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에는 높은 곳을 향해 뛰어오르는 꿈을 자주 꾸었다. 마음은 급한데 다리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아 안달하다가 깨어나곤 했다.
한때는 똥 꿈을 자주 꿨다. 네모난 구멍만 덩그러니 뚫린 옛날 변소에 똥이 수북이 쌓여 있어 발을 디딜 틈이 없어 안절부절못하는 꿈이었다. 흔히 똥 꿈을 꾸면 길몽이라지만 이상하게도 좋은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근심이 생길 나쁜 꿈이라는, 이가 우수수 빠지는 꿈도 자주 꿨지만 그런 일은 정작 일어나지 않았다.
미국에 있는 언니는 엄마가 요즘 자주 꿈에 나타난다며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야?” 하고 전화를 걸어온다. 엄마는 또 돌아가신 외할머니 꿈을 꿨다고 하며 “내가 죽으려나 보다”라고 말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코웃음을 친다. “예지몽도 아니고, 꿈에 무슨 의미를 두고 그래?” 하지만 로또에 당첨된 사람들이 불이 나는 꿈이나 돼지꿈을 꿨다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보이니 꿈이라는 게 참 묘하긴 하다.
그래도 나는 계시적인 의미보다는 평소 내가 많이 생각했던 것, 슬펐거나 기뻤던 감정들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꿈으로 나타난다고 믿는다. 생각지도 못한 사람이 꿈에 나왔을 때도, ‘내 머릿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나 보지’ 하고 넘긴다.
어젯밤 꿈속에서는 오랜만에 H를 만났다.
“그동안 어디서 뭐 했길래 그렇게 연락도 안 했어?”
나는 투정 섞인 말투로 물었다.
H는 웃으며 답했다.
“일부러 안 했지.”
스무 해 전쯤의 일이다. 대학 동창인 K와 H를 만나 밥을 먹고 깔깔대며 수다를 떨다 헤어졌다.
“오늘 즐거웠어.”
“역시 오래된 친구가 최고야.”
“다음에 또 보자!”
우린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을 기약했다. 두어 달 정도 연락이 없었지만 각자 바쁘겠거니 하며 잘 지내겠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 K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목소리는 떨렸고 울먹이며 말했다.
“H가 죽었대. 자살했대…”
안부 차 전화를 걸었다가 H의 언니에게 전해 들었다고 했다. 우리와 만났던 바로 다음 날이었다고.
믿기지 않았다. 분명 웃으며 “즐거웠다”라고 인사했는데,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는데.
무엇이 그 아이를 그렇게 몰아세웠을까.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 고통을 조금도 눈치채지 못했던 게 너무 미안했다.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던 H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장례식도 하지 않은 채 외할머니 무덤 옆에 H를 묻었다는 말을 듣고 K와 함께 찾아가 보았다. 봉분도 없고 비석도 없었다.
그저 이름도 없는 한 조각의 땅을 차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왜 그랬니…”
허망하고 먹먹한 마음에 수많은 물음표가 가슴을 짓눌렀다.
그 후로 H는 잊을 만하면 꿈에 한 번씩 나타난다. 아무래도 내 기억 속 한 자리를 단단히 차지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꿈속의 친구는 언제나 20대 시절의 모습 그대로다.
친구야, 중년이 된 너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아직도 까탈스럽고 똑 부러지게 말할까?
아니면 세월 따라 조금은 너그러워지고 뭉툭해졌을까?
다시 모여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사는 얘기로 밤을 지새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이 나이 들어가는 모습을 봤으면 좋았을 텐데.
지금은, 부디 그곳에서 편안히 잘 쉬고 있기를 바란다. 꿈속에서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