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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은 Mar 17. 2024

피켓의 신이 되기까지

대학을 다닐 때 누가 무슨 과냐 물어보면  옆에서 “제는 강미반”이라 했어요. 교내 미술 전시회를 교수님께 알려선지 졸업 후에도 ”미술동아리“나온 애로 통했어요. 낭만적 이서였을까요.


학교 다닐 때 자원활동으로 간 탈북자와 함께하는

프로그램에서 피켓을 만들었어요. 무서운 농담으로 “공작반”이라 불렸어요. 고딕체의 선명한 구호가 아닌 색상도 다양하고 글씨체도 동글하니 보기 좋게 배치했어요. 카피라이트 같은 문구로!


인권단체에서 피켓은 더 이상 즐겁게 창의력 있게 만드는 게 아니었어요. 그저 정해진 규격에 짜인 틀에 문구만 달리해 붙이기만 잘해서 가져가면 되었죠. 분할인쇄로 프린트를 잘 뽑느냐 정도가 능력이라면 능력이랄까. 나아질 것도 나빠질 것도 없이 딱 그 정도였어요.


반올림에 왔더니 근로복지공단 앞 기자회견을 한다네요. 삼성 변호사가 공단의 참고인으로 선 것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죠.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기! 를 빗대었죠. 산재를 신청한 노동자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는.


고양이, 생선, 근로복지공단의 로고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머리띠에 생선을 그리고 삼성로고도 그리고. 얼른 하고 집에 가고픈데 연신 감탄하는 활동가는 맥주까지 사 와 구경하고 나섭니다. 뭘 이리 유난스럽나 했죠! 그런데 꼭 필요한 능력이긴 했습니다.


노무사 의사 변호사 자격은 아니지만 산재 인정을 받은 이에게 위로의 책자도 만들어드리고 축하 웹자보도 기획하고 이재용 구속 삼성직업병 해결! 같은 글씨 큰 피켓을 한 자씩 들고 거리에 나설 땐... 아!

나 강미반 맞다 싶었습니다.


그 사이 옛 피켓의 신들은 쏙쏙 나타나 포스터칼라로 멋지게 피켓을 만들었어요. 해외 손님들은 매직으로 하나같이 삼성 직업병 해결하라! 글귀를 써주고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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