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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속 Jan 19. 2017

파리-몽생미셀 자동차 여행

차를 몰고 달려 나가는 길 위에 여행이 있다

여행을 다녀온 건 작년 3월 마지막 주였다. 이런 저런 이유로 글 정리를 미루다보니 어느덧 해가 넘어가고 1년 전 일이 되어버렸다. 절친한 동생 R과 함께한 파리 여행이라 참 뜻깊었지만 그 중 가장 특별했던 여정인, 당일치기로 다녀온 몽생미셀 이야기만 담아 보기로 한다.




아무 계획도 없었다

딱히 도움 될만한 파리 여행 정보 같은 걸 기대했다면 잘못 오셨다. 여행기의 장르는 개인적으로 크게 두 가지가 있다고 보는데 하나는 정보, 나머지 하나는 자랑. 이번 경우는 아무래도 후자쪽일 수 밖에 없겠다. 적당히 게으르게, 방목된 짐승처럼 다니는게 여행의 컨셉이었으니 그걸 기록한 사진 역시 촘촘할 리가 없다.


아마도 구글과 각종 여행 어플이 우리를 도와주는 시대이기에 가능한 게으름일 것이다. 하고 싶거나 알아 보고 싶은 게 있으면 그 때 그 때 찾아 보고 움직이면 되는 세상이니, 그 세상을 최대한 활용하는 식의 여행을 하기로 우리는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다.

나보다 하루 일찍 귀국하기로 한 R이 온전히 쓸 수 있는 마지막 하루를 남긴 일요일 오후. 쌀쌀한 날씨에 갑자기 내리는 비를 핑계로 우리는 낮맥을 했다.

내일 몽생미셀 갈까?



멍하니 창 밖의 풍경과 사람을 안주 삼아 셔터를 누르던 R이 말문을 열었다. 사실 이미 파리에 여러 차례 여행을 다녀간 R의 이번 유일한 목표는 몽생미셀 뿐이었다.

그래, 가자.

지도를 띄워보니 왕복 900km에 가까운 여정. 서울-부산을 당일로 왕복하는 셈이다.


만만치 않은 여정이라 렌터카를 알아보기에 앞서 새벽에 출발하는 버스 투어를 알아봤지만 이튿날 바로 출발하는 프로그램은 없었다. 렌터카 역시 몇 곳을 알아봤으나 일요일이라 전화를 받는 곳이 없다.


이 나라 사람들은 진정 충동적으로 뭘 하고 그러지 않는 것인가.


마지막으로 Enterprise/National 렌터카에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았고 기적적으로 꽤 괜찮은 가격으로 예약에 성공했다. 그렇게 낮맥 타임을 뿌듯하게 잘 마친 뒤 비 그친 파리를 조금 돌아보고 하루를 마감했다.


이튿날 아침 일찍 렌터카 사무실이 있는 리옹역으로 향했다. 굵직한 글로벌 렌터카 체인이 입점해있으나 휴일 연락이 된 곳은 Enterprise 뿐.

차량 등급은 소형차Compact로 했다. 장거리는 중형 이상이 편하긴 하지만 남자 둘이 가는 여행이니큰 돈 쓰지 않고 다녀오고 싶었다. 다음에 더 성공해서 다시 가면 좋은차 타자

차량은 OPEL사의 Corsa를 배정 받았다. 국산차로 치면 프라이드/아베오급 소형차로 보면 된다. 사실 장거리 여행 보다는 도심 출퇴근 용도에 걸맞는 차종이다.

1.4L 가솔린 터보 엔진에 6단 수동 트랜스미션 조합이라 적극적으로 출력을 활용해 보면 배기량의 한계를 1.5 배 정도 상회하는 수준의 달리기 실력을 보여준다.


1999년부터 2013년까지 십 수년 간 수동 차만 타온 이색 취향이 이 날 드디어 빛을 발한다.

폰 거치대를 따로 준비 못해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 했는데 뜻밖에도 애플 카 플레이를 지원한다.

애플 지도를 활용해서 네비게이션을 구동했다. 정보가 정확하고 GUI 직관성도 무척 훌륭하게 잘 정리되어있어 여행의 질을 한층 높여줬다.

국내에서도 그렇지만, 이런 해외 여행지에서 자동차, 바이크 등의 자유 이동수단이 생기면 뭔가 갑자기 신분 상승이 된 기분이 든다. 대중 교통으로는 갈 수 없는 곳에 마음껏 가고, 멈출 수 있는 자유를 얻은 것이니. 이렇게 고속도로 휴게소에 자유롭게 들러보는 사치도 누릴 수 있다.

고속도로 속도 제한은 130km/h 로 국내 대비 매우 높다. 도로 폭이나 커브길의 굽이침 정도는 우리나라 고속도로와 비슷한 수준인데 포장 상태는 훨씬 좋다.


무엇보다 가장 큰 차이는 운전 매너. 더 높은 제한속도가 가능한 것은 운전자 개개인의 기량과 매너가 뒷받침 되어야 하는 일이지, 도로 기반시설만 가지고서는 될 일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운전을 좋아하고, 차를 몰고 달려나가는 그 자체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축복같은 여행이다.


상위 차로는 거의 항상 비어 있고 이렇게 길이 다 비어 있으면 무조건 모두 최 하위차로를 이용하는게 너무나 당연히 지켜진다. 선진국에 산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눈물이 날 정도로 기분 좋은 드라이브다.

속도계로 140km/h (gps 130km/h정도 된다) 정도로 크루즈 컨트롤을 걸고 최하위 혹은 차하위 차로를 주행하면 거의 1시간 가까이 크루즈 컨트롤을 끌 일이 생기지 않는다.


차가 없어서가 아니다. 내 앞으로 차가 들어오고 나가고 하지만, 앞에 슬그머니 들어와서는 밍기적대며 길을 막아 브레이킹을 하게 만드는 차가 단 한대도 없기 때문이다.


차선 변경 때 차량의 움직임을 보면 수평방향이 아닌 대각선 방향으로 빗겨쳐 나가듯 최대한 가속하며 들어와 기존 진행 차와의 거리를 띄워준다. 개개인이 예외 없이 행하는 이런 작은 습관이 모여 결국 선진국을 만든다.

제법 굵은 비가 오락 가락 하는 날씨지만 다들 크게 동요치 않고 묵묵히 달려가는 모습이다. 물 고인 곳 없이 배수도 잘 된다.


차를 몰고 달려 나가는 그 길

그 풍경 속에 여행이 있다


다른 글에서 밝혔듯, 내게 있어 여행은 점이 아니라 선의 성격을 띠고 있다. 목적지에 도달하는 그 여정, 차를 몰고 달려 나가는 그 길 위 끊임없이 나타나고 사라져가는 그 풍경 속에 여행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여행은 정말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Need for Speed - Porche Unleashed

대학 시절 즐겨 했던 PC 게임 중에 Need for Speed - Porche Unleashed 가 있다. 실제 포르쉐 차량과 유럽의 도로를 매핑하여 만든 도로가 일품이었는데, 그중 가장 좋아한 맵은 Normandie 였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에 드디어 실제 그 길 위를 달리게 된 것이다.


우리 출세 했다

수요미식회에서 신동엽씨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아, 나 성공했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는데. 우린 이 날 그 작은 차를 타고 달려나가는 이 길 위에서 "우리 출세 했다" 를 수없이 반복했다.   


몽생미셀에 거의 도달할 무렵 이 길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잠시 차를 바짝 길가에 붙이고 내렸다.

거름냄새나는 밭.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말이 이럴때 쓰는 말이던가.

둘 다 사진을 무척이나 좋아하다 보니 이럴 때 서로 눈치 안 보고 충분히 찍고 느끼고 할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도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가는 여정이 너무 인상 깊어서였을까. 개인적으로 정작 몽생미셀 자체의 기억은 그렇게 강렬하지 못했다. 이 날 날씨가 아주 변덕스러워서 우리가 무척이나 고생 했다는 기억만이 남아있다.


이쯤 왔을 무렵 아주 잠시 날씨가 개었고 이전, 이후로 강풍과 폭우가 우리를 괴롭혔다.

돌아오는 길은 반쯤 조난 당한 상태로 한 시간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 카메라를 꺼낼 수조차 없었기에뭐라 증명할 사진이 없어 참 억울하다.


그런 날씨 덕에 오는 길에는 이런 무지개를 만났다.

돌아오는 길에서도 애플 맵은 유용했다. 전방에 사고가 있음을 실시간으로 알려줬다.


잠시 뒤 정체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급차가 지나갔는데 말로만 듣던 모세의 기적을 실제로 경험했다.

어느덧 파리 시내에 다시 돌아왔다.


서울로 치면 광화문 인근에 들어온 느낌인데 여기서는 앞서 고속도로에서 느꼈던 유러피안 매너는 온 데 간 데 없다. 사람이 모여 있는 밀도가 일정량 이상이 되면 결국 야생이 되는 건 역시나 어느 나라나 똑같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강남대로 테헤란로 네이티브 드라이버의 위엄을 보여주겠노라며 국위선양(?)을 좀 해야 비로소 사방에서 쳐들어오는 트래픽을 제압할 수 있었다.


구조적인 특성상 비가 오면 해치백은 뒷유리가 이렇게 엉망이 되는데 이것도 특유의 운치가 있다.  

드디어 다시 숙소에 도착했고 마지막 남은 한 자리 주차 칸에 차를 넣느라 분주한 내 모습을 R이 찍었다.

앞뒤 범퍼로 슬쩍씩 밀어 차를 댄다고들 하지만 그것도 옛날 이야기인지 이 여행에서 실상 그런 모습을 목격하지 못했기에 앞뒤 접촉 없이 주차를 하고 뿌듯하게 하루를 마감했다.


퇴근시간 이후부터 오전 출근 무렵까지는 골목 길가에 무료 주차가 가능하기에 이렇게 세워두고 이튿날 반납을 하면 별 문제 없이 당일치기 일정 소화가 가능하다.


혹 우리와 같은 당일치기 여정에 도전하고픈 마음이 생긴 분이 계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은 단 한마디 뿐이다.


전혀 힘들지 않다

갈 만하다


서울-부산을 당일치기로 운전 하는 일은 결코 상상하기 어렵지만 앞서 밝혔듯 파리는 운전 매너가 좋고 도로 사정이 좋기 때문에 그 피로도가 한국 대비 현저히 낮다. 몽생미셀까지 거리상으로는 서울-부산 왕복 수준이지만 실제 느껴지는 피로감으로는 서울-청주 내지 서울-대전 정도 왕복하는 정도로 느껴진다. 고속도로 구간에서는 내가 운전을 한다기 보다 차가 나를 데려다 준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기 때문이다.


유럽도 오토메틱 차량이 늘고 있는 추세라 다만 며칠이라도 미리 예약을 하면 오토메틱 차량을 예약할 수 있다.


달려 나가는 과정 자체가 여행이 되는 경험을, 우리가 느낀 신분상승(?)과 출세감(?)에 공감할 수 있는 분들이 더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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