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여름방학을 한국에서 보내고 런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집을 구했다. 그동안은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살았지만, 이번에는 처음으로 한국인 커뮤니티에서 집을 찾았다. 스크롤바를 열심히 굴리다, 호수 옆에 붙어 있는 예쁜 벽돌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평온해 보였다. 앞으로 더 바빠질 마지막 해를 보내기엔 그런 환경이 딱이었다. 번호를 눌러 바로 뷰잉을 잡았다.
“안녕하세요.”
문을 열어준 사람은 한국인 여성이었다. 짧은 인사였는데도 어딘가 어색했다. 런던에 온 뒤로 한국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일까. 꾸벅 인사를 하고 그녀를 보았다. 짧은 머리에 하얀 피부, 부드러운 인상에 차분한 목소리. 앞으로 일년간은 별 탈 없이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휴, 다행이다.’
이전 해에 함께 살았던 아제르바이잔 출신의 플랫메이트는 밤낮없이 시끄러웠고, 위생 관념도 맞지 않았다. 반년 정도 꽤나 개고생을 했고, 그럼에도 달라지지 않는 뻔뻔한 태도 때문에 결국 내가 돈을 더 내고 이사를 나와야 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제발 조용한 사람들과 살고 싶었다.
그녀의 안내를 따라 집 안을 둘러보며 공동 규칙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말투는 똑부러졌고, 군더더기가 없었다. 그런데 온화한 첫인상과 달리 그녀는 웃지 않았다. 단순히 무표정한 정도가 아니라, 입꼬리가 한 번도 올라가지 않았다. 앞으로 일년을 한 집에서 매일 마주쳐야 하는 사람인데, 조금은 냉정한 건 아닐까 싶은 태도였다. 친절을 바란 건 아니었지만, 마음이 조금 쪼그라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은 뷰잉을 다녔던 그 어떤 곳들보다 마음에 들었다. 깨끗했고, 넓었고, 무엇보다 조용했다. 나 역시 그런 환경을 원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약서에 사인을 하고 3층 방에서 살기로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런던에서 시각디자인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고, 이미 한국에서는 최연소 교수 자리를 맡아놓은 상태였다. 대기업 경력에 사업 경험, 그리고 영국 패션 브랜드에서의 실무 경험까지. 그녀의 스펙을 듣는 순간 입이 떡 벌어졌다.
위로 몇 살 차이 나지 않아 “언니라고 불러요.” 했지만, 경력과 인사이트는 나보다 이십년은 앞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사실들을 아무 감정 없이 툭툭 던지듯 말했다. 오히려 무감각해 보이는 말투가 그녀를 더 멀게 느껴지게 했다.
‘이 사람과는 아마 영원히 친해지지 못하겠구나.’
이사 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한참 서먹할 때였다. 어느 날, 그녀가 먼저 말을 꺼냈다.
“맥주 한잔 할래요?”
거절할 이유도, 명분도 없었다. 그래도 같이 사는데 친해지는 노력은 해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함께 동네 펍으로 향했다. 그리고 우리는 호수가 보이는 테라스에 앉았다. 해가 천천히 기울고 있었고, 공기는 평화로웠다.
대화는 시시콜콜한 얘기로 가볍게 시작됐다. 장거리 연애, 학업, 별것 아닌 일상 이야기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면접보는 자세로 진지하게 답변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정답을 찾기 위해 부지런히 머리를 굴렸다. 그녀가 무슨 답변을 얻고 싶은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앞으로 나의 진로에 대해 정곡을 찌르는 구체적인 질문들을 계속해서 던졌다. 솔직히 말하면 불편했다. 우리는 아직 그런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 왜 굳이 이렇게까지 묻는 걸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답을 이어갈수록 내 안이 정리되기 시작했다.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는 느낌. 그동안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스스로에게 제대로 묻지 않았던 질문들을 그녀가 대신 꺼내고 있었다. 노을이 지기 시작했고, 아름다운 주홍빛이 하늘에 이어 호수까지 물들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향기로운 IPA 맥주가 눈앞에 있었지만 평소보다 더 맛이 더씁쓸했다.
대화가 마무리될 쯤, 그녀는 나에게 2학년 때 만든 패션 화보 포트폴리오를 보여달라고 했다. 망설였다. 형편 없다고 생각한 포트폴리오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괜히 보여줬다가 살얼음판 같은 평가를 듣고 나면, 나 자신에게 더 실망하게 될까봐 두려웠다. 순간, 너무 쫄려서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이라도 해버릴까 싶었다.
하지만 다음날, 난 마음과 다르게 내 손으로 그녀에게 포트폴리오를 곱게 갖다바쳤다. 전날 들었던 현실적인 조언은 곱씹어볼수록 정말 도움이 되었다. 이 사람이라면 내가 놓치고 있는 걸 정확하게 짚어줄 수 있지 않을까, 내가 마지막 해에 뭔가 정말 제대로 해볼 수 있는 피드백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며칠 뒤 돌아온 피드백은 예상과 달랐다.
“이 정도면 지금 마켓에 내놓을 수 있는 수준이야. 실력도 있고 재능도 있어. 이제는 네가 진짜 원하는 걸 더 깊이 파고들어서 밀어붙여야 할 시기인 것 같아.”
“엥…?”
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매 맞을 각오를 하고 눈 질끈 감고 두 손바닥 내밀었는데 사탕을 받은 기분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때까지 나는 계속 의심 속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겉으로는 선택을 밀어붙이고 있었지만 속에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반복하고 있었다. 이 길이 맞는지, 내가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그 말을 듣는 순간, 내 마음에 파장이 일었다. 그녀의 말은 용기가 되어 방향을 만들어줬다.
‘끝까지 해보고, 아니면 그때 포기하자.’ 그렇게 생각을 바꿨다. 이후로 내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타협이 줄어들고, 변명이 줄어들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더 집요하게 밀어붙이게 됐다. 그때부터였다. 영국에 온 지 3년 차에 접어들면서 포트폴리오의 퀄리티가 달라지기 시작했고, 외부에서 받는 피드백도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마지막 해는 가장 많은 거절을 받은 시기였다. 동시에 가장 많이 시도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상하게도 예전만큼 지치지 않았다. 그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값진 수업이었다. 가장 많이 실패했고, 동시에 가장 많이 얻은 시기였다. 한국에서 영문과를 졸업하고 패션 VMD로 일했던 경험도 큰 도전이었지만, 어느 순간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반복되는 일상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러다 다시 도전한 유학은 단순한 학업 이상의 의미였다.
나 자신을 맨땅에 던지고, 정말 원하는 것에 몰입하고, 한계까지 밀어붙여보고, 결국 스스로 만족할 만한 결과를 만들어낸 시간. 그 모든 과정은 나에게 선물처럼 남았다. 나는 내 선택을 믿게 되었고, 그 믿음은 다시 나에게 도전할 용기를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