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랑이를 찾으며 종일 울던 콩떡이. 막상 말랑이가 퇴원하자 콩떡이는 말랑이를 슬슬 피했다. 말랑이가 도도도도 다가가도 멀찍이 떨어져 다녔다. 밥도 잘 먹지 않았다. 토요일에 퇴원했는데, 목요일쯤 되자 둘이 예전처럼 사이좋게 그루밍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콩떡이가 퇴원하자 전쟁이 시작됐다.
콩떡이만큼 울면서 온 집안을 돌아다니진 않았지만, 수술 이후 완전 아기가 되어서 하루종일 내 배 위에서 쭙쭙이를 하고 싶어하던 말랑이. 콩떡이가 없는 금요일엔 정말 하루 종일 나를 자빠뜨리고 싶어 안달이었다. ("집사야~ 빨리 누워~ 나 그 위에서 쭙쭙이하고 싶단 말야~") 좀 불안해서 더 그런가 싶었다. 그런데 말랑이가 퇴원했을 때처럼 미리 따뜻하게 데워둔 문간방에 콩떡이를 풀어놨더니 두둥. 말랑이가 하악질을 시작했다.
흐아악, 하악, 으르렁
고양이의 그로울링과 하악질을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고양이를 부탁해> 같은 프로그램에서 본 것처럼, 중성화 이후 얘네 관계가 완전 틀어져버리면 어떡하지? 또 걱정쟁이 본능이 나왔다. 정석은 일단 하루 격리하고 그다음날부터 합사시키듯 냄새 교환하고, 서로 얼굴 보고 있는 상태에서 간식 먹이고 등등 하는 거라고 해서 일단 콩떡이를 문간방에 가두고 함께 보냈다. 착한 구글이가 휴가를 내놓은 덕분에 말랑이를 맡겼다.
근데 문제는 얘네는 서로 모르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 마음 여린 콩떡이는 계속 말랑이가 보고싶어서 문을 쳐다보며 울고 말랑이가 보이기만 하면 따라갔다. 그럼 사자왕(아니 고양이인데요...) 말랑이는 이를 드러내고 몸을 부풀리며 하악질을 계속하다 냥냥펀치를 날렸다.
냄새교환도 시킬 겸 내가 말랑이를 번쩍 안고 문간방에 들어갔는데 이건 은근 괜찮았음. 말랑이는 그냥 내 배 위를 정복하고 쭙쭙이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듯했다.
그렇게 이틀간, 애들이 잠자는 낮 시간은 나도 긴장을 풀고 보내다가 저녁 즈음 콩떡이가 말랑이에게 따라붙고 말랑이가 하악질을 하노라면 내가 말랑이를 번쩍 안고 문간방으로 데려간다. 구글이와 밥도 따로 먹고 잠도 따로 잤다.
퇴원 다음날 밤. 양말에 콩떡이 냄새를 묻혀 말랑이에게 갖다대니 여전히 하악질을 한다. 얘네가 다시 사이가 좋아지긴 할까. 나는 불안하기만 한데 구글이는 둘을 동시에 수술시켰으면 둘다 힘없어서 못 싸웠을 거라는 둥, 따로 자니 침대가 넓어져서 좋았다는 둥, 그냥 둘이 붙여놓고 알아서 관계 정리하게 내버려두라는 둥 속편한 소리를 했다. 그래 둘 중에 하나는 생각이 없어야지 둘다 걱정쟁이였다간 걱정이 걱정을 키우고 키우고 키웠겠지. 고양이가 아니라 걱정이를 키웠겠지.
사냥놀이를 해서 좀 스트레스도 풀게 해주고 싶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딸랑거리는 장난감이 아닌데도 사냥 소리는 어찌 그리 귀신같이 알아듣는지. 방안에서 말랑이랑 놀아주고 있으면 밖에서 콩떡이가 애절하게 문을 긁었고 콩떡이랑 놀고 있으면 말랑이가 울어댔다. 구글이가 있었지만 구글이는 플스 패드를 만지며 대충 낚시대를 흔들어줬기 때문에 애들이 계속 나랑 놀자고 보챘다.
퇴원 다다음날, 말랑이는 실밥 뽑고 콩떡이는 소독약 바르러 병원 가는데 둘이 여전히 사이가 안 좋아서 콩떡이는 눕눕백에, 말랑이는 켄넬에 넣어 데려갔다. 말랑이는 켄넬에 남은 콩떡이 냄새에도 하악질을 했다.
첫날부터 콩떡이가 가까이 있어도 간식이랑 밥은 잘 먹는 게 웃겼다. 합사 영상들을 보면 문틈을 사이에 두고 서로 간식을 먹이는데, 하악질을 안하고 끝까지 간식을 잘 먹으면 어느 정도 가까워진 걸로 판단한다. 근데 말랑이는 먹을 때만 얌전하고 먹고나면 또 똑같이 때리고 으르렁댐. 먹기를 좋아하는 냥아치다.
그 다음날. 콩떡이가 말랑이를 따라다니길 포기한 것 같았다. 그냥 멀찍이 떨어져서 잤다. 말랑이가 입원했을 때도 그렇게 애타게 말랑이를 찾던 콩떡이가 이제 마음을 접었구나. 안쓰럽고 슬펐다. 말랑이 이 기지배. 흥흥
말랑이는 그러다 약간 이상한 소리로 혼자 화장실에 들어가 울곤 한다. 짝찾는 울음, 메이팅 콜과 비슷한 소리다. 중성화를 했는데 왜 저렇게 우는 거야. 게다가 화장실에서 울어대니 윗집 아랫집에 폐가 될까 신경도 쓰였다. 열심히 검색해보니 아직 호르몬이 남아있어서 중성화하고도 한동안은 그럴 수 있다는데.
콩떡이 입원 들어간지 일주일째 되는 금요일 아침. 둘이 얼레벌레 싸우는데 예전 같은 긴장감은 없다. 아직 조금 으르렁대긴 해서 순수하게 노는 게 맞는진 좀 헷갈리지만.
이렇게 따로, 그러나 굳이 한 자리에서 각자 그루밍을 하기도 한다. 이러다 또 서로 물고 빨고 하기도 하고 점차 독립적인 어른냥이로 커가겠지. 애기같은 모습이 점점 지워지는 게 아쉽기만 해서 시간을 붙잡고 싶은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