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당신의 갓난아이를 9살짜리 꼬마에게 맡겨 놓고 동네 미용실에 가서 수다를 떨며 화투를 치던 사람이다.
9살짜리 꼬마가 학교에서 돌아와 갓난아이의 똥 묻은 기저귀와 싸우고, 아기의 울음을 그치지 못해 미쳐갈 때 그 꼬마에게 도리어 화를 내고 손찌검까지 하던 사람이다.
그 꼬마가 11살이 되어 바로 눈앞에서 이제 아장거리며 걷는 아기의 교통사고를 눈앞에서 목격하고 그 피 묻은 모습에 하얗게 질려 갈 때, 그제야 미용실 밖으로 나와 소리를 지르던 사람이다.
그 후 꼬마는 어떻게 되었나?
친척 집에 보내졌다.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알지도 못한 채. 아직도 그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어서 밤마다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는 아이를, 친척 집에, 그것도 딱히 친하지도 않은 친척 집에 짐짝처럼 치워 놓았다.
꼬마가 매일 30분이 넘는 거리를 대중교통을 이용해 등하교하는 동안 꼬마에게는 10분 걸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가족들에게는 연락조차 없었다. 꼬마는 자신의 이복동생이 입원해 있다는 병원에 몰래 찾아가 밖에서 동생의 울음소리와 당신이 한탄하는 소리만 듣다가 발을 돌렸고, 그렇게 방치되었다.
꼬마가 겪어야 했던 악몽과 죄책감. 거리를 지나다니는 차만 봐도 속이 울렁거려 토할 것 같은 기분.
출근 시간 사람들로 혼잡한 지하철에 파묻혀 때때로 음흉하게 다가오는 손 따위를 밀어내다 못해 옷핀으로 쑤셔야 했던 날들 따위는 누구의 안중에도 없었다.
지하철 역마다 내려 꼬마가 몇 분이나 멍하니 앉아 왔다가 떠나가는 열차를 보고 있는지, 그렇게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밖에서 혼자 보내야 했는지 따위는 누구의 관심사도 아니었다.
원래부터 누릴 것도 없었던 재수 없는 계집애에 불과하던 꼬마에게는 이제 또 다른 죄명까지 추가되었다.
어린 동생을 잘 돌보지 못하고 사고당하게 한 죄.
그 죄 때문에 꼬마는 그 어린아이가 어떤 짓을 해도 참아야 했다.
동생이 엉망으로 망쳐 놓은 숙제도 꼬마의 탓이었고, 받아온 상장을 동생이 갈기갈기 찢어놔도 화를 내어서는 안 되었다.
어떻게 감히.
당신은 당신의 자식보다 남들의 눈과 그들 앞에서 챙겨야 하는 체면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당신의 자식이 내야 하는 등록금마저 남을 ’ 도와준다 ‘는 명목으로 덥석 빌려줄 만큼.
그래놓고 당신의 자식에게는 학교에 가서 기한을 연장시켜 달라고 빌어보라는 소릴 할 만큼.
그 작태에 대해 따져 물었을 때 당신은 뭐라고 했던가.
사람이 그렇게 따지고 살면 안 된다고 했던가? 내 여유 있을 때만 도우면 그게 어떻게 돕는 거냐고 했던가? 왜 그렇게 사람이 차갑고 못돼먹었냐고 했던가.
당신의 어린아이가 커서 결혼을 한다고 했을 때도, 자식을 돕는 대신 도리어 돈을 빌려달라는 소리만 해대서 그 어린아이가 고통받고 있을 때도, 그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그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애정을 품고 있던 다 커버린 꼬마였다.
당신은 그 꼬마가 모아둔 모든 것을 꺼내가고 훔쳐 갔지만, 꼬마는 당신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았다.
당신에게 사정이 있을 거라고 이해하려 했다.
당신은 그 꼬마가 인생의 어떤 순간을 지나쳐 가든 신경조차 쓰지 않았지만, 당신이 그 꼬마에게 가족이라는 이름을 들이미는 순간은 늘 정해져 있었다.
돈이 필요할 때.
그때만은 당신은 당신이 가지고 있는 관계의 채찍을 꺼내 휘둘렀다.
커버린 꼬마가 며칠 동안 앓아누웠다가 일어났을 때도, 괜찮냐는 말하나 없이 당신의 사정부터 늘어놓았지. 그 끝은 돈.
꼬마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화를 내도, 그래, 그 정도 들어줬으니 이제 돈 내놔라.
이번에도 당신은 말한다.
온갖 지인들의 경조사에 들어갈 돈이 필요하다.
나와는 상관없는 사람들에게 줄 돈을 왜 자신이 줘야 하냐고 반문하는 꼬마에게 말한다.
우리 가족들 행사에 그래도 와서 조의금이며 축의금을 준 사람들인데 사람이 도리도 모르고 그러면 안 되는 거라고.
그 행사들이 도대체 누구 돈으로 진행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편리하게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그 후 들어온 조의금, 축의금을 한 푼도 챙기지 않고 당신이 말하는 가족들이 나눠 쓰라고 다 돌려준 게 누구인지도 기억 못 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도리어 더 많은 몫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았다고 예의 없음을 탓하는 걸 보니 기억을 못 하는 게 아니라 그건 아예 ‘당연함’의 영역에 포함된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로 당신은 참 대단한 사람이다.
그토록 대단하니 그 경지에 다다르지 못한 사람은 이제 그 관계를 포기하고자 한다.
내키는 대로 갈고리를 내던지며 상대방이 찢어지든 피를 토하든 말든 당신 입맛대로 끌어당기려 하는데 어쩌겠습니까.
저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