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이후의 데이트

by 민트와정원


각자 사는 곳이 다를 땐 중간에서 보기도 하고 여기저기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데이트하는 재미가 있었는데 결혼 이후의 연애는 퍽 달라진 기분이 든다.


처음엔 헤어지지 않고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어 좋았다.

우리는 함께 있어 할 수 있는 것들을 뭐든지 해보기 시작했다. 요리책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먹기, 둘이 앉아 넷플릭스로 심야영화 보기, 집에서 안 나가기 챌린지라며 주말아침 늦잠, 낮잠, 간식까지 챙겨가며 둘이서만 웃고 떠들기 등등...


요즘은 다른 곳 좀 가자고 노래를 부르다가도 결국엔 생활권을 잘 벗어나지 않게 된다.

안나가 버릇하다 보니 생활반경이 점점 더 좁아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저녁에는 집 근처 산책을 다니고 주말이면 동네 카페에 나가서 기분전환을 하는 정도랄까? 통장을 합치다 보니 돈 나가는 게 실시간으로 보이는데 연애하던 때처럼 새로운 곳으로, 맛있는 음식을 몇 번 먹다 보면 정해놓은 예산이 초과되어 월말엔 서로 생활비가 모자란다며 손가락만 쪽쪽 빨고 앉아있게 된다. 아 이게 참 핑크빛 연애를 하던 그 미혼남녀 시절과는 다른 문제인 것이다.


둘이서 가정을 잘 이루고 사려면 절약하고 잘 모아서 노년까지 안정적으로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가도 우리 사이엔 자식도 없을 텐데 둘이서 더 많은 추억을 만들고 사는 게 평생의 재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면 옆에 있는 남편을 괜히 들들 볶게 된다. 흠냐 그래서 데이트를 하기로 하고 뭘 할지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막상 떠오르는 게 없는 거다. 우리는 좋아하는 평양냉면 집에 가서 점심 냉면을 먹고, 자주 가는 와인샵에 가서 와인을 사고 또 근처에 있는 공원에 가서 조용히 산책을 하고 돌아왔다. 이렇게만 해도 하루는 짧고 금방 지나가버렸지만 어쩌다 보니 또 버스 20분 컷 동네 근처였던 게 함정 ㅇ.ㅇ!


좋게 말하면 안정적이고 평온한 나날이다.

하지만 다양하고 조금 더 많은 추억이 있었던 것 같은 우리가 그리운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잘 사는 것도 좋고 차곡차곡 모으는 기쁨도 있겠지만 근처로 익숙한 곳으로 다니다 보면 둘 만의 이야기도 틀에 박힌 채 쳇바퀴 돌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둘이서 연락을 주고받더라도 어디 갈까, 숙소는 어떻게 할까? 새로운 주제가 없다 보니 늘 점심은 뭘 먹었는지, 퇴근은 제때 하는지 같은 시간에 맞춰 늘 하는 대화만 하게 되고 그냥 그렇게 무슨 대화를 해도 특별할 게 없는 느낌이랄까... 늘 설레고 신나고 특별하고 떨릴 수 없겠지만 내 안의 몽글몽글한 느낌이 비눗방울처럼 흩어지고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면 울적한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내 꿈은 할머니가 되어 추억을 꺼내 보아도 알록달록 다양한 곳의 수많은 추억들이 있었노라 밤 내내 떠들 수 있는 호호할머니인데 이거 맞는 거냐고요ㅠㅠ


편안함이 주는 행복에 무뎌져 제철의 풍경과 함께 쌓는 추억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