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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속 Apr 21. 2016

스스로를 형, 오빠라 부르는 사람들

아, 그거 형이/오빠가 해줄게  

자신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을 대할 때  자신이 나이가 더 많음을 강조하는 단어를 자주 사용해 넌지시 본인이 윗사람임을 자꾸 각인시키는 인상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위의 예에서 처럼 스스로를 '나'라는 1인칭으로 언급하는데 실패하는 유형이다. 본인이 그렇게 몸소 불러 보여주지 않으면 혹시 형, 오빠 소리 안 할 것 같아 불안해서 그런 건지 어쩐 건지는 잘 모르겠다. 딱히 성 차별 발언을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길이상 '누나/언니'는 제목에서 뺐다.


앞서 밝혔듯 스스로를 칭하는 말은 '나' 라던지 '내가' 같은 1인칭을 쓴다. '형/오빠', '언니/누나' 같은 말은 나보다 나이 많은 타인을 지칭하는 3인칭 호칭으로 남이 나를 불러줄 때 쓴다. 말 그대로 나는 '나'니까.


3인칭 호칭을 스스로에게 직접 붙이는 언행은 본인 이름을 본인이 말하며 기싱꿈 꾸는 애교를 발산하는 여성들의 경우와 유사한 행태에 해당한다. 이 정도 되면 경각심이 좀 생기나


자세한 용례는 국어사전을 참조.

http://dic.daum.net/word/view.do?wordid=kkw000292371

형, 오빠, 누나, 언니 다 찾아봐도 '자기보다 어린 상대방을 두고 자기 스스로를 높여 부르는 말' 로서의 의미는 없다. 혹 스스로를 그렇게 칭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23세기쯤엔 사전에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초면에 서로 존대를 써가며 대하다가 좀 친분이 쌓일 무렵. 인사치레로 그냥 말 편하게 하시라 했더니 다짜고짜 "형이 말이야" 해버리면 갑자기 뭔가 관광지 상점에서 바가지 쓴 것 같은 허탈감이 몰려오곤 한다. 아. 당했구나.


뭐, 나는 좀 쪼잔하고 그쪽은 좀 거만한 거라 치고 넘어가는 편이지만 이상하게 난 저 말 한마디에 호감에서 와르르 비호감으로 극성이 바뀌는 경우를 꽤 여러 차례 경험했다. 첫인상에 호불호 등급이 있다고 친다면 이런 류의 사람은 곧바로 밑바닥이다.


요즘은 회사에서도 영어 이름을 만들어 부른다던지, 직급을 한 가지로 통일한다던지 해서 서로 평등한 관계로 소통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을 본다.

내가 다니는 회사에서도 서로 영어 이름을 사용해달라는 가이드라인이 내려온 적이 있었다. 실제로 일하다 보면 본인 직급 높다고 상대방 나이는 잊은 채 반말투로 말을 깔고 보는 똥매너가 심심치 않게 눈에 보이던 터라 일말의 변화를 기대했었으나 결과는 fail.


책상에 영어 이름만 하나 더 붙었을 뿐,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존중이라는 건 호칭이나 직급을 붙이냐 떼느냐 보다는, 지위 여하를 불문하고 상대방에게 늘 존댓말로 말하는 것이 더 중요한 포인트인데 다들 그걸 놓치고 있었고, 이 부분을 바로잡아주는 지원 사격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동등하게 영어 이름 부른답시고

누구는 "야 Kate" 하고

누구는 "예 James님, "  


같은 직급 호칭 쓴다며

누구는 "야 김 매니저, 잠깐 와봐" 하고,

누구는 "박 매니저님, 부르셨습니까"   


이러면 당연히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 영어도 잘 못하는데 이름만 재미 교포가 되거나, 직급 명패 달고 떼고 하느라 힘 쏟을 일도 없이 심플하게. '반말 쓰지 마세요' 한 가지에만 집중했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이름 말고도 참 많은 호칭이 따라붙는다. 우리나라는 특히 나이, 학번, 연차, 직급이 그때 그때 편의대로 우선순위를 꿰어차 고약하게 사람을 괴롭히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얼만큼을 내려놓고 얼만큼을 또 챙겨야 하는가는 참 어려운 문제다.


다만 분명한 것은 결코 본인이 스스로를 높일 수 있는 말은 존재하지 않더라는 것.


PS

혹시 주변에 스스로를 형/오빠/누나/언니로 칭하지만 세상에 둘 도 없이 너무나 훌륭한 인격을 갖춘 분을 백 명쯤 알고 계시더라도 노여워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말에 대한 대단한 지식도 없고, 바른말 쓰기 운동 같은 것은 더더욱 관심 밖인 보통 사람입니다. 가끔은 형으로, 또 가끔은 동생으로 잘 살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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