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3살, 대기업에 인턴으로 재직 중이었던 나는 정규 전환을 앞두고 퇴사했다. 마지막 기억은 인사팀 4명과 부서 팀장과 상무가 내려와서 나를 잡겠다고 부른 연봉인데, 정말 어이없게도 2023년도 내가 지금 받고 있는 연봉과 동일하다. 내가 뭐라고 그렇게 잡고 싶어하는걸까 하는 생각과, 대학 대외활동과 그전 외교부 한국국제협력단(KOICA)에서 경험한 국제개발원조인 심장 뛰는 일에 대한 열망으로 퇴사한 것 같다. 지금은 너무 국제보건 필드에 들어와 있어서 그 경험은 이력서에 적지 않는다.
12월, 국제보건을 꿈꾸며 아프리카 북부의 튀니지에 발을 디뎠다. 당시에 르완다 현장의 보건 프로젝트를 볼 마음에 들떠 있었는데, 안될 줄 알았던 1 지망 국가인 튀니지를 붙는 바람에 거버넌스 프로젝트를 위주로 보게 되었다. 덕분에 더 높은 레벨의 프랑스어 자격증과, 평생 갈 멋진 스타트업/대사관/국제기구 친구들과, 식사대접을 할 수 있는 요리 실력을 얻고 예쁜 지중해 바다 감상을 실컷하다 왔다.
튀니지에서 바라보는 예쁜 지중해
튀니지는 투명한 국가 입찰 시스템이 없는 상태로, 국가 입찰을 도울 수 있는 디지털 입찰 시스템의 설립을 대한민국과 UNDP에서 지원하였고, 그 진행을 내가 팔로업하게 되었다. 이 입찰 시스템의 이름은 TUNEPS로, 공정하게 디지털 입찰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한국의 시스템과 비유하자면 바로 조달청의 '나라장터'이다. 오랜만에 검색하여 들어가보는데, 지금까지도 관리가 잘되고 있고, 더 발전된 모습이 보여 뿌듯한 느낌이 든다.
[TUNEPS 링크] https://www.tuneps.tn/portail
이를 설립하고 교육하기 위해 들인 노력은 어마어마하였다. 페이지 개발은 물론, 튀니지 국가 조달 프로세스 설립 T/F 및 페이지 관리, 자료 수취 및 검수를 담당하는 Front Office 와 실제로 처리를 돕는 Back Office, 사용자 대응을 위한 민원 처리반 및 전사적인 교육. 아프리카는 아직 비리가 매우 많은 대륙이고, 디지털 업무에도 익숙치 않은 사회라 구두계약과 같은 보이지 않는 비리가 특히 많다. 비리의 악순환을 누가 먼저 끊느냐에 따라 경제 발전 및 해외 기업 투자를 이룩할 수 있는데, 참고되는 세계은행의 Business of ease 지표* 상승을 보면, 튀니지는 이러한 비리 근절 노력을 열심히 하였다. 튀니지는 23년도 현재, 북부 아프리카 및 MENA 지역 20개국 중에 8등, 전체 국가 중에는 78등을 차지하고 있다. WB의 Ease of Doing Business 국가 랭킹은 대체적으로 그 나라의 사업 성정(비리 등 포함)이랑 관련이 있어, 해외 기업에 투자를 할 생각이면 참고를 권한다.
[*World Bank Ease of Doing Business: https://archive.doingbusiness.org/en/rankings]
튀니지에서 거버넌스 프로젝트 진행을 하다 어느 날 튀니지를 흔드는 보건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데, 다름 아닌 지방 병원에 신생아 11명이 집단으로 죽게 된다. 이유는 제약관리 체계가 없기 때문에 독약이나 마찬가지인, 유통기한이 확인되지 않은 약품이 신생아들에게 주입이 되었고, 그 결과 신생 집단 폐사로 이어졌던 것이다.
튀니지 내 이 사건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나는 튀니지의 보건 실태 및 국가 의약품 시스템을 조사하다가 주변 권유로 튀니지 내 디지털 국가의약품 관리 시스템의 구축을 위한 Project Concept Paper (PCP)를 작성했는데, 이듬해 다음 임기 후임으로부터 그게 선정되어 타당성 평가를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다. 작은 성취로 나는 아프리카의 보건 실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업무를 하고 싶었고, 보건실태가 매우 엉망이라 소문난 사하라 이남(Sub-Saharan Region)의 보건 사업에 가장 빠른 포지션을 알아봤다.
그래서 한국에 도착한지 2개월만에 굿네이버스 NGO를 통해 소외열대질환 및 영양을 직접적으로 연구하고 다루는 KOICA 민관협력 사업을 수행하러 다시 아프리카행 비행기를 타게 되었다.
가끔씩 23살때 소위 안정된 선택으로 한국에서 지낼 수 있었던 나를 상상하며, 현재의 나를 키워낸 나의 선택을 비교해본다. 다른 건 모르겠고, 불안함과 싸우는 매일에 명예도 돈도 없이 고생만 하고 있다는건 확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세상을 집 안방처럼 드나들며 진정으로 국제보건이라는 덕업일치를 할 수 있다는 거는(..할 수 있겠지?), 많은 사람들이 이룩하기 힘든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
특히나 SDG 17개 중에 보건인 #3 건강과 복지는, 인권과 같이 현란한 말솜씨를 갖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펀딩을 얻을 수 있는 주제와는 달리, 나의 성격과 같은 "착실한 인풋 대비 아웃풋"으로 설명되는 사람의 매우 기본적인 존엄권 (mic drop) 이기 때문에 나의 선택을 받았다.
현재 국제기구에 실력있는 한국인이 매우 부족하다고 하는데, 함께 세계적인 경쟁을 하면서, 어느 나라든 출장 가면 한번 만날 수 있는 - 탄탄한 믿음의 고리를 쌓을 수 있는 잠정 국제기구러들의 팔로우를 환영한다. 새로이 파견된 나라의 낯섦을 극복해 본 현직자들 및 용기있는 예비 UN러들이 있다면, 부디 공감 및 댓글 소통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튀니지 내 대사관, 국제기구, 원조기관, 국제 스타트업을 다니는 젊은 네트워크의 파티에서의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