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 사랑 재래시장
재래시장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 계획을 짤 때 어김없이 리스트업 해놓았다. 그리고 런던에서의 가장 첫 일정은 시장 구경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층 버스를 타고 좋아하는 재래시장에 가다니, 너무 설레는 아침이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투명 아케이드가 멀리서부터 사랑스러웠다.
조금은 촘촘하게 세워진 초록 기둥을 따라 올라가면 투명한 아케이드가 덮혀진 공간 아래로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비슷한 듯 이국적인 시장 분위기는 어쩐지 나를 흥분상태로 만든다.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마스크 없는 세상 속에서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시식을 권하거나 활짝 웃어 보이는 가게 사장님들을 마주했다. 코리안들은 트러플을 베리베리 사랑한다며 트러플 파우더를 나에게 내밀던 할머니에게서 여행 첫 기념품을 사고야 말았다.
약간 쿨톤의(?) 분홍빛이 도는 우리나라의 정육점과는 다르게 조금 따뜻한 노란빛이 도는 은은한 조명 아래로 가지런히 놓인 각종 부위의 고기들. 박음질한 것처럼 생긴 실들은 아마도 무게 단위를 표시해둔 것 같은데 실 덕분에 더욱 만화 같아 보이기도 했다. 조리가 되는 숙소였다면 어느 부위든 사서 먹어보고 싶었으나 런던의 숙소는 다 호텔로 예약한 터라 사질 못했다. 꼭 중세시대 그림에 나올법하게 생긴 이 정육점의 고기들을 지나칠 때마다 너무 먹음직스럽다며 탐복하던 남편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비슷한 듯 어딘가 생소한 모양새의 채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지난번 짧았던 유럽 여행엔 시기가 맞지 않아서 구경도 못했던 납작 복숭아를 여기서 찾았다. 털복숭이인 것도 색도 비슷한데 모양이 조금 납작해졌다고 이렇게 맛있을 수가. 며칠 뒤 이곳 납작 복숭아가 생각나 시장을 다시 찾았지만 문을 닫아서 사지 못했다. 꼬릿한 치즈 냄새와 케이크를 마치 분식집 순대처럼 내놓고 한 조각씩 잘라서 파는 풍경까지 영국 사람들에게는 일상일 그 모든 것이 나에게는 꿈처럼 행복했다.
28일 동안 총 4개국을 돌아다니면서 만난 모든 도시들의 재래시장을 다녔다. 내가 꿈꾸고 상상했던 모습의 시장과 가장 비슷했던 곳이 버로우 마켓이었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무심한 듯 가지런히 정리된 과일 사이로 꽂아둔 직접 쓴 까만 가격표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룬 풍경은 한동안 내 폰의 잠금화면이었다. 내가 산 것이라고는 납작 복숭아 세 개와 핑크레이디라는 이름의 사과 두 개가 다였지만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이곳으로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