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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토리 Feb 05. 2024

성 (姓:surname) 이야기

"I don't like somebody calling me Mrs"


친구 B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의사인 그녀는 title을 선택해야 할 때 "Mrs" 대신 "Dr"를 선택한다고 했고, 그건 나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다. 


Mrs의 어원을 살펴보면 원래는 상류계층의 여성을 부르는 Mistress에서 유래했다고 나온다. 남자의 경우 Mister 혹은 Master라고 부르는 게 Mr로 줄여진 것처럼 여성의 경우에는 Mrs로 줄여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계층이나 직업에 따른 존칭으로 쓰이던 게 후에 와서는 결혼의 여부에 따른 Mrs (유부녀)와 Miss (원래 상류 계층의 어린 소녀를 높이 이르는 말이었지만 이제는 미혼의 젊은 여성을 지칭하는데 쓰임)으로 나누어졌다. 


남자의 경우는 결혼을 했든 안 했든 Mr로 통괄되어 부르지만, 여성의 경우는 결혼의 여부에 따라 Mrs 혹은 Miss로 불려야 한다는 것 때문에 영국에서도 여성 운동의 일환으로 그걸 바꾸자는 여론이 있었고, 지금은 중립적인 Ms라는 선택지가 있지만, 솔직히 Ms를 Mr의 여성 버전이라고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잘 없다. 

Ms를 쓰는 사람은 이혼녀이거나, 결혼 적령기를 훌쩍 넘겼지만 결혼하지 않은 비혼녀, 혹은 동성애자, 아니면 페미니스트라고 보는 시선도 다분하니까. 


거기다가 영어권에서는 보통 Mr and Mrs Smith라는 식으로 부부를 묶어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Mrs가 사실은 Mr's (소유격)를 뜻한다는 인식 때문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다. 결혼 여부는 개인 정보에 해당하는데 왜 여자는 앞에 붙는 타이틀 하나로 그런 정보가 타의적으로 까발려져야 하느냐, 하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고. 


그런 이유에도 어느 정도 동의하는 건 맞지만, 내가 Mrs라는 호칭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그 뒤에 오는 성 (surname) 때문이다. 


영어권에서는 보통 결혼을 하면 여자가 남자의 성을 따라 바꾼다. 예를 들어 제인 에어와 존 스미스가 결혼하면 Family Smith가 만들어지는데, 이럴 때는 호칭만으로 사실 누구를 지칭하는지 대충은 짐작할 있다. 


'Mr and Mrs Smith'는 그 가정의 부모, Master Smith는 집안의 어린 남자아이, Miss Smith는 어린 여자 아이를 뜻하니까. 나중에 남자아이가 크면 이름의 이니셜과 성의 혼합으로 구분한다. 아들 이름이 아담이라면, Mr J. Smith는 아버지, Mr A. Smith는 아들, 이런 식으로. 대신 여자일 경우 Mrs는 그 집안의 엄마밖에 없다. 아들과 결혼한 며느리가 새로운 Mrs Smith 가 될 수 있겠지만, 그들은 분가해서 자신들만의 Family Smith를 만들고, 딸들은 나이가 들어 누군가와 결혼하면 Miss를 버리고 Mrs가 됨과 동시에 성까지 남편 따라 바꿔 버리니까.


Miss Smith가 피터 존스와 결혼해서 Mrs Jones가 되어 버리는 것처럼, 한국에서도 비슷한 말이 있지 않은가. 성만 바꾸지 않다 뿐이지, 이순자 씨가 김철수 씨와 결혼하면 주위에서 이순자 씨에게, '넌 이제 이 씨 집안사람 아니고, 김 씨 집안사람이다'라고 말하거나 '출가외인'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처럼. 


이 주제로 영국인 친구와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친구는 그래도 영국 방식이 낫지 않느냐고 말했었다. 한국에서는 아이들까지 아버지 김철수 씨를 따라 김 씨 성을 쓰니 그 집에서 엄마만 '외부인'이 되는 건데, 영국에서는 엄마까지 성을 바꿔 온전히 'Smith' 집안이 되니 더 나은 거 아니냐고. 


이십 대 초반이던 나는 그때 당시 왜 여자만 성을 바꾸니 마니 해야 하는 거냐고 울컥했었다. 왜 고작 결혼 한 번 했다고 내가 이제껏 가지고 살아오던 이름까지 바꿔야 하냐고 말이다. 


내 그런 생각은 영국에서 박사 과정을 하면서 더 굳혀졌는데, 당시 그 분야의 전문가로 유명해서 다른 논문에도 자주 인용되셨던 여자 교수님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담당 지도 교수님이 그분의 성이 Dr Smith-Jones (가명)에서 Dr Smith로 바뀌었다며 지적해 주셨다. 그렇게 졸지에 나는 얼굴 한 번 못 본 그분이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분이 그토록 수많은 논문을 내셨던 Dr Smith-Jones라는 걸 모를 것 아닌가? 

아니, 그전에 성 때문에 결혼 여부는 물론, 이혼 사실까지 이렇게 타인에게 공개된다는 게 좀 우습고 소름 끼치는 일 아닌가. 


다행스럽게도 남편은 스페인 사람이라 결혼한다고 성을 바꿔야 마나 하고 고민할 일은 없었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이 나는 바꾸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스페인에서는 보통 아버지의 첫째 성, 어머니의 첫째 성을 따라 두 개의 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인 후안 로페스 가르시아와 어머니 사라 크루즈 페레스의 아들 알폰소의 full name은 알폰소 로페스 크루즈가 되는 거다. 물론 이것도 그 뒷대까지 이어지는 건 아버지의 성이긴 하지만, 어머니의 성이 한 대 (generation)를 더 살아남아 적어도 아이들은 각 부모에게 받은 성을 가진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 까닭에 나는 여전히 내 한국이름인 P Q R을 유지하고 (PQ가 내 이름, R이 내 성), 남편은 X Y Z를 유지하고 (X가 이름, Y Z이 그의 부모에게 받은 성), 아이들은 이름 뒤에 Y R이라는 두 개의 성을 쓰는 거다. 


여기서 내가 Mrs를 쓰면, 내 남편은 자동적으로 Mr R이 되어 버리는데, 이건 명백하게 잘못된 이름이다. 그의 이름에는 R이 전혀 없으니까. 동시에 누가 나를 Mrs Y 혹은 Mrs Y Z라고 부르는 것도 말이 안 된다. 내 공식 이름 어디에도 Y Z는 찾아볼 수 없으니까. 


거기다 영국에서는 이름 가장 마지막에 오는 걸 성이라고 생각하거나, 두 개의 성이 있을 때는 하이픈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스페인의 성에는 하이픈이 붙지 않는다), 가끔 우리를 Mr and Mrs Z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것 역시 잘못된 표현이다. 스페인에서도 굳이 하나의 성을 택해야 한다면 첫 번째로 오는 아버지의 성 (이 경우 Y)을 쓰니까. 


그래서 굳이 누군가가 우리에게 호칭을 붙여서 부르고자 한다면, 나는 차라리 Dr R, Dr Y Z이라고 부르라고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를 Dr Q R이라고 부르거나, 남편을 Dr Z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수두룩 하다). 둘 다 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호칭이지만, 어설프게 Mrs의 틀에 끼워 맞춰져서 더한 오해를 낳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웃기는 건 내가 문서상으로 Dr R를 선택하면 거의 반드시 나를 He - 남성형 - 으로 지칭하는 답신을 받게 된다). 




성 하나 쓰는 데 뭐가 이렇게 복잡하냐고 할 수 있겠지만, 영국에서는 의외로 이게 복잡한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의사인 친구 B의 이야기를 하자면, 그녀는 Mrs라고 불리는 걸 싫어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남편을 따라 성을 바꿨습니다. 주위에 박사 학위를 딴 친구들은 앞서 이야기한 경우 때문에 보통 학위를 받기 전에 결혼한 게 아닌 이상 자신의 성을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 친구는 박사가 아닌 의사라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그 반발심이 꽤 강하길래 물었더니, 친구가 답했습니다. 

"Because I hated my maiden name" (결혼하기 전 부모에게 물려받은 성) 

친구의 어머니는 친구가 어렸을 때 이혼했지만, 그 사실이 혹시라도 아이들에게 불이익을 끼칠까 봐 전남편의 성을 그대로 아이들에게 쓰게 했죠. 


딱히 원만하게 끝난 결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미 이혼했지만, 계속 아버지의 성을 쓰고 있는 친구의 가족들은 그 아버지가 죽기 전까지 그가 남기고 간 상처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결혼을 하고 합법적으로 이제껏 쓰던 자신의 Maiden name을 버리고 남편의 성을 따랐다고 했죠. 


그 외에도 이 성 문제를 나름의 방법으로 극복하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행해지고 있긴 합니다. 자신의 예전 성을 버리는 대신 남편의 성을 받아들여, Mrs Smith-Jones가 된다던가,  자신은 Jones 성을 그대로 유지하지만, 자식들에게는 Smith-Jones라는 성을 준다거나. 


물론 이런 노력들도 이혼하면 다 혼란스러워집니다. 예를 들어, Jane Jones가 Tom Smith와 결혼을 해서 Nick Smith를 낳은 뒤 이혼하고, Kevin Brown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 후 케빈과의 사이에서 딸 Emma를 낳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딸은 Emma Brown일까요? 제인이 닉의 양육권을 가지고 있다면 그 'The Brown' 집에서 Nick은 계속 닉 스미스로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닉 브리운으로 개명해야 할까요? 


만약 닉의 성이 Smith-Jones라면, 이제 닉은 Brown-Jones가 되어야 할까요? 새로 낳은 딸 에마 역시 Brown-Jones가 되어야 할까요?


만약 제인이 톰과 이혼했음에도 닉을 위해서 예전 성으로 바꾸지 않고 제인 스미스라는 이름을 유지했다면, 케빈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에게 Brown-Smith라는 성을 붙여주는 게 정말 맞는 일일까요? 


그냥 여러분도 한번 생각해 보시라고 써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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