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은 사진에 대한 강박은 아마도 야경 사진에서 그 정점에 이르는 것 같다. 삼각대 없이 셔터를 길게 늘어트리는 일은 곧 사진을 망치는 일로 여기는 게 보통이다.
내가 보고 느끼는 세상은 어둡고 흔들리고 흐릿할 때가 아주 많은데 왜 그런 사진은 찍으면 안 되는, 혹은 찍자 마자 버리는 사진이 되는 걸까.
사진은 2009년 겨울, 충남 서산을 향하던 고속버스에서 만난 장면이다. 터미널을 떠난 지 얼마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잠시 기억을 잃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해는 어느새 넘어갔고 차는 고속도로를 순탄히 달리고 있다. 일정한 소음과 진동, 히터 바람, 사람들의 체온과 호흡이 뒤섞여 도무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강력한 최면 같은 졸음이 실내를 가득 메웠다.
차창은 한여름 냉음료 잔처럼 축축해 창밖의 사정이 묘연하다. 중앙분리대 넘어 맞은편 차량의 날카로운 불빛이 아래로 줄지어 스쳐가고 위로는 노란 나트륨 등이 알알이 맺혀 넘어간다. 잠이 덜 깬 걸까 혹 우주선을 탄 꿈을 꾸고 있는 걸까.
잠시 멍하니 지켜보다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지금껏 살면서 설정해본 가장 긴 셔터 속도 값에 이르렀을 때야 비로소 그 꿈결 같은 풍경이 액정 화면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간을 들여 채색의 결을 입히듯 흐릿하게 담아내야 하는 류의 풍경이 있다는 걸 이 날 처음으로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