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아주 내성적이다.'
예전부터 난 내 성격을 이렇게 한마디로 표현해 왔다.
난 어려서부터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싫어했다. 발표 시간만 되면 얼굴은 벌게지고 다리까지 후들거리곤 했다. 그때의 나는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처럼 느끼던 아이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늘 조용히 구석에 앉아 있거나, 누군가 먼저 다가와 주기를 기다리는 쪽이 내겐 더 자연스러웠다. 상대방의 무심한 말 한마디에도 혹시 내가 무슨 실수라도 했나 싶어 걱정을 놓지 못했다. 그렇게 복잡하고 예민한 내 모습을 스스로 ‘별로인 사람’이라 규정짓고, 그저 한 걸음 뒤로 물러난 채 내 몫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던 나였다.
그런데 정말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스마트폰 강사가 되어 다양한 사람들 앞에 서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의 시선을 견디며 강의를 하는 내 모습은 내가 알던 나와는 너무나 달랐다. 짐짓 여유로운 척, 너그러운 척,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었다. 처음엔 그런 내 모습에 이질감을 견디기 어려웠다.
‘이건 진짜 내 모습이 아니야. 나는 지금 가면을 쓰고 전혀 다른 사람을 흉내 내고 있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웃고 있는 내 표정과 목소리가 전부 거짓으로 꾸며낸 것만 같아서 수업이 끝나고 나면 공허함과 함께 심한 피로감이 몰려들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유튜브 강연에서 듣게 된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가 내 안의 복잡한 감정을 풀어주는 열쇠처럼 다가왔다. 수줍어하는 나도, 남 앞에서 능숙하게 강의를 하는 나도, 모두 내 속에 잠재되어 있던 수많은 페르소나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억지로 꾸며낸 허상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필요할 때 꺼내 쓰는 '또 다른 나'의 모습인 셈이다. 배우들이 “여러 가지 인물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게 좋아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나 역시 때와 장소에 따라 나에게 맞는 페르소나를 꺼내면 될 뿐이었다. 내 안에는 다양한 ‘나’가 살고 있을 테니까.
난 여전히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고 사람들과 오래 어울리면 금세 에너지가 바닥나곤 한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내향적인 나 자신만을 나의 본모습으로 단정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열정적인 강사일 수 있다. 조용하고 예민한 나는 세상을 좀 더 세밀하게 바라보게 해 주고, 강의실에서의 나는 타인에게 도움을 주며 새로운 성취감을 느끼게 해 준다. 둘 다 진짜 나의 모습이다.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단 하나의 역할에 가두지 않는 것일 테다.
앞으로 나는 또 어떤 페르소나를 꺼내게 될까. 삶이라는 무대 위에서 다양한 페르소나를 연기하며 조금씩 성장하는 나를 그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