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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in Lowland Jul 10. 2020

신느냐 벗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네덜란드의 입식 문화 적응기(?).


2016년에 영화 ‘배트맨 대 슈퍼맨’ 개봉 당시, 한국의 각종 SNS을 뜨겁게 달군 장면이 있었다.

슈퍼맨을 연기한 헨리 카빌이 여자친구 로이스가 목욕중인 욕조에 ‘신발을 신고’ 들어간 씬이었다. 나 역시 영화관에서 경악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로이스 질염 걸리면 어떻게 해!!!’


아마 한국의 모든 여자 관람객들이 나와 같은 찜찜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스릴러나 호러 영화의 등장인물들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맞닥뜨릴 때 마저도, 신발은 고이 현관에 벗어두고 들어가는것이 모름지기 한국인의 정서이자 도리 아닌가. 하지만 시끌벅적한 한국 커뮤니티들과는 다르게 미국(내지 ‘서양’이라고 흔히 부르는 나라들)에선 그 장면이 전혀 이슈가 되지 않았다. 침대 위에도 신발을 신고 펄쩍 눕는 나라 사람들이라 그런가. 아무리 저 ‘욕조에 신발’ 씬을 애써 합리화 하려 해도 나의 K-위생 마인드는 어김없이 연산 오류를 일으키며 끝내 진저리를 치게 된다. 아니 저게 문제가 아니라고?? 저 근본없는 양놈들을 보았나!


그 땐 몰랐다, 몇년 뒤 내가 그 무근본의 세계에 뛰어들게 될 줄은.





Bare feet, photo by Min van der Plus, 2019



한국-유럽 커플들이 아마 가장 많이 부딪히는 대표적인 생활습관이 세 개 정도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식습관’ ‘설거지 방식’ 그리고 ‘실내에서 신발을 신느냐 벗으냐’.

신발을 집 안에 신고 들어가는 것은 좌식 문화인에게 금기라는 것을, 정석 유러피언인 남편 M은 아주 더디게 학습중이다.


넷플릭스에 새로 올라온 일본 호러 시리즈 ‘주온’의 불량배들이 폐가에 침입할 때, 현관에 신발을 곱게 벗어놓는걸 보고 M과 포복절도하며 한바탕 토론을 벌인 일이 있었다. ‘왜 침입자들이 굳이 신발을 벗고 들어가느냐, 정말 쓸데없는 장면이다’, ‘저게 인간의 도리다, 유러피언들도 좀 배워야된다’가 주된 토론 내용이었다.

집 안에서 신발을 신느냐, 벗느냐.

이것은 집을 합치는 과정에서 M과 내가 합의점을 찾기 가장 힘든 부분이었다.






생활 방식을 타협하는 과정은 모든 새내기 커플들이 필연적으로 거치지 않을까. 내겐 편안하고 당연한 습관들이 상대방에겐 물음표 백만개를 불러일으키며 순식간에 다툼이 되기 십상이다. 다행히도 나와 M의 생활 습관은 많이 다르지 않고, 갈등이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알아서 대화로 푸는 평화주의자들이라 이제까지 같이 살면서 크게 불편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아직 단 한가지 타협점을 찾지 못한것이 바로 이 망할놈의 ‘신발’ 이슈다.


같이 살기 전엔 문제가 아니었다. 로마에선 로마 법을 따르라지 않는가. M이 내 집에 놀러오면 ‘내 왕국의 룰’에 맞게 신발을 벗었고, 내가 M의 집에 놀러가면 M의 룰 대로 신발을 신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나의 왕국이 ‘연합’이 되는 순간부터 신발은 외교 협약의 커다란 걸림돌이 되었다.


나의 논리는 이렇다;


   

길바닥에 비위생적인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유럽 답게 길바닥에 널려있는 개똥, (운 나쁘면) 사람 분변, 깨진 유리병, 침, 곰팡이, 이끼, 벌레, 음식쓰레기, 이런것들이 신발 바닥에 붙어 집 안으로 들어온다고 생각하면 너무 끔찍하지 않은가?


신발을 계속 신고 있으면 살갗에 통풍이 되지 않아 발 건강에 매우 좋지 않다. 인간수명 100세 시대에 발 건강도 열심히 챙겨야 하지 않나?


나중에 애를 낳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기들은 걸음마 전까지 바닥을 기어야 하지 않는가. 내 아기가 어떤 오염물질이 묻었을지 모를 바닥을 기어다니며 그 손을 입으로 가져가는 상상을 해봐라. 호러블하다. 혹시라도 생길지 모를 미래의 애를 위해서 지금부터 신발을 벗는 습관을 들이는게 어떨까?




이에 반박하는 M의 논리는 이렇다;


   

네덜란드 길바닥이 그렇게 더럽고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집 밖에 있는 신발털이로 밑창을 웬만큼 닦고 들어오지 않는가? 그리고 설사 그런게 들어온다고 해도 그게 인간 생명에 그렇게까지 위협적인가? 더러운게 집 안에 있으면 닦아내고, 유리조각이 있으면 청소기로 빨아들이면 되는거 아닌가?


사람들이 신발을 벗고 집 바닥을 밟는 순간, 신발 안에 있던 땀과 박테리아가 당연히 바닥에 묻어나는것 아닌가? 바닥을 매 순간 닦아내는 것이 아닌 이상, 그걸 내가 다시 맨발로 밟으면 과연 발 건강에 이로울까? 차라리 신발을 신고 있는 것이 안전하지 않나?


나도 내 부모님도, 부모님의 부모님도 다 같은 환경에서 건강하게 자랐고 면역 기능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 실내에서 신발을 신는것이 아기의 건강에 과연 그렇게 해로울까?    



몇 차례의 외교적인 토론 끝에 우리는 결국 합의점을 내놓았다. 나는 집 안에서 실내용 슬리퍼를 신고, M은 실내 전용 운동화를 신거나 양말을 신는다. M은 나를 따라 슬리퍼를 몇 번 신어보았지만 ‘게으른 느낌이 들어’ 사람다운 신발을 신어야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면 양말 역시 게으른 느낌을 주지 않나 물어보았지만 그건 또 다르단다.)


물론 이 협약이 100%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함께 장을 보고 돌아오거나 하면 어김없이 신발을 신고 부엌까지 걸어가게 된다. 나 역시 M과 살다보니 기준이 느슨해져서, 종종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갈 때가 있다. 애초에 신발을 벗어놓기 힘든 네덜란드 식 현관 구조이다 보니 신발을 신고 벗는 것 자체가 수고스럽다. 때문에 내 귀차니즘이 본능을 이길 때도 있지만,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신는 순간 ‘더이상 집 안에 더러움을 퍼트리지 않는다’는 생각에 순식간에 안심이 되는것을 보면 나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M과 내가 아주 어릴때부터 학습한 ‘바닥에 대한 태도’는 좌식 문화와 입식 문화의 차이를 여지없이 보여준다. 물론 M과 살기 이전부터도 ‘바닥을 대하는 네덜란드인들의 태도’에 지속적인 문화 충격을 받아오긴 했다. 네덜란드 친구들이 기차 바닥/길바닥/ 벤치 옆 바닥/ 테라스 석 바닥 등등 상상할수 있는 모든 바닥에 가방을 턱턱 놓는 것 부터가 나에겐 쇼크였기 때문이다. 루브르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며 바닥에 아무렇지도 않는 그들 사이에서, 나는 부산히 종이를 찾아 깔고 앉은 채 가방을 품에 고이 안았다. 그들에게 나는 아마 엄청난 깍쟁이로 보였을 것이다.


한국인들은 백이면 백, 가방을 의자에 놓아두거나 의자 뒤에 걸어 놓지, 절대로 바닥에 두지 않는다.

이것이 동서양의 위생관념의 우열을 가린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길바닥은 비위생적이고, 그 비위생적인 표면을 신체와 밀접한 곳에 가까이 하지 말것’ 이라고 어릴때부터 학습시키는 좌식 문화권에서 자란 결과일 뿐이다.


한국 사극을 보면 궁궐이든 초가집이든 관계없이 집 안에 들어갈때는 누구든 신발을 벗어야 하지 않는가. 방 안으로 신발을 신고 들어오는 것은 눈이 뒤집힌 도적떼나 극악 무도한 무뢰배 정도가 아니고서야 어림 없는, 천인공노할 일이다.

반면 유럽 시대극을 보면 왕족이든 평민이든 노비든 그 어떤 실내로 들어가도 (TPO에 따라 갈아신는 것을 제외하면) 신발을 갈아신지 않는다. 입식 문화에서 자란 서유럽인들에게 바닥이란 ‘신발로 발을 커버한 채 딛는’ 표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듯 하다. 그것이 실내이냐 실외이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그냥 다 똑같은 ‘바닥’인 것이다. 때문에 신발을 벗는 것은 하루의 모든 일과가 끝나고 침대에 휴식을 취할때나 하는 행동이고, 일상 생활을 계속할 때 신발을 벗는다는 것이 어색한 것이다.


그러고보니 M이 한국 드라마 ‘미생’을 보면서 가장 신기해한 것이 ‘직장 내에서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신는 회사원들’ 이었다. 직장에서 슬리퍼를 신는 것은 유러피언 기준으로 좋게말하면 털털하고 나쁘게 말하면 매너없는 짓이기에, M의 눈에는 ‘저렇게 위계질서를 바짝 잡고 양복도 철저히 갖춰 입는데 왜 신발을 벗고 슬리퍼를 신고있나??’ 로 보이는 것이다. 글쎄, 발 건강을 위해서….라고 말을 했지만 M의 의문과 위화감을 전혀 덜어주지는 못했다. 나 역시 할 말은 많다. 좌식 문화권도 아닌데 너네는 길바닥에 왜이리 서슴없이 앉느냐고. 한국이나 네덜란드나 모든 사회적 룰엔 모순점이 덤처럼 따라 붙는걸까?






요즘 젊은 유럽인들중엔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M의 친구들 중에도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특히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생각보다 ‘신발 밑창의 위생 문제’가 유럽에서도 화두에 오르는 것 같다.  M 역시 실내에서 신발을 벗는 때가 슬슬 길어지고 있다. 게다가 M은 얼마전에 신이 나서 실내 족욕기도 샀다. ‘독일 사람들이 이런건 참 잘만들어’ 라고 메뉴얼을 정독하는 M을 보며 나는 몇 년 이내에 M과 나의 긴 타협에서 결국 내가 이길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신느냐 벗느냐 그것이 문제지만, 우리의 삶은 결국 필연적으로 서로의 안녕을 바라는 평화로운 (신발 없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라고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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