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와서 연극학과 공부를 처음 시작하면서, 다들 당연한 지식처럼 '몰리에르'와 '타르튀프'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처음 들어보는 내용이라 당황했었다. 알고 보니 <타르튀프>는 연극사에서 늘상 가르치는 레파토리 극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유명세에 비해 공연 녹화본도, 실황 공연도 없어서 도무지 어떤 극인지 알 기회가 없었다. 희극이라 대본으로 이 극을 파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와중 근처 Laguna Playhouse에서 <타르튀프>를 올린다기에 얼른 보러 갔다. 처음엔 또 늘상 보던 똑같은 극이거니 했지만 갈수록 정말 괜찮은 공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미션 포함 2시간 20분의 대사 많은 극이었기에 늘 그렇듯 꾸벅꾸벅 졸면서 보았는데 그럼에도 괜찮게 느낀 건 오랜만이었다.
<타르튀프> Playbill
극의 내용은 타르튀프라는 인물이 신실한 성직자로 가장하여 한 귀족 집안의 수장들을 현혹하고 그 재산과 지위를 빼앗으려는 설정 위에서 진행된다. 흥미로운 점은 타르튀프의 시점이 아니라 현혹되지 않은 집안의 나머지 인물들의 관점 위주로 전개된다는 점이다. 타르튀프는 2막이나 되어야 등장하고, 그전에는 현혹된 집안의 권위자들의 아둔함과 그에 답답해하는 다른 인물들의 고민이 담겨있다.
<타르튀프>는 전형적인 희극의 구성을 따르고 있다: 계급사회의 질서가 흐트러지면서 온갖 혼란이 발생하고, 그 원인이 제거되고 결혼이 이루어지며 질서의 복귀를 축하하며 끝난다는 점, 상위 계급의 아둔함이 똑똑한 하위 계급의 조롱의 대상이 된다는 점, 노골적인 성적 농담이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는 점, 성직자나 귀족의 이중적 면모를 보여주면서 허례허식(인위적 고상함)의 피상성을 고발한다는 점 등이다. 여기서 질서의 전복과 성적 요소 사용은 가부장 질서 전복과도 연결되고, 가장 우아하고 단아한 듯한 인물이 능동적으로 자신의 성적인 매력을 사용하여 남자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잡는다.
시작 전 <타르튀프>의 무대 세팅
여느 희극과 조금 다르다고 느낀 건 가문의 권위자들이 타르튀프의 정체를 알고 그를 쫓아내고도 그가 이미 처리해 둔 서류 작업들로 타르튀프에게 모든 것을 뺏길 심각한 위기에 처한다는 것이다. 도저히 손쓸 수 없는 상태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적인(신이나 기적과 같은 허무하리만치 단순한 설정으로 꼬인 이야기가 전부 해결되는 것) 장치가 해피엔딩을 가져온다. 이 사태를 모두 파악하고 있던 훌륭한 왕자님께서 수하를 보내 전부 처리하고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것이다. 타르튀프의 매우 현실적인 전략들과 너무 대비되는 다소 허무맹랑한 전개라 해피엔딩임에도 강한 찝찝함을 남긴다.
<타르튀프>는 프랑스 궁정에서 상연된 극이고 궁정 귀족들의 반발을 사서 몇 번이나 금지됐다가 수정되어 다시 올라가는 등 복잡한 역사를 가진 극이다. 그만큼 다양한 버전이 있다고도 알고 있다. 처음엔 '위선자'라는 부제를 달았다가 이젠 '사기꾼'이라는 부제로 바뀐 것도 수정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다. '위선자'라고 하면 타르튀프와 귀족이 같은 위치에서 조롱받게 되니 불쾌했던 걸까? 사기꾼이라고 하면 타르튀프 하나만 일컫게 되고 타르튀프만 문제 삼는 제목이 되는 것이니 말이다. 그 혼돈의 와중에 극작가 몰리에르가 계속 자신의 뜻대로 극을 써나갔던 건 왕의 전폭적 지지가 있어서였다고 안다(당시 궁정 소속 극작가였던 걸로 알고 있다). 그래서 다소 이질적이고 갑작스런, 과도한 왕에 대한 칭송으로 마무리되는 엔딩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갔다.
또 흥미로웠던 건 타르튀프의 인물분석이었다. 원작을 읽어보지 않아 어떤 느낌인지 모르겠지만, 전에 이보 반 호프가 비극으로 각색한 버전의 실황 녹화본을 본 적이 있다. 그때 타르튀프는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모두를 현혹시키는 힘이 있는 인물로 나왔었다. 이번 극에서 타르튀프는 절로 혐오감을 일으키는 더러운 맨발과 기름진 장발의 중장년이었는데, 중간에 속옷을 제외하고 탈의한 모습까지 보여주는데 정말 매력적이지 않게 그려졌다. 그래서 타르튀프에게 정신 차리지 못하는 귀족들의 모습이 더욱 우스꽝스러웠다. 그리고 여성 인물이 타르튀프의 본모습을 이끌어내고자 미인계를 써서 유혹하는 장면에서 그녀의 혐오감이 강조됐다. (이보 반 호프 버전에서는 이 인물이 실제로 타르튀프에게 마음이 있는 것인지 모호하게 표현했다) 때때로 등장하는 그의 본모습은 추접스럽게 고기를 뜯거나 흥청망청 술을 마시고 핑계를 대며 하녀의 가슴을 만지는 그런 절대빌런의 모습이었다.
Laguna Playhouse 정문
어느 극장에서나 중장년도 아닌 노년의 백인 관객이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이 세대가 지나고 나면 과연 극장은 어떻게 살아남을까란 생각을 한다. Laguna Playhouse와 같은 오렌지 카운티의 지역 극장은 이 느낌이 더더욱 심했다. 라구나라는 부자 백인 동네 극장의 연극이 끝나면 하나같이 백발의 부부들이 주말 저녁을 문화생활로 충족하고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객석이 꽉 차진 않아도 워낙 높은 티켓가격을 선뜻 지불할 수 있는 관객들이라 배우의 능력도 뛰어나고 연기와 연출 퀄리티도 정말 좋았다. 나는 깜짝 세일할 때 가장 싼 좌석으로 얼른 사두곤 한다. 오렌지 카운티에 있다 보면 부자 백인들의 자원으로 그들이 누리고자 꾸려둔 환경에 내가 종종 끼어들어 슬쩍 같이 맛보기로 누려보는 기분이다. 이들은 어찌나 여유가 있는지(태평양 해변가에 늘어선 저택을 봐야 한다) 사실 나 같은 학생들이 꼽사리 끼는 건 웬만하면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물론 매우 아닌 경우도 꽤 있다). 하지만 이런 공간에서 늘 이질적인 존재로서 어색함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