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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niel Josh Apr 22. 2021

당신은 누구십니까

자기부인과 질서순응의 길을 걷는 자


2021.01.02 말씀묵상


[요1:19-21]

19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네가 누구냐 물을 때에 요한의 증언이 이러하니라

20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대

21 또 묻되 그러면 누구냐 네가 엘리야냐 이르되 나는 아니라 또 묻되 네가 그 선지자냐 대답하되 아니라


요한이 성경말씀대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사역하시기 이전에 사역을 시작한다. 그에 대한 소문이 퍼지고, 영향력이 커지자 기득권층은 그를 찾아온다.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 요한에게 정체가 무엇이냐 묻는다. 요한이 바로 자기자신을 증언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이다.  자기부인의 고백이 성도에게 있어 정말 중요하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모른다. 자기부인이란 어떤 개념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만큼 중요한 가치가 없다. 바로  인생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시라는 . 자아와 인격을 갖춘 인격체가 자기 자신을 위한 삶의 표현을 뒤로하고 다른 인격 혹은 신격을 내세운다는 것이 세상에서 보기엔 굉장히 낯설다. 상식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세례요한을 포함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명확히 해야할 것이  하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닮아가는 자들이지, 스스로가  보좌에 앉는 죄를 저지르면 안된다는 . 2인자로 사는 , 종속되는 삶에 대하여 세상의 시선은 차갑다. 멋이 없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멋이란 인간적 존엄과 품위 등을 지칭한다.


그러나 신앙의 영역에서는 영적으로 성령에 종속된 삶을 사는것보다 자기 자신을 우상으로 떠받들어사는 삶이  비일비재하다. 자주하는 실수라는 말이다. 실수라고하니까 조금 가벼운 느낌인데, 치명적인 죄를 날마다 범한다고 말할  있겠다. 하나님이 거하시기에 우리 성전은 자아의 힘이 너무나 강력한 공간이다.  자아의 색채가 너무 짙어서 하나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진실은, 세례요한의 말 한마디와 같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며, 그밖에 엘리야, 선지자도 아니다. 즉,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나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원죄를 지은 인류의 후손이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그 인류의 후손이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은 영원한 그분의 사랑의 대상이다. 그러니까 그에 걸맞는 삶을 산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녀, 그분의 구원은혜에 합당한 삶으로 열매맺는 자. 그리스도의 편지, 그리스도의 전언,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는 자, 그런 자의 삶을 산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그리스도의 편지로서의 삶을   있을까. 세례요한은 자기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며, 엘리야도 선지자도 아니라는 말을 한뒤에, 자신은 광야의 외치는 소리라고 말한다.  다음 아주 재밌는 상황이 펼쳐진다. 그가 예비할 길의 주체되시는 예수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아와 세례를 받으시는 사건이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바로보자마자 그가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가는 어린양이다 라고 말한다. 예수님임을 알아봤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신발끈도 풀기를 감당하지 못하는 그분에게 물로 세례를 베푼 것은 어찌된 일일까. 또한 인간이 물로 베푸는 세례를 받겠다고 찾아오신 예수그리스도의 행보는 어찌된 일일까.  모든 기이한 장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원리는 바로 자기부인이다.


자기부인은 , 기존질서에의 순종으로 나타난다.  말은 세속의 원리에 휩쓸린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세상과 구분된 삶을 살아야 한다. 또한 죄로 가득한 세상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으로 바꾸어나가야 한다. 그러나  방법은 쿠데타나 혁명이 아니다. 낮은 자리에서부터 일어나는 질서의 순종이다.


하나님이 명하신 말씀이 말씀대로 이루어지는데 대한 믿음과 그에 따른 순종이다. 신앙에 대하여 여타 많은 말들이 많고 착각도 많이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우릴 구원하신 방법은 다른 기적이나 초능력이 아니었다. 죄의 대가는 죽음이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체계 안에서 철저히 그리고 처절하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내가 걸어가야할 길도 그렇다.


이웃관계 안의 질서, 가족관계 안의 질서. 그 모든 질서안에서 나는 배우고 성장해간다. 전에는 이해되지 않던 희미한 것들이 이제는 명확해져 간다. 새파랗게 살아있던 나의 짙은 색감을 빼고 하나님이 긴 역사를 걸쳐 나에게 다가오신 원대한 이야기를 조금더 가깝게 마주하고 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그 과정속에서 다시 한번 내가 나의 꿈과 우상을 이루는 어떤 무엇으로 영광을 취하는게 아니라 그저 이렇게 삶을 허락받고 성장할 수 있게 해주신데 감사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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