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tful Jan 26. 2024

#3 "피식대학" 진행자는 바이링구얼?

경계를 넘은, 말 너머의 의미, 트랜스랭귀징과 문화적 기호


 겸손이 일본어로 뭔지 까먹은 사쿠라 (click)

대한민국을 휩쓸었던 영어와 한국어의 경계를 넘나든 전청조의 I am 신뢰에요~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구독자 284만의 피식대학 채널의 피식쇼


언어는 바람처럼, 파도처럼 우리 삶에 스며들어 끊임없이 변화한다. 트랜스랭귀징은 마치 바다의 두 물결이 만나 새로운 물결을 만들어내듯, 두 언어가 만나 새로운 의미의 세계를 창조하는 과정이다. 위 세 가지 사례를 시작으로 오늘은 트랜스 랭귀징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 한다.


트랜스랭귀징(translanguaging)은 사회언어학의 핵심 개념 중 하나로, 언어 사용과 학습에서 매우 중요한 생각의 전환을 불러일으킨다.  이중언어 사용자들이 단순히 두 개의 독립된 언어 시스템(한국어와 영어)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두 언어를 융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언어를 사용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는 Li Wei가 비판하는 이중언어주의, 혹은 bilingualism을 'double-or many monolingualism'과 대비되는 개념이다. 이중언어주의의 각각의 언어가 분리된 채로 존재한다고 보는 전통적인 견해에 반대하고, 언어 간의 상호작용이 강조된다.


언어와 나, 우리 사이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트랜스랭귀징은, '1+1=2'라는 단순한 수학적 논리를 넘어선다. 트랜스랭귀징은 이중언어 사용자의 각 언어에 대한 능력은 단순한 합이 아니라, 서로를 보완하고 증폭시키는 무언가이다. 두 언어를 넘나들며 사용하는 언어생활자들은 가끔 원어민처럼, 완벽하고 논리적인 형태로 각각의 언어를 사용하지 못할 때도 많다. 위의 사쿠라의 예시가 그러하다. 한국어로 생활하다 보니, 겸손이 일본어로 뭔지 생각이 안 나서 머뭇거리는 모습. 당황한 표정에서 그 감정이 캡처 화면 밖으로 튀어나온다. 트랜스랭귀징은 이와 같은 언어의 사용이 단순한 오류로 치부되는 전통적 사고의 한계를 넘어서, 두 언어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대안적 언어생활의 가능성과 아름다움을 앞에 둔다.


랭귀'징'(Languaging)이라는 표현의 약속은, 언어와 언어 사용자 사이의 쌍방향적인 관계과 이를 통한 변화를 드러내고자 함이다. 언어는 단순한 말의 교환을 넘어서 우리의 사고와 정체성, 사회적 상호작용을 형성하는 핵심 요소이다. 언어는 살아있는 존재처럼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우리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 삶의 풍경을 색칠하는 것은 단어들이다. 트랜스랭귀징이란, 두 언어가 춤을 추듯 어우러져 새로운 의미의 꽃을 피우는 과정이다.


피식대학의  컨텐츠를 보며 생각없이 웃다가도, 진행자들이 미국의 힙스터들이 쓰는 영어를 사용하다가 자유자재로 한국어로 스위칭(switching)하는 장면들에서 종종 생각이 머무른다.


흥미로운건, 구독자들의 반응이다.


이들이 영어와 한국어를 뒤섞고 넘나드는 언어실천 형태에 감탄하고, 적절한 순간에 딱 맞는 표현을 뒤섞어 사용하여 웃음 포인트를 저격하는 센스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댓글창에서 발견된다.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새로운 웃음을 창조하고 언어의 유연한 전환에서 오는 유머를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예전 박재범, 니콜과 같이 한국어가 서툰 아이돌의 언어적 실수를 '0개국어'라고 은근히 폄하하던 과거와 달라진 분위기를 느낀다.




트랜스 랭귀징에 대한 학술적인 논의가 궁금한 이들은, UCL에 계신 Li Wei 선생님의 글을 찾아보길 바란다. 관련 링크를 첨부한다. https://academic.oup.com/applij/article/39/1/9/4566103





Wei의 챕터를 읽으며 언어를 보는 관점의 확장과 연결하여 기호에 대해 고민해 본다. 우리가 관습적으로 하는 행동과 생각은 우리는 인식하지 못하지만 문화적 메시지, 즉 기호로부터 전달되는 메세지의 지배와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가장 일반적인 예시가 신호등인데, 빨간색 신호등을 보면 자동으로 몸이 먼저 반응해서 멈추는 것이 이를 드러낸다. 그러나 빨간색 = 멈춤은 필연적 기표-기의 관계가 아니다. 이는 문화적, 사회적인 약속이다. 만약 외계 생명체가 지구에 방문한다면 그는 빨간색 신호등이라는 기호가 전달하는 의미(멈춤)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기호를 언어로 재규정하고 나면 더 많은 것들을 언어교육에서의 논의의 장으로 불러 들어올 수 있다.

예를 들면, 화장실을 나타내는 표지판의 여자와 남자는 어떤 기호로 대표되는가?


언어를 기호의 개념으로 느슨하게 확장시키면 시각적 이미지와 기호의 상호 텍스트성 (연쇄 참조의 기능)의 대상과 주체도 될 수 있다.


요즘 페미니즘, 젠더리스, 놈코어등의 개념이 MZ세대 사이에서 각광을 받으며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화장품 광고 화보에 드러나는 이미지인데, 전통적으로 남자화장품 광고주에게 선택받는 모델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능력이 출중하며, 당당한 눈빛을 가지고 화장품 광고이지만 화장한 티는 전혀 나지 않는 모습이었는데 최근은 진한 색조의 표현과 어딘가 넋이 나가 보이는 몽롱한 눈빛이 자주 목격된다.

남성 화장품 광고에서 보이는 기호의 변화



모델의 배치 구도나 색감과 같은 정보도 특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러한 부분까지 모두 언어의 개념으로 포섭한다면 논의의 층의가 더욱 깊어진다. 왜냐하면 사실 시각적 언어와 기호는 전통언어적 기호보다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의 인식과 규범에 침투하는 부분이 더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면에선 더 강력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때로는 사진 한 장, 노래 한구절이 잘 짜여진 논리적인 연설문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느껴본 경험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언어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은 특정한 인지적인 레벨과 합의된 약속에 대한 이해를 요구한다. 예를 들어, 언어 사용에 있어서도 TPO가 있고 이를 잘 사용하지 못하면 소통에 실패하거나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 학술 토론 장에서 가정에서 부모님에게 쓰는 언어로 소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어는 생각보다 많은 것의 표지(marker)역할을 한다.


우리가 펼치는 말들은, 마치 무지개처럼 다채롭고 감각적이다. 사용하는 말은, 그 사람의 삶의 지도를 그려내며 출신과 배경의 색깔을 세상에 드러낸다. 어떤 발음과 억양으로 어떤 단어를 주로 사용하는지를 통해 내가 어느 지역 출신인지, 교육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사회, 문화적 배경은 어떤지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이것이 언어가 표지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상대방은 이를 알아차리고, 나는 이를 알아차리는 상대방을 알아차린다.


가끔 이러한 언어의 특성은 어떤 이들에겐 높은 벽이 될 수 있다. 여러 이유로 완벽한 언어로 단단하고 세련되게 표현하지 못하는 주변화된 사람들(marginalized)에게, 때로 '표준'이라고 불리는 언어의 틀이 그들의 목소리를 가두기도 한다.  


그러나 언어의 세계를 넓게 바라보면, 더 다채로운 색깔과 목소리가 드러난다.  소통과 표현, 읽어냄을 가능하게 하는 매개가 꼭 표준 언어여야 한다는 명제에서 물러날 때, 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안적 언어 표현으로 들을 수 있다.  


처음 의료, 보건 연구에서 개발되어 현재 현장 질적연구에 자주 적용되는 '포토보이스' 기법이 이에 대한 좋은 예시이다.


논리적인 언어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청소년이나 취약계층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삶의 장면과 자신이 생각하는 문제상황을 사진으로 찍도록 안내하고 그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해석하며 담화로 발전시키는 것을 안내하는 기법이다. 자신의 삶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주체성을 인정하면서 이를 표현할 대안적 언어(사진)의 가능성을 열어주기 때문에 empowering 한 방법이다.


포토 보이스(Photo Voice)는 사진을 이용하여 개인이나 공동체의 경험, 이야기, 문제를 표현하고 탐구하는 연구 방법이다. 주로 사회학, 공중 보건, 교육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며, 특히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취약 계층이나 소수집단의 경험을 드러내고 이해하는 데 유용하다.  일반적으로 참여자들이 자신의 삶이나 공동체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사진을 찍고, 이 사진들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고 공유한다. 참여자들은 사진을 선택하고, 그 사진이 자신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하며. 이 과정에서 사진은 참여자의 생각, 감정, 경험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참고: Photovoice



 트랜스랭귀징이나 포토보이스와 같이 기호학으로서 언어의 경계와 정의를 넓히는 시도는 언어 교육과 이중언어자의 삶, 또한 표준 언어로부터 주변화된 이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끼친다. 언어의 다양한 사용 방식을 인정하고 존중함으로써, 더 넓고 유연한 언어 교육 방식을 탐색하길 기대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2 영어 학습과 정체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