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임원 중에 G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야망이 큰 워크홀릭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부터 밤낮, 주말, 휴가 가릴 것 없이 회사일을 자신일처럼 생각하며 살았다. 회사의 성공은 그 자신의 성공이었고, 그런 열성과 출중한 능력으로 초고속 승진 가도를 달려 일찍 임원직을 따낸 사람이다.
그는 유능하고, 대부분의 문제는 그를 걸치면 어떤 식으로든 해결책이 나오곤 한다. 그게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딱히 상관은 없다. 좋은 방향이라면 그는 이번에도 또 한 번의 성공을 거둔 것이며, 나쁜 방향이라도 그게 회사를 휘청하게 하는 결과가 아니라면 이제 그런 것쯤은 가뿐히 넘길 수 있는 권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회사 입장에서는 유능한 직원이지만, 다른 직원들에게는 까다롭고 대하기 힘든 상사다. 일처리에 있어서 모호함이 없는 건 좋지만, 동시에 무척 직설적이고 감정도 잘 드러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뭔가가 잘 안 풀릴 때 회의장을 얼음장으로 만드는 것도 모자라, 잘못 걸리면 불쑥불쑥 들이미는 얼음창에 찔려 피가 솟구칠 수도 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회의장에서 그의 눈치를 보는 상황이 발생하고, 어쩌다가 누가 대답이라도 잘못하면 그 사람이 공개적으로 숙청당하는 걸 불편한 침묵 속에서 견디며 봐야 할 때도 있다.
그런 살벌한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누군가는 화장실에서 울고, 누군가는 흡연장에서 깊숙이 담배연기를 들이마시고, 누군가는 감정을 추스리기 위해 주차장으로 도피하기도 한다.
G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 상황에서 끼어들거나 말려봤자 불나는데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상황의 심각성에 따라, "You know how G is like" (G가 어떤 사람인지 알잖아), 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을 다독이거나, 아니면 G가 차분해지기를 기다렸다가 따로 그건 좀 심했다고 말을 한다. 그럴 때면 G나 혹은 그의 측근들은 그를 두둔하며 말한다. 그건 그저 그의 성격이 ' 'direct and honest' (직설적이고 솔직) 하기 때문이라고. 그래도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일이 안 풀려서 그도 답답해서 그랬던 거라고.
그런데 나는 이런 상황이 무척 불편하고 마음에 안 든다.
누구는 회사 생활 안 해봤는가. 누구는 스트레스 안 받아봤나? 누구는 일이 안 풀려서 짜증 내고 싶었던 순간이 없었던 줄 아나.
화가 난다고, 답답하다고 그걸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에는 어떠한 노력이나 배려도 필요하지 않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란 거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히 직장인들은 그런 상황을 참거나, 나름의 해결법을 찾아 해소한다. 일은 일로만 보려고 하고 감정을 배제하려 하거나, 화장실에서 머리를 식히거나, 그것도 아니면 직장 밖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하거나.
그렇지 않고 사람들이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다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면 조직 생활은 당장에 파탄이 날 테니까.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신의 본능이나 기분을 억누르고 조직생활을 우선적으로 보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건 성격의 문제가 아니란 소리다.
그리고 사람을 부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갑질'이란 말이 왜 계층이나 나이, 성별, 조직 관련 없이 있겠는가. 누구든지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잘' 부리는 건 누구나 할 수 없다. 특히 다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팀을 '잘' 운영하는 건 더더욱 힘들다. 그건 그냥 '이거 해'라는 명령을 내리는 수준이 아니라, 팀 전체를 파악하고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직급이 올라갈수록 우리는 따로 리더십 강의를 듣거나, 매니저로서의 교육을 받는다. 그래야 팀원들이 편해지고 팀의 효율이 올라가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직급에 있는 사람이, 혹은 누군가를 고용하는 입장에 있는 사람이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하고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면 그건 그 사람이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직설적인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쉬운 길을 택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참고,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개인의 감정을 삼키고, 전체 상황을 고려하고 다른 이들의 입장까지 배려하는 건 어려운 길이니까.
그런 까닭에 나는 집에서도 아이들이 화가 난다고 성질을 부리거나 소리를 치면 그렇게 얘기한다.
나라고 그렇게 할 줄 몰라서 지금 참고 조용히 너희들에게 설명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나도 너희들에게 소릴 지르고 화를 낼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지금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너희들도 쉬운 길을 택하지 말고 어려운 길을 택하라고.
요즘 들어 뉴스를 너무 봐서인지, 기분이 종종 울적합니다. 수만 명의 목숨이 달린 결정을 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들 입이 가볍고, 행동은 그보다 더 쉬운 건지.
얼른 중동의 상황이 종결되어 고통의 시간이 끝나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다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