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discrimination).
각각 등급이나 수준 등의 차이를 두고서 구별하는 것.
개인이나 집단의 특성을 이유로 부당하게 구별하여 대우하는 행위.
차별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고, 그 경험의 편차도 크다.
사람이 사는 사회라면 보편적으로 있는 성적 (혹은 성지향성에서 기인한) 차별이나 계급 차별 등을 제외하고 영국과 같은 서유럽권 국가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은 바로 인종 BAME (Black Asian Minority Ethnic)에 의한 차별이다.
BAME이라고 줄여 말하기는 하지만, 정확히는 백인이 아닌 인종을 향한 차별 전체를 말한다.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종종 답답해져 오는데, 그 이유는 그 말 자체에서 풍기는 몰(沒) 다양성 때문이다.
Black이라고 해도, 출신지에 따라, 그 사람의 국적에 따라 입장이 달라진다.
거기다 Asian이라니. Asia가 얼마나 넓은 땅덩어린데 그걸 그냥 퉁쳐서 아시아 사람들이라고 부른단 말인가?
참고로 영국에서는 보통 Asian이라고 하면, 인도, 파키스탄, 중국으로 나눠지고, 그 외에는 모두 대충 'Others'라는 그룹에 속해진다.
회사에 BAME community가 형성되었다.
각 인종별로 대충 한 명씩 뽑아 사내 인종차별과 다양성에 관한 대화를 하라고 한다.
이 모임에 아래와 같은 사람들이 모였다.
(Indian) British (이미 오래전부터 영국에 정착, 런던출신이다)
(Pakistan) British (이민 2세대)
British (but black) (역시 피부색만 검다 뿐이지 뼛속까지 영국인. 뉴캐슬 출신)
British (half black) (엄마가 이민 1.5세대로 백인 영국인과 결혼했다. 웨일스 출신)
(Hong Kong) British (홍콩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이 자신이 어릴 때 영국으로 이민 와 정착했다. 이민 1.5세대)
Korean (20대에 영국으로 유학 와 정착한 이민 1세대. 나다)
우리는 각자의 다양한 경험들을 이야기한다.
피부색 때문에 Brexit 캠페인이 벌어졌을 때 어떤 차별을 당했는지, 동네에서 자신을 이민자로 착각한 사람들에게 어떤 취급을 받았는지, 혹은 자신의 부모님 혹은 조부모 세대가 어떤 일을 겪어야 했는지.
그 뒤 회사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문화권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축제를 열자는 제안도 나온다.
Black / Asian Celebration day.
그럼 내가 묻는다. Asian이라고 해도 문화권도 다 다른데 뭘 중심으로 할 거냐고.
대충 Diwali (디왈리, 힌두교의 빛의 축제) 같은 걸 생각하고 있던 이들이 나와 홍콩 출신 동료를 쳐다보고는 그런 제안을 한다.
"How about doing something like Chinese New Year's celebration?"
그래놓고 나오는 의견들은 대강 중국, 베트남, 일본, 태국의 것들을 짬뽕해 놓은 것들.
그 사실 (Chinese New Year가 아니라, 정확히는 Lunar New Year라는 사실도 덧붙여서)을 지적하면 그들의 표정이 멍해진다.
'그래서 뭐?', '뭐가 다른데?',라는 표정이다.
난 여기서 또 한 번의 장벽을 느낀다. '영국인'과 '비영국인'의 차이.
영국이라는 국적을 가진 이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그 국적이 아닌 이들이 보는 세상.
사람들은 가끔 그 차이를 잘 모르는 것 같다.
예를 들면 위와 비슷한 맥락으로 차별을 딛고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webinar로 꾸려보겠다고 이런저런 사람들을 초대했다.
인도 출신의 성공한 사업가 영국인. 홍콩 출신의 성공한 고위 공무원 영국인.
인도 출신의 사업가 영국인이 자신의 이야기 중간에 무심코 말한다.
"of course my sister had a difference experience as she's a girl" (당연히 여자인 내 동생은 다른 경험을 했지만요.)
홍콩 출신의 성공한 고위 공무원 영국인도 말했다.
"My family ran a Chinese takeaway when they first immigrated, but I..." (내 부모님은 처음 영국에 이민 왔을 때 중국 요리 배달집을 운영해야 했지만, 나는.. - 이렇게 성공했다는 이야기)
그들은 모두 '차별에도 불구하고' 성공을 이루었다는 말로 스피치를 마무리했다.
훈훈한 이야기였지만, 그냥 박수만 치고 넘어가기에는 생각할 거리가 많았다.
주위 인도/파키스탄 쪽 영국인 여자 친구들 중 많은 수는 여전히 가족들에게 중매결혼을 강요당했다. 그중 몇몇은 그걸 뿌리치고 연애결혼을 했고, 몇몇은 중매결혼을 했다가 결국 이혼하기도 했다.
홍콩에서 이민 와 1.5세대로 자란 그 영국인은 내게 차별이란 건 일시적이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를 보면서 영국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비자 걱정을 할 필요도 없고, 영어 발음과 억양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영국인.
몇 번이고 똑같은 문장을 반복해 연습하면서 회의에서, 면접에서 발음이 꼬이거나 단어를 잊게 되는 악몽을 겪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경험.
고작 전화 한 통을 하면서 몇 번이고 심호흡하면서 제발 상대방이 내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길 바라는 경험.
머릿속 생각과 말 사이의 괴리 때문에 답답해하는 경험.
그런 건 아마도 내가 영국인이 아니라서, 뒤늦게 외국에 정착하려고 애를 쓴 이방인이라서 했던 경험일 거다.
심심하면 영국인들이 주로 하는 펍 퀴즈에서 혼자 바보가 된 기분으로 술만 들이켜는 경험도.
어쩌다 한국과 관련된 게 나와 신나서 설명하는데 남들이 나를 신기한 앵무새 정도로 보고 있다는 걸 깨달았을 때 얼마나 어색하고 외로워지는 지도.
물론 이건 내가 영국에 사는 이방인이라 겪는 일들이고 생각들이다.
아마 한국에서도 이방인인 누군가는 겪고 있을 일들.
아니면 같은 영국인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개인이 가진 어떤 다양성 때문에 (그게 장애이든 성적 지향성이든, 종교든 뭐든 간에)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속으로 겪고 있는 일일지도.
그러니 결국 차별은 입장이 다름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와 네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차이와, 그 차이가 이해로 발전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불협화음. 혹은 날카롭게 베고 지나가는 칼날.
가장 좋은 건 차이를 이해하고 조심하는 게 최고겠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