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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속 Feb 10. 2017

폭설 드라이브 (2/2)

후륜구동 쿠페로 동해까지

아래의 1편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구룡령

동해에 가려면 태백산맥 줄기를 지나야 하기에 어쨋든 한 번은 큰 고개를 넘어야 한다. 보통은 대관령, 미시령, 한계령 같은 메이져(?) 고갯길을 타게 되는데 우리는 구룡령을 선택했다. 사실 느낌 대로 달리다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보는게 맞다.


본격적으로 폭설의 강원도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

아무 생각 없이 창 밖으로 카메라를 내밀었다가 눈바람에 호되게 당했다.

늦은 점심 식사를 할 겸 구룡령 휴게소에 들렀다.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풍경이다. 눈이 쌓이면 복도에 카펫을 깐 것과 같은 원리로 실제 세상이 조용해지는 효과가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 중에 하나가 바로 4륜구동 1톤 트럭이 있다는 것이다. 그 시초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위 사진에 나온 기아 세레스CERES가 있다. 8-90년대 차가 여전히 현역으로 달리는 모습이 무척 반갑다. 군살 없이 각지고 간결한 라인이 요즘 트럭보다 더 모던한 인상이다.

80년대에는 4륜 구동 자동차로도 힘겨웠을 이 길을, 우리는 오늘 후륜 구동 쿠페로 달려와 뜨근한 두부 전골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와 보니 그 사이 눈발이 굵어졌다.


고요하게 정지된 풍경에 내리는 눈발은 중독성이 강해 아무리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

모처럼 동행이 나타나고, 심지어 그게 후륜 구동 차량이면 동병상련(?) 처럼 더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저 차도 윈터 타이어니까 올라왔겠지?" D와 잠시 또 몇 마디를 나눴다.


어느덧 양양에 접어들었다. 구룡령도 무사히 다 넘었다.

이름난 고갯길에는 하루 종일 반복적으로 제설차가 다니는 것 같다.

기사님 고생 많으셨습니다. 덕분에 안전하게 여행 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변태처럼고속도로를 회피하는 경로로 네비게이션의 안내를 받아 가다 보니 양양의 작은 마을 길을 달리게 되었다. 해가 조금씩 넘어가고 이 분들도 이제 퇴근 하시는지 더이상 일을 하지 않으셨다.

작은 길이다 보니 발목까지 충분히 차고도 남을 야생의 설원이 그대로 남아있다.


윈터 타이어는 타이어에 눈을 잘 달라붙게 해 눈끼리 엉겨 붙는 성질을 이용해 그립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이렇게 적당히 잘 깔린 눈길이 다져진 빙판길 보다는 한결 달리기에 수월하다.


단, 차 바닥이 눈에 닿지 않아야 하는데.. 우린 납작 땅에 달라붙은 쿠페를 타고 있었다.

타이어 자국이 없는 도로 중앙부에 쌓인 눈 때문에 이따금씩 바닥이 조금 닿는 일은 있었지만 어쨋든 체인 없이 잘 헤쳐 갈 수 있었다. 스키를 교통수단으로 사용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의 길이 계속 됐다.

 썰매 타는 느낌으로 바다를 향해 열심히 헤쳐 나갔다. 금세 밤이 찾아오고 있다.

4륜 구동은 만능이 아니다

4륜 구동의 힘을 빌어 윈터 타이어나 체인 없이도 출발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4륜 구동 장치는 차를 멈추는 일에 아무런 도움을 못 준다. 아우디 콰트로 할아버지라도 썸머 혹은 사계절 타이어로 이런 길에서 과속하면 통제 불능으로 미끄러진다.


특히 구형의 파트 타임 4륜 구동(수동으로 4륜 모드로 전환하는) 방식의 경우 4륜 구동 상태에서는 전/후륜 구동력 배분이 50:50으로 강제 고정된다. 마른 노면에서 4륜 모드로 바꿔 보면 차가 직진만 하려 하고 선회가 어렵다. 차가 회전할 때 좌우전후 각 바퀴의 회전수 차이가 발생하는데 4륜 구동 상태에서는 강제로 50:50으로 제한되기 때문이다. 그 회전차는 결국 고스란히 타이어와 노면 사이의 슬립으로 상쇄시켜야 하니 이런 눈길에서 코너링을 하면 곧바로 차는 미끄럼 상태가 된다. 과속은 더욱 금물이다.


이런 날 밭으로, 도랑으로 가는 SUV를 거의 매년 목격했다.(물론 후륜 구동 차량도 많이 봤다) 이 날도 4륜 구동 모드로 과시하듯 질주하는 SUV가 자주 보였고 그 중 일부는 정차할 때 무척이나 불안한 기동을 보였다. 멈춰주는 일은 구동 방식과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구동 방식에 관계 없이 이런 노면에서는 윈터 타이어/월동장비가 필수다.


어쩌면 출발조차 안 되어 운행을 포기하는 2륜구동 차량이 궁극적으로는 더 안전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헛바퀴 돌아 못 움직이는 차를 밀어주는 일은 어쩌면 결코 착한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어쨋든 위 사진의 차주는 다행히 다치지 않았고 잠시후 견인차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런 날 누구 보다 가장 고생하는 부류는 이쪽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날의 재앙은 야생의 해발 몇 백 미터의 xx령이 아니라 가장 크고 잘 정비된 해안 도로인 7번 국도였다. 어떤 면에서는 자연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다.


7번 국도에 합류 하니 누가 갑자기 불쑥 리모컨을 빼앗아 TV채널을 확 돌려버린 기분이 들었다. 낭만적인 설경의 북유럽 여행 프로그램에서 불합리한 단체 기합을 받는 혹한기 병영체험 캠프로.


평일이라 대부분 강원도 주민들일텐데도 겨울 타이어나 체인 등 월동 준비 없이 다니는 차가 많아 통제 불능으로 길에 널부러져 있었다. 체인을 감고, 윈터 타이어를 달고 있어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게걸음 치고 뒤엉키면 하염 없이 덩달아 길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법으로 윈터 타이어를 의무 장착하게 하는 유럽 어느 나라였다면 분명 길가에 버려진 차량들과, 그걸 피하려다 길 한복판에 멈춰선 차량들 때문에 도로가 마비 되는 이런 뉴스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그걸 증명했다고 생각한다. 악천후 주행 최약자인 대 배기량 후륜구동 차량으로, 이런 전쟁통 속에서도 차를 밀거나 어디 빠지거나 하는 일 없이 가다 서다를 반복할 수 있었다. 윈터 타이어는 정말 엄청난 발명품이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는 체인과 야전삽 등 월동 장비가 꼭 필요하다. 1편 참조.)

장사항 포장마차 거리

7번국도 피난길에서 1시간 가까이 씨름한 끝에 장사항 인근 포장마차 거리로 들어섰다. 바다를 구경할까 요기를 할까의 그 중간쯤이었다. 해수욕장에 가는 건 아무래도 위험 부담이 있을 것 같아 포기한 타협점으로 선택한 곳인데, 이쪽은 인적이 더 뜸해 거의 통행 불가능한 상태의 노면이 펼쳐졌다.

이쯤 되면 지상고가 높은 SUV에 체인이나 윈터/머드 타이어가 장착 되어있어야 헤쳐나갈 수 있다. 살금 살금 이전 차량의 궤적을 따라 가다가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잠시 걸었다.


이쪽은 (실내)포장마차 거리라 술 없이 간단히 먹을 메뉴가 별로 없고 날씨 탓에 즐겨 가던 곳들은 모처럼 휴일을 맞으신 모양이다. 아쉽지만 그냥 잠시 숨만 돌리고 속초 중앙 시장으로 이동해 저녁을 먹기로 했다.


 혹 운행 불능 상태가 되면 어쩌나 걱정 했는데 다행히 덜 쌓인 쪽으로 조금 돌아 나갈 수 있었다.

속초 중앙 시장

빙판에 가깝게 다져진 속초 시내를 살금 살금 달려 시장에 넘어오니 어느덧 9시가 넘었고 이쪽도 파장이다. 입구쪽에 늘상 줄이 끝 없이 서있어서 못 먹었던 이 호떡집 앞이 텅 비어있어서 드디어 먹어봤다. 마가린에 흠뻑 튀겨 건져낸 바삭한 질감과 단-짠의 짙은 밸런스가 무척 인상적이다.


먹을 당시엔 뭔가 몸에 죄책감이 많이 드는 맛이었는데 지금 다시 이렇게 보니 또 먹고 싶다. 줄 서는 이유가 이것이었군.

시장 안에 있는 회 센터가 아직 열어 있어 들어가 앉았다. 고생한 D를 위해 장치회 한접시를 대접하고 이런 저런 사는 이야기를 이어 갔다. 조수석 탑승 특권으로 나는 맥주도 한 잔 곁들였다.


장치회는 처음 먹어봤는데 입맛에 잘 맞아서 호떡에 이어 이 날을 특별히 기억하게 해줄 것 같다. 사실 회알못 싸구려 입맛이라 어딜 가나 광어 우럭 먹으면 되는데 이 날 점원 분의 말씀에 홀린 듯 이끌려 시킨 것이었다.


"이 눈 뚫고 여기까지 오셨는데 어딜 가나 있는 광어 우럭 드시는건 좀 그렇잖아요?"


 

오는 길은 보통의 사람들이 택하는 최적 경로로 이동했다. 뚝 떨어진 기온에 종일 온 눈이 분명 저승사자 노릇을 톡톡히 할테니 안전하게 미시령터널-홍천-경춘고속국도-올림픽대로 의 일반적인 이동 경로를 이용했다.


운전을 교대로 하자 제안할까 했으나 끝까지 D에게 신세를 지기로 했다. 보험 문제 때문이다. 이런 날씨에 혹여 잘못 되면 문제가 커지니, 뭔가 이상하지만 안전을 위해(?) D가 끝까지 고생하는 것이 옳다는 판단을 내렸다. 폭설에 영동지방으로 넘어온 사람이 없어서인지 돌아오는 길 역시 텅텅 비어있어서 너무나 쾌적했다.


출발 지점에 다시 도착하니 밤 12시가 조금 넘었다. 오전 10시쯤 나섰으니 14시간 짜리 당일치기 여행인 셈이다. 연료비는 9만원 정도가 들었고 고속도로 비용도 편도 정도만 들었으니 쏟아지는 설경을 경험하는 비용으로는 무척 저렴한, 가성비 만점의 짜릿한 여행인 셈이다.  


내려서 차를 보니 눈/비 섞인 길을 헤치고 다니느라 고생한 흔적이 역력하다. 다채로운 겨울 노면을 하루에 두루 겪으면서 느낀 것도 배운 것도 참 많은 날이다.


남은 겨울 모두 안전운전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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