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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츠 Oct 23. 2019

고등학교 <자기소개서 쓰기> 수업을 계획하며

<자라온 이야기 쓰기>의 고등학교 버전, <나의 성장 글쓰기>

  2월에 평가계획을 세울 때, 한 선생님이 고등학교 2학년 2학기 때 자기소개서 쓰는 연습을 미리 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들어가게 된  수행 평가 활동이다. 나는 그때까지 해 온 ‘자라온 이야기 쓰기’의 고등학교 버전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진행하였다.



  대입  자기소개서는 글의 이름은 '자기소개서'이지만 실제로는 질문과 답변이다. 거짓말로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독자가 원하는 방향이  있다. 자기 삶을 돌아보고 자유롭게 의미를 부여하기엔 너무 목적이 뚜렷하고 제약이 많다. 2학년과 대입 자기소개서를 써 보자니,  생활기록부 기록이나 학교 활동이 끝나지 않은 상태라 대입 자소서에만 틀을 맞추기가 약간 어려웠다. 


   이건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2학년 2학기면 대회에서 상을 맡아 놓은 게 아닌 이상, 동아리 활동을 비롯한 웬만한 비교과 활동도 이미 경험했거나 마무리 하고 있는 단계라고 볼 수도 있다. 굳-이 자소서를 본격적으로 쓰자고 하면 못 쓸 건 없다.



   그런데 당시 나는 문과반 전체만 담당하고 있었다. 3학년을 살펴보니 문과반에서 대입 자소서가 필요한 아이들은 한 반에 여섯 명 정도. 많은 반도 10명이 안 됐다. 내가 맡은 2학년 아이들이 평소 수업을 대하는 자세나 수준으로 보아도, 대입에만 초점을 맞추면 활동에서 소외되는 애들이 너무 많을 것 같았다. 


   아직 2학년이니까 대입 자소서의 틀에 꼭 맞추지 않아도, <나의 성장글쓰기>를 하면서 좋은 소재를 길어올리는 것이 가치있으리라. 학급의 학생 수도 26명 내외로 아주 많지는 않은 편이어서, 자소서 틀에 꼭 맞게 쓰고 싶다는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지도하고, 그렇지 않은 아이들은 성장 에세이를 쓰게 하자는 생각으로 수업을 기획했다.



  수업을 구상하면서 그간 하던 글감 찾기 질문 말고도 고등학교 기간 동안의 인생 곡선 그리기, 버츄 카드(한 카드에 하나씩,  미덕과 그 의미, 실천 방법 등이 적혀 있다.)를 통해 내가 지향하는 가치 찾기 같은 활동도 해 보고 싶었다. 클레이 카드(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만한 여러 재미있는 질문이 담긴 카드. 청소년편과 진로편을 사놓고 그때까지도 고등학교에선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임을 활용하거나, '남이 보는 나'를 파악하기 위해 친구나 가족 인터뷰 활동을 해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한 차시  정도만 더 해도 할 수 있는 활동들인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아쉽네. 


  하지만 그때는 시간의 제약이  엄청 크게 느껴졌다. 최근 수행평가가 늘어난 만큼 지필평가의 부담은 줄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교육과정과  교과서에서 다루는 학습 내용 자체는 줄어들었다. 하지만 막상 학교에서 지필평가를 볼 때는 문항수도 그대로, 시험 시간도 그대로,  시험 횟수도 그대로이다. 이 지필평가 분량을 유지하기 위해서 교과서 외의 프린트를 줘서 내용 학습을 시킬 때도 있다니까?! 지필  부담이 그대로인데 수행평가만 늘리니 교사인 나도 바쁘지만 애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수행평가 비중을 늘릴 거라면 중간/기말 중 한  번만 시험을 보든지 아니면 시험을 35분만 볼 수 있게 하든지 제대로 평가할 테니까 좀 자유롭게 해 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2학기엔 추석도 있고 수련회도 가고 하느라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원래 더 짧기도 하다. 그런 한계와 더불어, 2학년  2학기 문과반 수업은 진짜... 아.... 다시 떠올리기도 두렵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1학기 때 봤던 애들이 맞나 싶게  무기력해지고, 그나마 열심히 하던 애들이 자꾸 직업반 체험을 나가네?



 뭐 다 핑계일 수도 있지만 그래서 새로운 활동은 추가하지 않은 채로 <나의 성장글쓰기>  활동을 시작했다. 동기 유발을 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것뿐 아니라, 실용적으로도 앞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글을 쓸 일이 많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대입 자기소개서 질문들도 소개해주고 기업의 자기소개서도 보여줬다. 자기소개서 질문 찾으려고 여기저기 가입했더니  계속 서류 마감일 안내 문자가 오기도 했다.




  대입 자기소개서 질문을 소개하는 동안에도 '나랑 상관없는데?'를 외치는 아이가 있었다는 건 비밀....★


  근데  생각해보니 그 아이도 자기한테 큰 의미가 있었던 선생님에 대해서 두 페이지 가득 글을 써서 냈단 말이지. 정말 남고생들의 불평을  어느 정도로 받아들여야 할 지 모르겠다. 애들의 말은 최대한 들어주자고 생각하면서도, 그냥 애들은 숨쉬는 것처럼 불평하는 것  같기도 하다. 부정적인 말투가 습관이 된 건지, 정말로 자신의 의견을 진지하게 표현하는 건지, 내가 애들이랑 소통을 못하는  늙은이가 되어버린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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