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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란 Nov 01. 2023

탄자니아에서 보건사업을 한다는 것:무(無)와 싸운다는것

아프리카 사하라 이남 지역의 탄자니아.


가보기 전까지는 단순히 풀 길고 기린 있고 코끼리 있을 것 같았다. 이전에 살았던 튀니지는 교통 체증이 심했지만 나름 지방에서도 시내는 도시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내 사업지는 수도에서 비행기 타고 4시간 떨어진, 빅토리아 호숫가의 코메섬 이라는 곳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 보면 그 유명한 킬리만자로 산의 꼭대기가 보였고, 응고롱고로 분화구도 보였다. 


탄자니아 쪽의 세렝게티 입구인 응고롱고로 (Ngorongoro) 분화구. Big 5 짐승 중 하나인 코뿔소가 산다. 



아무것도 없다.


나는 다행히도 사업지인 코메섬이 아니라 빅토리아 호수를 끼고 있는 내륙인 므완자에서 살았다. 그 이유는 코메섬은 정말 인프라가 없어 위급한 상황 시 국제보건 업무를 위한 파견자들의 보건자체를 보장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므완자에서 내가 관리하는 사업지를 들어가야할때 5 시간 동안 차를 타고 갔어야하는데, 정말 '산 넘고 물 건너'는 이정이었다. 차를 몰고 중간에 페리를 두번 갈아탔다. 가끔 비오는 날이나, 사람과 가축이 많이 타 있는 날에는 이러다가 가라앉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었다. 실제로 섬을 들어가는 두번째 작은 페리의 엔진 두개 중 하나가 망가져서, 배가 사선으로 항해해 목적지까지 데려다 준 적도 있었다.  


코메섬 내부는 더 엉망이었다. 수도 시설이 아예 없는 지역이어서, 12개 학교 중 1개에 수도 시설을 내가 지어줬었고. 허름한 여관의 모기장은 다 찢겨졌고 화장실은 당연히 푸세식에다가 목욕물을 대령하면 바가지로 푸세식 화장실 위에서 대충 몸을 닦아내고 업무를 진행했었다. 아침 7시엔 여관에서 일하는 '마마들'이 어김없이 우물에서 퍼온 불순물 둥둥 떠다니는 세숫물을 방 밖에 놓고 문을 두드려댔는데, 알람이 따로 필요없었다. 휴지도 따로 안줘서 므완자에서 사오던지, 코메섬 입구에서 싸구려 휴지를 사서 하는지 해서 들어와야했다.


용변 계산을 잘못하는 날엔, 여관에서 제공을 하지 않으니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같이 온 동료에게 휴지를 빌려달라고 해야한다. 식당은 초가집에 뗄감 화로에 플라스틱 의자 몇개. 가끔 전기가 나갈땐 마치 중세시대 처럼 촛불켜고 밥과 생선을 뜯었다. 이렇게 쓰면서도 나도 여기서 어떻게 일,이주일씩 보건 업무했는지 안 믿긴다. 와이파이는 커녕 인터넷도 없는 지역이어서, 몇일씩 연락이 안 닿았던 적도 있었다.  


쓰러져가는 펫말.. 바꾸자고 했는데 지대가 그래서 무소용인것 같다..



내가 했던 일과 섬 내 12개 초등학교들


이번편에서는 간단히 적을 것인데, 나는 소외열대질환인 주혈흡충 (Schitsosomiasis) 기생충의 아동 내 감염을 방지하여 전반적인 건강(영양) 상태를 국제적인 수준으로 개선하기 위한 사업을 하였다. 기생충과 영양 간의 관계를 설명하자면, 기생충이 아동들의 장 내 서식하기 때문에 기생충이 영양분을 가져가면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지 못하게 된다. 나는 탄자니아 코메 섬 내의 12개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직접적인 방식으로는 영양분 주입을 위한 학교 급식 체계 수립 및 운영과, 간접적인 방식으로는 아동들에게 기생충 약과, 기생충 약의 효과성을 입증하기 위한 stool sampling (한국의 1960년대 기생충 검사를 생각하면 편하다), 건강검진 및 보건소 모니터링, 그리고 기생충 섭취 방지를 위한 WASH(Water, Sanitation & Hygiene) 교육 및 수도/화장실/손씻기 시설 건축, 학교 내 올바른 손씻기 교육, 그리고 학부모 및 정부 관리자, 학교 선생 대상 아동 인권 옹호 교육을 했다. 


학교 급식 사업 도움을 줬던 내 친구 Chela. 비행기 타고 결혼식 보러도 간 소중한 친구. 


현지 학교는 한국의 옛날 1960년대.. 가 아닌 1940년대 정도의 수준이다. 밑의 사진은 그나마 행사를 위해 대기하는 아이들의 반만 찍은건데, 현실은 한 공간에 120명의 학생들까지도 앉아서 수업을 받는다. 특히 유치원 및 1학년 아이들의 반은 작은 체구에 인원이 110~120명 정도로 가장 많고, 그 이후 부터 농사를 도와야하는 학생이 많아 학교를 퇴학하여 인원 수가 줄어든다고 한다 (그럼에도 정말 많다). 1학년 교실에 가면 어린 아이들이 어깨를 못 펼정도로 다닥다닥 눌려 붙어있고, 책상은 (정말 농담이 아니라) 세로폭이 성인 여자 손 한 뼘 크기이다. 교복이 찢어져서 살이 보이는 아이들이 대다수이다. 


학교 화장실. 현지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 화장실이 열악하면 월경을 하는 여자 아이들의 출석율이 떨어진다. 


전기는 들어오지 않고, 급식 사업을 하였는데 물과 주방이 없어서 손으로 펌핑하는 우물과, 블럭으로 세운 간이 주방을 세워달라고 하여 운영하였다. 이런 곳에서 교육이 진행되는게 많이 신기하다. 그래도 아이들이 집에서 뗄감 가져오라고 지시하면 밥을 먹기 위해서라도 잘 가져온다. 사업의 지속성을 위해서라도, KOICA는 일정 부분의 현지 공헌을 요한다. 우리는 3년 사업이 끝나고 나서도, 아이들이 탄자니아 정부의 지원을 받든 마을의 지원을 받든, 학부모의 지원을 받아 밥을 계속 먹고 출석을 잘 할 수 있도록 사업을 하면서 학부모의 봉사활동을 부탁하고, 아동마다 뗄감과 개인 컵 그리고 곡식을 각출 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리고 방과 후 학교 내 곡식 재배 활동 등을 추가적으로 진행하여 먹는 밥(죽)을 로컬 재배 품으로 대체하며 자립을 위하여 점점 해외 원조를 줄여나간다. 


학부모들의 도움으로 완성되는 아이들의 아침(죽) 


현지에서 사업을 진행하며 정말 충격이었던 것이 있는데, 코로나 때 학교가 3개월간 임시 shut-down 할 적 들은 이야기이다. 그때 초등학교 및 중학교 교장선생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아이들이 교육을 못 받는게 문제가 아니라, 교육을 안함으로 아이들이 임신을 한다는 것이었다. 한 학교에서 9명의 여자 아이들이 임신을 해서 다음 학기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소년기의 문화 생활 인프라가 너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기억으로는, 튀니지에서는 그나마 청소년 문화 센터에서 아이들이 탁구와 K-팝 춤 동아리 등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여기는 사방이 밭이다. 여기 아이들은 축구를 하거나, 그냥 뛰어노는 것 같았다. 


교육를 위해 기다리는 아이들.. 다 들어오면 절대 공간이 이렇게 널널하지 않다 



지금와서 하는 생각이지만,


다시 처음 보건을 접하는 상황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하드코어하게 가진 않을 것 같다. 그도 그럴게, 이쪽 업무를 하는 전공이 일치한, 기술적인 능력을 갖춘 친구들은 WHO나 UNDP 지역 사무소에서 부터 정책 제안 위주로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열정이 있다고 해서 너무 어려운 일을 하면, 마치 공여국이 돈을 쏟아부어도 현지가 개선되지 않는 상황을 계속적으로 미시적으로 보는 것과 같이, 원조 피로 (aid fatigue)가 빠르게 쌓인다.  


인프라도 그렇지만 특히나 나는 도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주변의 또래 친구들과 단절되는 현실이 너무 힘들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 정착하고 일도 연애도 즐기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는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코로나 때여서 LSHTM 이나 Cornell 의학 대학원에서 므완자 시립 병원으로 기생충 연구하러 온 외국인 친구들마저도 자국으로 돌아가서 너무 외로웠다. 그나마 존스홉킨스 JHPiego 극소수 인력들만 남아 있었는데 나이차이가 너무 났다. 


국제보건이 가장 필요한 곳이 가장 힘들고 낙후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내가 이런 위선적인 생각을 해도 되나 스스로 반성을 한다. 그러나 이는 과거의 나에게 하는 말이고, 그 당시의 경험들은 큰 자산이 되었으며, 지금 내가 하는 일에 큰 이해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20대에 나와 같이 국제 보건을 희망하는 친구들은, 가능하면 초기에 험한 것을 가끔만 보고, 오래오래 업을 해서 나와 언젠가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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