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비평으로 투쟁해보기
대학로 공연을 보고 왔다. 이번 주에만 두 번째다. 창작산실이라고, 새로운 작품을 선정하여 초연을 할 수 있게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1월에서 3월까지 진행되는데, 신년을 신작의 활기로 여는 것이다.
너무 좋았다. 공연도 좋고, 관객과의 질의응답 시간도 좋았다. 한국 공연을 접하면서 계속해서 놀라는 건 작품 수준도 관객 수준도 상당히 높다는 점이다. 저렇게 제대로 지원할 예산도 있구나, 생각도 한다. 이 정도 공연을 올리기 위한 예산이 꽤 될 텐데 아낌없이 주어진 느낌이다. 게다가 전석 매진. 갈 때마다 대학로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젊음을 내뿜는다.
다만 그 좋음은 내 안에 풀리지 않는 의문을 더 강화해 버렸다. 왜 홍보물도 비평도 대체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까? 왜 공연을 이야기하는 언어는 늘 겉돌기만 할까? 미국에서 지긋지긋하게 비평하던 언어와 몸의 분리를 한국에서 오히려 더 강하게 느끼는 게 아이러니하다.
한국의 예술계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자료를 들여다본 지 좀 됐다. 인상 깊었던 건 시각예술의 존재감이었다. 각종 미술관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그곳의 언어가 예술계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아주 논리적이고 이론적인 그런 언어다.
서양적인 언어다. 시각예술을 흔히 근대의 것이라고 하는데 서양 근대에서 시작되어 넘어온 것이기 때문에 늘 한국 너머의 어떤 흐름을 따라가고 있는 느낌이다. 종사자 본인에게서 거듭 들은 인상들이다. 예술계 전반이 그렇듯 시각예술도 항상 열심히 투쟁하고 저항하고 있고, 절대 맹목적으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많은 예술인들이 날카로운 의식을 세워 작업하고 있다.
다만 나를 의아하게 했던 건 그 서양의 언어가 늘 맞닥뜨리고 고민하는 가장 깊은 부분, 즉 언어 자체의 한계에 부딪히는 지점들에 대해 한국의 시각예술계 또한 다분히 공감하며 고군분투하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늘 몸과 생명력에 대해서 사유하고 이야기하며 저항하지만, 시각예술은 디폴트 값이 몸과 분리된 장르고, 사물에 대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회화 작업도 영상 매체도, 사람이 자기 몸을 걸고 앞에 나서는 게 아니라 완충재를 통해 중간에서 만나고 있는 것이 특징인 장르다.
미국에서는 이 고민들이 이해가 갔다. 왜냐하면 서양은 언어적인 문화권이기 때문이다. 음과 양에서 양을 맡고 있는 이 문화권은 확실히 논리와 이성, 보이는 영역에 특화된 곳이고 (실제로 얼마나 논리적인지와는 별개다) 그래서 자신이 닿지 못하는 몸적인 부분, 즉 동양이 가지고 있는 음기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과 직감에 대해 항상 신비롭게 여기며 탐구해 왔다.
그들이 계속 손 뻗어 더듬어보는 것이 최선인 그 몸에 대해 우리나라는 생각보다 더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공연계의 성행과 몸을 앞세운 방송의 흥행이 그 증거다. 몸을 내세운 컨텐츠란 음식이나 춤, 스포츠 같은 것들이다. 말보다 몸으로 보여줘야 하는 장르. 꼼꼼한 대본과 편집이라는 조율이 뒷받침됐을 때, 깔아놓은 판에서 제대로 뛰놀 수 있는 몸이 있어야 비로소 그 컨텐츠는 생명력을 가지고 빛을 발한다.
한국에 와서 계속 느끼는 건 서양권과 아예 삶이나 사회의 기본 구조가 다르다는 거였다. 너무나 몸이 강한 사회라고 느꼈다. 흐름과 정서와 약간의 무심함이 기본인 상태에서 구조가 쌓아 올려진다. 행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많이 답답하고 통제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몸과의 균형을 맞추려면, 흘러가버리지 않으려면 언어도 강해져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여기서 차용되는 언어가 근대적이고 서양적이라는 것에서 괴리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지금의 공연예술을 설명하는 언어는 다분히 형식주의적이고 겉도는 경향이 있고, 종사자들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달리 다른 언어가 없어서 그냥 지금 있는 비평 언어의 관습을 차용한다는 것이다. 몸은 원래 논리적이지 않고 말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아서, 어차피 이러나저러나 불완전하니까, 그냥 쓴다. 몸만 잘하면 되니까.
내가 다소 불편하게 느꼈던 지점들은 그 반대의 경우에 있었다. 시각예술의 장 어디에 가봐도 뻔히 공연계에 살아있는 몸들은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몸의 부재를 문제 삼으며 죽은 몸을 살리려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공연을 보아도 여전히 시각의 언어로, 느끼는 게 아니라 머리로 보고 가는 것 같았다.
내가 보는 건 균형의 무너짐이다. 굳이 불편하다고 하는 이유는 내가 지금 직업을 찾는 중이기 때문이다. 비평의 언어가 논리로만 무장하는 순간 몸의 지식에 대해 발화하는 법을 쌓아온 내 방식은 설 자리가 없어진다. 대학 공간도 연구 지원 사업도 엄격하게 보이는 수치, 실적, 과학을 위주로만 평가하고 있었고 미국에서 쉴 틈 없이 잠을 아껴가며 쌓아 올린 내 실적과 능력을 이곳에선 필요로 하지 않는다. 미국 교수직에 지원할 때에는 아주 경쟁력 있었던 실적이 한국에서는 아예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나는 한국에서 내 쓰임이 있을 거라고 믿고 애정을 가지고 왔다. 왜냐하면 한참 'K-컬처'가 뜨는 요즘, 어떤 패턴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강도, 기생충도, K팝도, 어쩌면 해피엔딩도, 다른 수많은 작업들도, 한국에 있을 땐 크게 주목받지 못하다가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으면서 금의환향하는 길을 걸었다. 한국 안과 밖에서 작품을 평가하는 가치 기준이 다른 것이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좋은 작품을 생산해내고 있으면서 막상 그걸 제대로 알아보는 눈이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아니, 면밀하지 않다고 해야 하려나.)
미국에서 내가 키워온 능력은 국제적 감각과 몸의 비평이었다. 미국 대학 시스템에서는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가장 크게 본다. 실적이란, 투자받은 내역이다. 투자를 받는 건, 현재 국제정세와 흐름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에 응답할 만한 기량이 있는지에 기반한다. 특히 인문/예술계에서는 예측 가능한 실적을 그대로 내는 게 아니라 예측하지 못한 것에서 드러난 진실을 선호하기도 한다. 지금 내가 백수라고 했지만 실은 미국에서 받은 연구지원비를 쓰고 있는데, 거기엔 아무 조건도 실적 요구도 없다. 이미 내 연구와 사유가 투자 가치가 있었다는 걸로 일 년 생활비 규모의 지원을 받았다.
결과적으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한국 예술계 인물들은 거의 미국 대학원의 투자를 받고 성장한 것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박사과정은 금전적 지원과 같은 말이니까. 일을 하면서 받는 수입이지만, 다른 어떤 일보다 가장 돈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곳이기에 결국 국제 예술 지식의 장에 있는 한국인들은 미국과 유럽 곳곳의 대학원을 통해 연결된다.
대부분 한국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한국 내에서는 지원이 없어서 발전시키지 못했던 많은 작업을 키워서 돌아오는데, 막상 한국에서 능력을 발휘할 곳이 없어서 각종 대안 공간이라는 곳에서 작업을 이어간다. 대학이 아니라 이런 공간들에서 이루어지는 대화가 훨씬 지적인 장이라고 느꼈다. 지금 안 할 수 없어서 하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다만 대부분 영어 위주로 진행되고, 참석하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환경에서 무언갈 찾지 못한 사람들이다 보니, 여전히 단절된 어떤 우주 속 공간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결국 이곳에서 우리는 무얼 하고 있는 걸까?
미국에서 예측이 가능하지 않은 앞선 지식과, 새로운 것이 태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투자하는 건 다른 대단한 이유가 아니고 생존 때문이다. 국제 정세를 이끄는 자리를 유지하는 건 자원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게 지극히 사실이어서 그들이 가진 돈은 기술에도 문화에도 사용된다. (미국 전체를 놓고 보면 예술에 들어가는 지원은 쥐꼬리만도 못하지만, 그래도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다.)
그런데 알아보는 눈, 즉 비평의 능력을 키우면 문제가 발생한다. 정확한 비평은 정확한 메타인지를 반드시 필요로 한다. 지금 미국이 어디쯤 와있는지, 다른 나라는 어떤 상황인지 냉철하고 가감 없이 볼 수 있어야 다음 장기말을 어디에 둘 지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메타인지는 스스로 보여졌으면 하는 자기 이미지와는 늘 상당히 달라서,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저항감을 부르는 개입이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는 게 미국이 밀어붙이는 투자의 의미다.
그렇게 불편함을 기본 정서로 안고 살아가다 보면 피로가 발생한다. 내가 보는 트럼프의 재선은 다른 게 아니다. 영문도 모르고 늘 불편해야 하는 상황에 지친 사람들이, 이젠 좀 편하게 살아보면 안 돼? 내 멋대로 좀 하고 살자, 하던 와중에 그 말을 해주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결과는 즉각적이었다. 지금 트럼프의 발자취는 누가 봐도 퇴보라는 말로 정리되니까.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쫓아가는 입장에는 나름의 고충이 있지만 또 나름의 속편함도 있다. 방향을 잡기 위해 고민하는 시간을 대폭 줄이고 조금씩 더 나아간다는 믿음 안에 한 번씩 숨 쉬는 순간들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메타인지가 크게 필요하지 않은 환경에서, 더구나 현대사의 깊은 상처들이 아직 한참 치유되는 와중에, K-컬처에 대한 흥분은 긍정적 자기 이미지의 강화와 엮여있다고 종종 느낀다. 그간 있었던 짧은 강의경험에서, 국제사회 속 정확한 한국 문화의 기능에 대해서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지 않고, 또 전혀 나쁘다는 의미가 아니었는데도 스스로 내세운 한국의 이미지와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즉각 대화가 멈추고 방어가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다. 한편 긍정적인 듯한 말은 즉각적으로 수용된다. 이것 또한 - 나쁘다는 게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미국 시민과 한국 시민이 다르지 않고, 트라우마 연구에서는 오히려 가장 먼저 언급되는 인간의 본능적이고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다만 꼭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아, 그런 면이 있나? 하고 한 번 생각하는 동안, 참 아직 한국 사회가 치유가 많이 필요하구나 라는 배움이 있을 수도 있다.
자꾸 K-컬처가 한국의 위상을 높인다는 말을 한다. 위상은 뭐고 높아지는 건 뭘까? 요즘 나오는 전통을 재해석한 공연들에는 '이건 외국인들에게 보여주기 참 좋겠다, 너무 멋진 모습이다'라는 말이 자꾸 나온다.
다시 비평언어로 돌아간다. 위상을 높이는 건 문화의 힘을 머리로 해석하는 방식이다. 그런데 한국은 몸이 압도적으로 강한 문화다. 내가 보는 국제 사회에서의 그 'K-컬처'는 경외를 부르는 동경의 모습이 아니라, 애정을 부르는 정스럽고 애착이 깃든 문화다. 이럴 때는 오히려 조금 부족한 부분들이 있는 게 중요하다. 그게 더 인간적이니까. 생각보다 어느 문화권이든 인간성에 끌리고 그런 정서를 필요로 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스스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이 강점이고 무엇이 약점인지. 약점을 소거하는 데에 집중된 지금의 눈은 다소 불필요할 정도로 불안을 키우는 경우가 있어 보인다. 강점에 투자하는 흐름이 같이 있어야 약점이 자극돼도 중심을 잃지 않는데, 강점은 안 보이고 약점만 방어하고 있는 모습이 답답할 때도 있다. 가진 게 없으면 모르겠는데 너무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괜히 더 그렇다.
'이름 없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쓰고 있다. 너무 만연한 것, 너무 당연한 것은 언어화되지 못한다. 공기와 같다. 알아차리기도 어려울뿐더러, 언어화하는 순간 줄어들어버린다. 그래서 그냥 존재하도록 두는 것이 몸의 문화다. 그런데 그 가장 만연한 것 속에 가장 큰 힘과, 또 무의식 속에 재생산되는 폭력들이 함께 담겨있다.
한국도 얻기 어려운 것, 당연하지 않은 지식을 향해 간다. 근대적 지식의 장을 향해 손을 뻗는다. 그런데 그 지식의 장이라는 곳은 몸의 문화를 알고 싶다. 하나도 당연하지 않은데 아무도 제대로 말해주지 않아서 더 애가 탄다. 그래서 투자하고, 그래서 공간을 마련해 준다.
머리로 이해하는 교리가 아닌 몸의 수행을 앞세운 사찰의 문화, 수행으로서 존재하는 그곳의 음식. 몸으로 산 자와 죽은 자를 잇는 무속의 의례. 모두 지금 국제 학계와 예술계에서 주목받는 주제다. '한의 정서'도 마찬가지다. 한은 말이 되지 못한 것의 총집합이다. 이걸 대체 어떻게 설명할까? 번역이 안 돼서 영어로 han이라고 쓴다. 사전 정의로는 '번역이 불가한 한국의 정서'라고 나온다. 한국에서는 이제 지겹다는 말이 나오는 이 이야기가 국제사회에서는 현대적인 흐름을 타고 있다.
그래서 교포 문화에 대해서 계속 쓴다. 교포는 한국인이지만 더 이상 한국 문화가 당연해지지 않은 시각에서 애정을 가지고 다시 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맨땅에서 시작해서 꽃을 피운 교포 예술을 보면 힘을 얻는 게 있다.
한국에선 수입도 자리도 없지만, 그래도 다른 지역에서 투자를 받을 실낱같은 가능성이 있는 게 어딘가. 내가 원하는 지식의 장은 한국에선 대학이 아닌 종교와 예술 공간에 있었다. 대학이라는 같은 이름 하에 완전히 다른 일을 하고 있는 게 문화권을 넘나들다 보면 확 느껴진다. 한 문화권에서의 일을 다른 문화권에서 이어간다는 건 생각보다 아주 어려운 일이었다. 이젠 생활비도 떨어져 가고, 하고 싶은 일 하고 있는 일은 너무 많은데, 아직도 이곳에서 또 다른 곳에서 수입을 어떻게 확보할지는 미궁이다. 씨앗은 여기저기 뿌리고 있지만 수확은 장담할 수 없다. 이 공간에 미래 고민을 쓴 지도 이제 몇 년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이게 언제까지 계속될지 나 스스로도 정말 모르겠다. 그래도 대학로 공간에 발을 디디고, 몸의 공연에서 자유를 느끼는 순간들이 있어서 아직 많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