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부족한게 많은 사람이다

완벽이라는 무거운 포장지를 찢어버릴 용기

by 민토


​언제부턴가 피로가 가시지 않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거울 앞에 선다. 거울 속에는 이십 대의 팽팽했던 청년 대신,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어깨가 조금은 굽어 있는 중년의 사내가 서 있다. 치열한 경쟁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늘 ‘조금 더 잘해야 한다’, ‘조금 더 완벽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왔다. 직장에서는 실수 하나 용납되지 않는 기계의 부속품처럼 빈틈없이 일해야 했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행여나 나의 부족함이 들킬까 봐, 남들에게 무능해 보일까 봐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것은 비단 회사에서뿐만이 아니다. 가정에서도 ‘흠결 없는 남편’, ‘모든 것을 척척 해결해 주는 전지전능한 아빠’가 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살아왔다.



​우리 40대 가장들의 삶은 마치 화려한 진열장에 놓인 상품과도 같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냉혹한 평가 속에서 선택받고 살아남기 위해, 우리는 자신이 가진 진짜 모습보다 훨씬 더 화려하고 두꺼운 포장지로 스스로를 칭칭 감싸왔다. 내가 못하는 것,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어떻게든 숨기려 애썼고, 세상이 정해놓은 ‘성공한 40대’의 기준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며 살아왔다. 나의 단점과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부족한 부분을 기어코 채워 넣기 위해 나의 모든 에너지와 금쪽같은 시간을 쏟아부었다.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는 폭력적인 문장을 가슴에 새긴 채 말이다.



​하지만 불혹(不惑)이라는 마흔의 강을 건너며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세상에는 아무리 애를 써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이 존재하며, 고치려 발버둥 쳐도 고쳐지지 않는 나의 타고난 모난 구석들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나의 약점을 극복하려 밑빠진 독에 물을 붓는 사이, 정작 내가 무엇을 할 때 눈이 빛나는지, 어떤 일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끼는지, 내가 진짜로 잘하는 강점이 무엇이었는지는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내게 남은 얼마 되지 않는 소중한 생의 에너지를, 타인에게 흠 잡히지 않기 위한 방어벽을 쌓는 데 줄줄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겉포장만 번지르르하게 꾸민 삶은 결국 ‘나의 인생’이 아니다. 그것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조립된 쓸쓸한 모조품일 뿐이다. 누군가 나의 포장지를 벗겨냈을 때 드러날 초라함이 두려워, 평생을 무겁고 답답한 갑옷 속에 숨어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남들이 보기에 번듯한 삶을 연기하느라 정작 내 안의 자아는 질식해 가고 있는데, 껍데기만 화려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제는 나의 완벽하지 않음을, 그 씁쓸한 불완전함을 담담히 끌어안아야 할 시간이다.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라는 패배주의적인 체념이 아니다. “나는 이런 부분은 참 서툴고 못하지만, 대신 저런 것은 누구보다 잘하고 즐거워해”라는 당당하고 건강한 자기 객관화가 필요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재력이나, 내가 오르지 못한 사회적 위치를 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의 영혼을 갉아먹는 짓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대신, 나에게 허락된 그 귀한 에너지를 오롯이 ‘내가 잘하는 것’과 ‘나를 가슴 뛰게 하는 일’에 집중해서 쏟아부어야 할 시기다.



​타인의 결재를 받기 위한 삶이 아니라, 내 스스로에게 결재 도장을 찍어주는 삶을 살자.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 구멍 난 양말을 신은 것처럼 가끔은 나의 부족함이 남들에게 들켜 얼굴 붉어질지라도, 그것이 남의 발 크기에 억지로 맞춰 신은 불편한 구두보다는 백 번 낫다.



​나와 같이 이 시대를 걷고 있는 40대의 동지들이여. 오늘 밤에는 그 무거운 ‘완벽주의’라는 포장지를 과감히 찢어버리자. 직장에서도, 집에서도 완벽한 척하느라 잔뜩 굳어버린 얼굴 근육을 풀고, 당신의 찌질함도, 당신의 못남까지도 그 자체로 괜찮다고 스스로의 어깨를 가만히 토닥여주자.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나의 맨얼굴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 타인의 박수갈채가 없어도 내가 즐거워 춤출 수 있는 나만의 무대를 가꾸는 것. 그것이 인생의 절반을 쉼 없이 달려온 우리가, 남은 절반의 생을 위해 선택해야 할 진짜 ‘나의 인생’이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월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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