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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리 Nov 25. 2023

비극, 불완전한 존재에 대한 연민

고대 그리스 연극 2: <시학> 속 비극과 <오이디푸스 왕>

지난 포스트에서는 고대 그리스 연극을 당시 상황 그대로 이해해보려고 했는데요. 조금 생소한 내용이 많았을 거예요. 사실 ‘고대 그리스 연극’하면 그리스 “비극”이 훨씬 먼저 떠오르지요. 현대 사람들에게도 계속 언급되는 ‘비극’의 특별한 중요성이 사실 한 철학자에 의해 세워진 것이라면 믿으시겠어요?


오늘은 우리가 종종 당연시하는 비극의 존재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짚어보고 그 비극이란 것을 이해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합니다.




모방이냐 본질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비극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파고들기에 앞서, 비극이란 논의의 발생 배경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들어보셨을 거예요. 다소 추상적으로 들리는 직업이지만 이 철학자들은 세상의 본질을 이해하는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고자 고민한 사람들로, 정치, 사회, 예술, 인간, 문화 등 삶의 모든 영역을 관통하는 세상의 핵심 동력들을 발견하고자 했습니다. 공연예술에 대해서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었겠죠. 고대 그리스에서 워낙 유행하기도 했고, 대중유희는 인간 삶 속에 늘 주목받으며 존재해 왔던 것이니까요. 그만큼 공연 안에는 인간을 움직이는 엄청난 힘이 있고, 철학자들은 그 힘을 어떻게 운용하는 게 맞는지 고민했습니다. 이에 대해 플라톤(기원전 5-4세기)과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4세기)는 완전히 상반되는 분석을 내놓습니다.


플라톤은 <국가론(Republic)>에서 모방(Mimesis)이라는 개념을 소개하는데요. 연극은 진실에서 두 번 분리된 것이라고 이야기하며 공연이 모방에 불과하다는, 회의적인 해석을 내놓습니다. 예를 들어 신으로 대변되는 가장 순수하고 본질적인 이상향의 세계가 가장 진실한 것이라면, 그것을 본떠 만든 1차적 모방의 세계가 인간이 보고 듣고 느끼며 사는 현상계이고, 예술은 그 세계를 한 번 더 모방한 가짜의 세계라고 보는 것입니다.


플라톤은 이를 ‘동굴 비유’(Allegory of the Cave)를 통해 효과적으로 설명하고 있는데요. 이 비유에서 대부분의 인간은 동굴에 갇혀 살아가는 존재로, 그 동굴 밖의 세계를 인지하거나 탐험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들은 동굴 벽에 비치는 외부 세상의 그림자를 실제 세계라고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이 그림자의 세계가 예술/연극이겠지요. 그러나 간혹 동굴 밖으로 나가 진짜 세계를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동굴로 돌아와 다른 사람들에게 밖에서 본 것에 대해 이야기해 주지만, 동굴 안의 사람들은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오히려 밖에 다녀온 사람을 비웃습니다. 플라톤은 밖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사람을 철학자로, 동굴 안 사람들을 대중으로 봅니다. 이를 근거로 국가의 운영이나 리더의 역할은 대중이 아닌 철학자가 맡아야 한다는 철인정치를 주장합니다. 동굴 비유 속에서 그림자, 즉 연극은 대중을 현혹시켜 진실로부터 멀어진 상태에 안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동굴 비유'를 정리한 그림입니다.

(출처: https://www.studiobinder.com/blog/platos-allegory-of-the-cave/)


미국 학부생들에게 이 내용을 강의했을 때 생각도 못한 단체 반발이 있어서 놀랐었는데요. 포퓰리즘을 열정적으로 추구하고 엘리티즘을 혐오하는 미국의 정신에 근본적으로 위배되고 있어서였습니다. 트럼프가 포퓰리즘을 제대로 이용하여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피부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미국의 포퓰리즘은 정말 진지하고 실질적인 감성입니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부정적 해석에 반박하며 연극의 중요성을 역설합니다. 연극이 모방이 아니라고 하기보다는, 모방이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이며 인간만이 가진 특별한 능력이라고 주장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조화와 운율을 모방 다음가는 인간의 본능으로 꼽으며 예술을 인간의 가장 본질로 제시합니다. 플라톤이 동굴 비유를 사용했다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와 역사의 비교를 통해 이를 설명합니다. 여기서 시는 예술을 대변합니다. 역사가 구체적인 사실과 과거에 집중하는 좁은 시야를 가진다면, 시는 보편성과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매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잘 쓴 이야기는 주요 인물의 어떠한 행동이나 결정에 의해 초래되는 부정적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관객이 자신의 삶에서 그러한 행동을 지양하도록 장려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즉 가능성과 보편성을 통해 관객에게 교육적 효과를 가질 수 있는 것이지요.


스승과 제자 관계였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적 대치를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토의 중인 두 인물의 손가락이 서로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출처: https://www.libertarianism.org/articles/aristotles-arguments-private-property)




<시학>의 본질과 변질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시’의 바람직한 역할과 사용 방법을 정리한 책이 <시학>입니다. 연극의 개념을 공식적으로 정의하고 마치 사용설명서처럼 구체적으로 활용 방법을 기록한 첫 문서이기 때문에 지금도 연극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 가장 먼저 참고되는 문서입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려드릴까요? 아리스토텔레스는 비극과 희극 모두 똑같이 깊이 분석했는데요. 희극에 대해 적은 자료가 소실되었기 때문에 비극에 대한 이론만 전해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비극 비극 하지만 희극 이론이 남아있었다면 지금만큼 비극이 압도적 권위를 가졌을까 싶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특히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깊은 감명을 받아 연극이 가지는 힘을 분석하기로 합니다. 그렇게 <오이디푸스 왕>을 중심으로 바람직한 예술적 효과를 가지는 연극의 구조를 정리한 것이 <시학>입니다. 한 학생은 이 이야기를 듣고 “그럼 <시학>은 <오이디푸스 왕>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팬심 표출인 거네요?”라고 했는데, 정말 맞는 말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아테네가 펠로폰네시아 전쟁으로 스러지고 뒤를 이어 떠오른 다음 제국인 로마는 아테네 문화를 내세워 제국의 위상을 다지고자 하였습니다. 그만큼 아테네의 문명은 무시할 수 없는 문화적 힘을 상징하였는데요. 열정적으로 고대 그리스 연극의 힘을 이해해보고자 한 <시학>이지만, 로마가 아테네 고전을 빌려 제국 통치를 정당화한 것처럼, 이후 문화적 권위를 세우고 권력을 정당화하려는 여러 상황들에서 고전으로 확립되며 하나의 제안보다는 고정적 법칙화되어 평가의 기준으로 전락해 왔습니다. 이 내용은 프랑스의 신고전주의에서 다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이디푸스 왕> 속 <시학>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이상적 비극이 <오이디푸스 왕>을 모델로 했기 때문에, <오이디푸스 왕>의 모든 면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 완벽히 들어맞습니다. 우선 <오이디푸스 왕>의 줄거리를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극이 시작하면 오이디푸스가 통치하는 테베는 역병으로 고난을 겪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오이디푸스는 예언자 티레시아스의 말을 들어보지만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자 화를 내며 티레시아스를 벌한다. 티레시아스는 아버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침대를 공유하는 불한당이 신벌의 원인이라며 그를 찾아내어 나라에서 추방하여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 사람이 오이디푸스임을 암시한다. 오이디푸스는 불한당을 찾고자 관련 인물을 차례차례 소환하여 단서를 추적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실은 그의 아버지가 같은 예언을 듣고 오이디푸스를 두려워하여 그를 내다 버렸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오이디푸스는 양부모를 친부모로 믿고, 심지어 테베가 아닌 코린트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티레시아스의 예언을 믿기 어려웠던 것이다. 드러나는 단서들이 하나씩 오이디푸스를 가리키지만 그는 끝까지 이를 부정한다. 결국 추적 끝에 당시 오이디푸스가 성장하여 테베에 오는 길에 벌어진 전투에서 죽이게 된 상대방이 친아버지였다는 점, 그리고 테베에 도착해 왕이 되어 선왕비와 결혼을 한 것이 사실 친어머니와 결혼한 것이었음이 사실관계로 밝혀진다. 이를 알게 된 아내이자 어머니 이오카스테는 자결하고, 절망한 오이디푸스는 눈이 있었음에도 진실을 보지 못한 자신의 죄와 과오에 괴로워하며 스스로의 눈을 찌르고 테베를 떠난다.


<오이디푸스 왕>을 고대 그리스 시대의 연극 관습대로 올린 1957년 영화의 예고편을 잠깐 보며 이 이야기가 어떤 모습으로 무대에 올라갔을지 떠올려보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6UsFZ5SoLAw&list=PLpuhPUF1iWOF_iUbVFW4hgdZU_rR9hLHm&index=24

비극 - 낮아진 인간의 피눈물


이제 <시학>에서 말하는 비극의 요소들을 살펴보고 <오이디푸스 왕>을 예시로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비극이란?

인간 행동의 모방으로, 완전하고 전체적이며 어느 정도의 규모를 가진다. 비극은 관객에게 연민과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쉽게 말하면 좋은 의도를 가졌으나 잘못된 선택을 하여 끔찍한 결과를 겪게 되는 인물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 


비극의 목적

공감(sympathy)을 통해 연민과 두려움(pity and fear)을 불러일으켜 카타르시스(정화)에 이르게 한다.


비극의 구조

성공적인 비극은 복잡한 이야기 구조를 통해 목적(연민과 두려움 유발)을 달성한다. 이 이야기 구조란 우연과 필연의 법칙에 의해 혈연관계의 인물들 사이에서 아나그노리시스(anagnorisis), 페리페테이아(peripeteia), 파토스(pathos, 비애)가 발생하는 것이다.


*페리페테이아: 상황의 반전

          - 비극적 인물은 힘과 권위를 가진 위치에서 시작하여 극이 진행됨에 따라 그것을 잃고 추락한다

          - 소환된 인물이 오이디푸스 출생의 비밀(부모님의 진짜 정체)을 밝혔을 때

          - 테베의 왕이 근친적인 폭군으로 한순간에 전락

*아나그노리시스: 깨달음의 순간

          - 무지에서 앎으로의 전환: 페리페테이아(상황의 반전)와 함께 간다

          - 비극적 인물이 추락을 초래할 자신의 “비극적 결함”을 알아차리는 순간들

*하마시아(hamartia): “비극적 결함” 또는 오산

          - 비극적 인물은 기본적으로 좋은 의지를 가진 일관된 사람이며, 통제할 수 없는 아주 인간적인 결함 때문에 추락하게 된다

          - 오이디푸스의 오만은 아버지 살해와 근친이라는 의도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으며, 그의 고집과 아집은 진실을 보기 어렵게 했다


즉 오이디푸스의 비극은 출생과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일련의 우연들이 그를 필연적인 폭군으로 만들어버린 것에 기인하며, 혈족 관계의 복잡성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관객의 연민과 두려움을 이끌어냅니다.


전형적이 아닌 실험적 연출이지만 인상적이었던 <오이디푸스> 오페라의 클라이맥스 장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공연이 전하는 비극적 톤을 느껴보세요. 50:30부터 관람하시길 바랍니다. (뮤지컬 <라이온 킹>과 뮤지컬 <스파이더맨>의 연출로 유명한 줄리 테이머와 Saito Kinen Orchestra의 1993년 협업입니다. 줄리 테이머 특유의 가면극적 요소를 적극 활용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3ktRHwKN3-M 

오이디푸스의 추락이라는 모티브를 벌거벗겨지는 모습과 지하 공간으로 몸을 굽히고 들어가 헤매는 모습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잔인한 장면을 무대 위에 올리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 연극의 관행을 따라 눈을 찌르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오페라의 활용은 과거 코러스의 존재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비극의 구성 요소 (위에서부터 중요한 순서)

1. 이야기 구조/플롯(mythos): 사건의 정렬

“사건의 구조가 가장 중요하다. 비극은 인간이 아닌 행동과 삶의 모방이며, 삶은 행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끝도 어떠한 가치가 아닌 행동이다. […] 캐릭터 없는 비극은 있을 수 있어도 행동 없는 비극은 존재할 수 없다.” (-<시학> 중-)

2. 캐릭터(ethos): 인물 특성

3. 주제(dianoia): 주장이 입증되거나 보편적 진실이 언급될 때 필요한 것

4. 대사(lexis): 단어의 정렬

5. 음악(melos)

6. 스펙터클(opsis)


<시학>에서 정리하는 비극의 요소는 간단하게 이 정도로 정리되는데요. 오이디푸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잘 쓴 비극은 낮아진 인간의 회한을 그려(모방하여) 인간 보편의 삶의 필연적 한계에 대한 두려움과 연민을 자아낸다는 것, 그를 통해 대리 경험과 깨달음을 일으켜 겸허함과 정화(인간적 욕구에 대한)를 기대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시학>에서 규정하지 않았지만 마치 그러한 것처럼 통용되는 비극의 법칙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3일치의 법칙이라고 불리는 것으로, 행동, 장소, 시간의 일치입니다. 행동의 일치는 극이 하나의 메인 플롯(주 이야기)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말합니다. 여러 에피소드가 똑같이 중요한 비중을 지니는 옴니버스식 구성을 지양하지요. 장소의 일치는 극이 하나의 장소에서 일어나야 한다는 것인데, 한 무대에 여러 장소가 등장하면 안 된다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시간의 일치는 극의 사건이 24시간 이내에 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역시 앞서 언급했던 '고전화' 과정에서 많은 법칙들이 파생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포스트에서 고대 그리스 연극이 우화적 특성을 가지며, 통제되지 않는 인간의 본성통제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 구조 사이의 갈등이라는 삶의 본질적 문제들을 다룬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오이디푸스 왕>의 유명한 스핑크스 수수께끼(아침엔 네 발로, 낮엔 두 발로, 저녁엔 세 발로 걷는 것)는 인간 전체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오이디푸스의 운명을 예견하기도 합니다. 스핑크스를 물리쳐 테베의 왕이 되는 영광을 누린 그가 시력을 잃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이 세 발로 걷는 그의 미래 모습이었으니까요.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신을 원망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진실을 피하고 권위를 내세워 상황을 악화시키거나 눈을 멀게 하는 것은 스스로가 한 선택입니다. 물론 오이디푸스에게 억울한 부분도 존재하는데요. 좋은 삶을 살고자 노력했지만 그의 삶의 발자취는 의도치 않게 아버지 살해와 근친 등 사회 규범을 뒤흔들었고, 역병이라는 큰 규모의 피해도 야기하게 되었습니다. 통제되지 않은 그의 인간 본성은 무엇이었을까요? 이를 보며 관객이 정화하고 경계하게 되는 욕망들은 어떤 것인가요?


여러분의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통제하려 해도 통제되지 않는 운명적 상황들이 있었나요? 그 상황에 담긴 인간 본질적 특성이나 욕구는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봅시다. 그 순간들이 일깨워주는 삶에 대한 통찰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 비극은 이렇듯 가장 겸허해진 나를 마주하는 대리적 경험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경험과 통찰을 쌓을 수 있도록 독려하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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