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과 한국을 오가며 보낸 3년의 유학생활, 아무도 안 될 거라고 장담했던 장거리 연애를 우리는 성공했다.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참 많이도 다퉜고, 위기는 수도 없이 왔지만 우리의 시간은 멈추지 않고 흘렀다. 남친은 기나긴 시간을 기다려줬고, 5년의 연애는 다음 해 2월, 결혼이라는 챕터로 이어질 예정이었다.
유학을 가기 전,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우리 둘 다 너무 외로워지면,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런 일이 생기면 서로에게 솔직하게 얘기해주자.”
너무도 솔직한,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그의 말에 당혹스럽기도 했고 슬펐다. 숨기려 했지만 우리도 알고 있었다. 마음이 변하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걸. “그래.”라고 대답은 했지만 사실은 끝까지 지키고 싶었다.
다행인지, 나에게 3년 동안 영화에 나올 법한 그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느 날 갑자기 재벌 3세가 하늘에서 뚝 떨어져, 우연히 지나가던 길에 내가 그의 코트에 커피를 쏟는다던가, 평소에 재밌게 잘 지내던 이성 친구가 연인이 된다든가 하는 그런 로맨스 시나리오는 나와는 전혀 관련 없는 일이었다. 패션 전공을 해서 그런가 내 주변의 남사친들은 99%가 게이였다.
대신 늘 과제에 쫒겨 밤을 새고, 커피 여러 잔으로 연명하는 삶이 전부였다. 좋아하는 공부를 하면 안그럴 줄 알았는데 외롭고 힘든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럴수록 지구 반대편에 살고 있는 그에게 더 의지했다. 매일 한국 저녁 시간에 맞춰 영상통화를 했고, 시시콜콜한 일들을 카톡으로 공유했다. 멀리 떨어져 있으니 애틋했고, 너무 보고 싶은 마음에 일년에 두 번씩 방학마다 한국에 꼬박꼬박 들어갔다.
정말 심심하거나 필요한 일이 아니면 연락을 잘 안하는 성향인 그에겐, 나와 하루 한 번, 한 시간 정도의 통화와 메시지 들에 답하는 건 꽤 버거운 일이었을 거다. 나 또한 엑스들과는 연락을 자주 하지 않는 비교적 쿨한 여친 타입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남자에게만큼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계속 연락이 닿아 있기를 바랬고, 인연의 끈이 끊어지지 않길 바랬다. 비혼에 가까웠던 나에게 결혼이란 생각을 안겨준 유일한 사람이라서 더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남친에게는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나중에 결혼 하고 장난스럽게 “어차피 확인도 못하는데 소개팅이라도 좀 하고 여자들도 좀 만나보지 그랬어.” 라고 하면, 너무 억울하다는듯이 “네가 그럴 시간을 안 줬잖아! 너 완전 집착이었어!” 하소연하는 그였다. 딱히 반박할 말은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 본격적으로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동시에 이제는 내 밥그릇도 챙겨야 하니 재취업 준비를 병행하기로 했다. 결혼식까지 시간은 6개월 정도 시간이 있었다.
쉽지 않을 거라 예상은 했지만, 취업이 되지 않은 채 결혼 날짜가 다가오는 게 점점 더 불안해졌다. 백수 상태로 수 백명의 지인들이 참석하는 결혼식장에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멀쩡하게 다니던 일까지 때려치고, 적지 않은 나이에 유학까지 다녀왔다는데 아직 취업도 못했다는 얘기를 3년 내내 서포트해 준 부모님 귀에 들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이뤄낸 것 없이 돌아온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고, 나 또한 나의 몫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 결혼 생활에 떳떳하게 입장하고 싶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던 끝에, 면접과 탈락을 반복하다가 다행히 결혼식을 딱 한달 앞두고 재취업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좀 더 창의적인 일을 해보고 싶어 패션 기획 직무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계속 낙방이었다. 결국 헤드헌터의 조언대로 방향을 틀어 VMD 경력을 살리기로 했고,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던 럭셔리 브랜드를 선택하게 됐다. 가장 빠르고 대중적인 패션 SPA 브랜드에서, 하이엔드의 정점에 있는 워치와 주얼리 브랜드로의 이동은 훨씬 흥미롭고 만족스러운 변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