복숭아가 더 달고 즙도 많다. 혀끝에서 맴도는 풍성한 맛은 분명 매력적이다. 하지만 나에겐 딱딱한 복숭아를 씹을 때 느껴지는 아삭 거림, 그 기분 좋은 경쾌함이 더 큰 위안이 된다. 어쩌면 그건 단단한 복숭아를 건네주시던 외할머니의 사랑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올여름에도 나는 다시 한번 그 단단한 속살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 것이다. ‘꽝꽝한' 복숭아의 단단한 속살을 베어 물며 할머니를 떠올릴 그 순간을 기꺼이 기다릴 테다. 아삭, 그 소리는 여름의 기억이고 사랑의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