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 영화 <승부>(2025)

답은 없지만 답을 찾는 게 바둑이다.

by minxae

간단 줄거리 요약


세계 최고의 국민적 영웅인 바둑 기사 조훈현(이병헌)은 바둑 신동이라 불리는 이창호(유아인)를 전남 전주에서 우연히 보게 되고 그를 제자로 거두게 된다.


이창호는 조훈현의 서울 집에서 얹혀살며 바둑을 배우게 되고 어느 순간부터 그와 바둑에 대한 관점이 달라져 갈등을 겪는다.





이창호는 본인만의 기풍을 찾았고 결국 대회의 결승 무대, 조훈현은 제자가 자신을 뛰어넘는 순간을 마주한다. 이후 이창호는 스승과 만나는 족족 연전연승을 거두며 승승장구하게 되고 조훈현은 슬럼프에 빠진다.

"답은 없지만 답을 찾는 게 바둑."


조훈현은 슬럼프를 극복하고 성장한 제자와의 설욕전을 버리려 한다. 이 영화는 두 사람이 사제관계에서 경쟁하는 라이벌 관계 변해가는 과정 속 승부의 세계의 냉혹함과 본질적 가치를 다루며 세대가 교체되는 순간을 담아냈다.



흑과 백, 서로를 품는 태극의 조화

'태극 속의 태극'

'흑과 백'. 독립된 존재성이 아닌 상대적 존재성을 갖는다.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상호 의존 관계다.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다. 흑이 없으면 백을 인식하지 못하고 반대로 백이 없으면 흑을 볼 수 없다.

흑과 백, 음과 양은 서로 대립하는 성질을 가지면서 모순적이게도 서로를 필요로 한다.

대립하는 관계 속에 조화가 있다. 두 존재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받으며 순환한다. 결국 모든 것은 모든 것에 의해 변화하며 균형을 이룬다.

흑은 순수한 흑으로, 백 또한 순수한 백으로 고정 불변하게 존재하지 않는다.

끊임없이 자리를 바꾸고 서로를 품으며 '태극 속의 태극'을 이룬다.


'정중동 동중정'

바둑판에서는 흑돌과 백돌이 있다. 바둑판에서 흑돌과 백돌은 서로가 없으면 존재 가치를 상실한다. 상대의 돌이 없는 바둑은 무의미하며 흑돌과 백돌은 상대가 있기에 비로소 바둑돌로서의 가치를 지닐 수 있다.

흑돌과 백돌은 바둑판 361개의 교차점에서 고정된 위치를 가지며 치열하게 서로의 본질을 겨루며 대립한다.

서로의 존재 가치가 바둑판에서 얽히며 상호 의존적으로 형성되고 결국 하나의 조화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중국의 저서 채근담에서 '정중동 동중정'이라는 구절이 있다.


"고요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가운데 고요함이 있다"

바둑판에서 돌들은 고정되어 있지만 그 위치에 있음으로써 흑돌과 백돌이 대치하며 자연스레 조화로운 흐름을 만들어 대국이라는 하나의 형세를 이루고, 그 속에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반면 대국을 조망하는 기사는 변화무쌍한 돌들의 움직임과 형세 속에서도 핵심적인 중요한 자리를 놓치지 않고 전반적인 국면을 놓치지 않는다.

바다와 같은 넓은 마음을 가져야 돌 하나하나의 충격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바둑은 승부다.

승부에선 승자와 패자가 있고 격렬한 대국 뒤에는 매정한 결과가 따라온다.


승부의 세계는 겉으로는 고요한 이성과 냉정함이 지배하지만 그 속에는 결코 식지 않는 승부사의 열정이 끓어오르고, 승부의 세계는 차디찬 결과로 침묵을 강요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도 승부사들의 심장은 끝내 식는 법이 없다.


승부의 본질과 그 성질

승부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답을 쉬이 내릴 순 없으리라. 아니, 답이 없을지도 모른다.

이 영화에서 그래도 답은 없지만 답을 찾는 게 바둑이라 했으니, 승부와의 대국을 한번 두어 보려 한다.


승부는 근본적인 인간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승부에서는 의도적으로 조작된 세계의 모습을 띤다.

굉장히 한정된 승리라는 가치를 설정하고 이를 위해 규칙을 규정하고 승부의 세계 안에서의 행동의 방향성을 유도한다.

포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승리라는 가치를 얻기 위해 리스크를 감수하고 경쟁하고 대립하고 승부근성을 발휘하여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려 한다.


본능적인 인간의 승부욕, 두 존재간의 충돌, 반드시 승리(생존)하겠다는 마음가짐,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주어진 환경에서 상대방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야 말겠다는 깊은 내면의 욕구.

결국 승부는 원시적인 경쟁 상태 그대로의 모습, 즉 자연의 모습을 담아내는 특징이 있다.

흥미로운 점은 승부는 결과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이 있고, 운의 요소도 있다는 점이다.


정리하면 승부는 제한된 규칙 내에서 예측불가능한 결과를 담보하는 운과 필연적으로 승리자와 패배자로 나뉘며 서열이 생기고 서로 반대되게 설정된 두 의식체간의 필연적인 충돌이다.

다소 복잡하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영화 <승부>를 통해서 본 승부

영화에서 여러 형태의 승부가 나오지만, 나는 두 가지의 승부를 중점으로 보았다.

바로 조훈현(이병헌)과 이창호(유아인)의 승부 그리고 나 자신(내면)과의 승부 이 두 가지다.


승자와 패자, 스승과 제자

조훈현(이병헌)과 이창호(유아인). 우선 둘 사이의 관계는 처음 사제관계로 시작해 이후에는 경쟁관계관계의 전환이 일어난다. 조훈현과 이창호가 바둑을 바라보는 시각은 이창호가 조훈현을 이기기 위해 고민하면서 점점 더 벌어진다. 이창호는 상대를 이기기 위한 바둑을 고민하면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해 나간다.

이창호는 전체적인 바둑의 판을 읽는 능력을 발전시켜 결국에는 과정이 어떻게 되었든 이기는 결과가 나오는 바둑을 추구하게 되었고 본인의 천부적인 계산 능력을 바탕으로 본인만의 답을 찾아 스승인 조훈현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해 냈다. 이창호는 스승인 조훈현에게서 무작정 흡수하려는 배움의 태도를 버리고 스승을 뛰어넘기 위한 배움의 태도를 통해 성장을 이루어 냈다.

결국 바둑에는 답이 없기에 '승부'를 바라보는 관점의 가치관을 능동적으로 형성해 나갔다.


반면, 조훈현은 이창호에게 한번 패배한 후 슬럼프에 빠져 방황하게 된다. 본인이 무의식적으로 바둑에서 공격이 가장 확실한 답이라 생각하고 자신이 패배하는 경우의 수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오만함과 자만심이 커져갔다. 특히, 자신의 제자이자 자신과 스타일이 정반대인 이창호와의 맞대결에서 막막함을 느끼고 패배하자 점점 무너져갔다. 그런 조훈현이 다시 본인의 답을 찾기 시작했고 결국 이창호와의 계속된 연패에서 빠져나와 서로를 보완하고 성장시키는 상대로 이창호를 인정하게 된다.

조훈현도 이창호를 이 기기 위해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스타일을 완성해 성장한 것이다.


더 살펴보기 전에 스승과 제자의 관계승자와 패자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스승은 제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준다. 바둑으로 엮인 사제관계는 단순히 바둑 그 자체로만 배움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제자가 스승에게 배우고 성장해서 스승을 뛰어넘었다면 이 승리는 제자의 온전한 승리가 맞을까? 과연 이 세상에 완벽한 승리가 있을까? 제자만이 스승에게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스승도 제자에게서 배운다. 스승과 제자는 상호보완적 관계이다. 마치 바둑에서 흑돌과 백돌처럼 말이다.


이창호가 계속해서 조훈현을 이기기 시작하자 둘 사이의 관계는 얼어붙기 시작했다.

이창호는 조훈현의 바둑에 대한 논리는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승부사의 논리는 마음깊이 새겼다.


진정한 승부 '명국' : 답을 찾는 과정

'상대를 이기는 게 승부사의 예의다.'

그렇지만 대국에서의 진정한 승자는 단순히 승, 패로 결정되지 않는다. 진정한 승부는 바둑 한 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진정한 승부는 삶에 대한 태도와 인생으로 겨루는 과정이다. 혼자여서는 승과 패를 결정지을 수 없다. 그리고 영원한 승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속 조훈현이 슬럼프를 겪자 평소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본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는 더 이상 타이틀에 집중하지 않았고 대신 좋은 기보에 집중했다. 진정한 대국에서의 승자(무엇을 얻었고 깨달았는가)가 되려 했다.


두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겨루고 삶의 태도를 승부를 통해서 드러내고 서로를 이해해 나갈 수 있을 때, 서사적으로 두 사람이 연결될 때 시공간을 초월한 '명국'이라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서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리고 이 서사야말로 스포츠라 부르는 승부의 세계에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다.


"답은 없지만 답을 찾는 게 바둑이다."



바둑의 길 : 삶을 대하는 싸움

바둑에는 답이 없고 마찬가지로 승부의 세계도 끝이 없다. '승부'란 승패를 나누는 경쟁보다 더욱 상위의 차원에 존재한다. 바둑 기사마다 각자만의 기풍이 있고 여기에 완벽한 답은 없다.

그렇기에 결국은 이를 포기하지 않고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이 중요한 이유다.

끝이 없는 게 바둑의 길, 인생의 길이다. 그리고 혼자 걸어가는 것이 아니다. 결국 나와 다른 사람이 있어야 하고 있기 마련이다. 이 길의 끝에는 승자와 패자는 없다. 누가 더 치열하고 진실되게 살았는지, 삶의 태도의 겨룸만이 있을 뿐이다. 이런 태도가 결국 조훈현이 말한 승부의 세계에서의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만들어낸다.


감정 : 승부의 '찰나'에서

감정도 계산이 지배 가능한 영역일까?

조훈현은 이창호와의 대결에서 계속해서 패배하였고 그는 이를 바둑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는 계기로 삼았다. 그는 천재적인 계산 능력을 가져 전체적인 흐름을 읽는 능력이 뛰어난 이창호를 이길 방법을 다음 세 가지, 급소, 감정 그리고 바둑판에서 중요한 판가름이 이루어지는 승부의 '찰나'에서 찾았다.


조훈현은 '전신'(싸움의 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고 이창호는 '산신'(산수의 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것을 계산하여 종국에는 이기는 결과로 귀결되는 바둑을 추구하는 이창호를 상대로 조훈현은 초반부터 팽팽하게 이창호와 빠르게 수싸움을 하며 판을 흔들었고 국지전에서 자신의 여러 급소를 만들어내면서도 공격적인 스탠스를 이어갔다.


'급소'는 자기만의 급소가 아니다. 바둑판은 하나이고 바둑은 둘이 두는 것이다. 결국 내 급소는 상대의 급소이고 돌이 늘어나고 여러 곳의 급소가 생기면 이창호의 계산이 힘들어진다. 조훈현은 여기서 가능성을 봤고 승부의 결과가 결정되는 '찰나'의 순간에서 '계산'이 되지 않을 것이라 보았다.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것은 '계산'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승부의 찰나에서는 조훈현의 대국을 감각적으로 풀어가는 기풍이 유리했다.

조훈현이 보여준 이 승부사의 자질은 계산과는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바둑의 길

첫 돌의 마음가짐

조훈현과 이창훈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바둑을 하며 대결을 이어갔고 현재까지도 바둑의 길을 걷고 있다. 그들은 대국에서도 삶에서도 첫 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있다. 끊임없이 바둑의 답을 찾는 길을 밟고 있는 자들은 꿈을 잃지 않았다. 언젠가 바둑판에 첫 돌을 두었던 처음의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꿈을 꾸고 있는 자들은 청춘이라 불려야 한다. 바둑의 길에서 바둑의 답에 대한 꿈을 놓지 않은 자들, 첫 돌의 마음가짐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자들은 여전히 청춘이다. 그들의 승부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현재 진행형이다.


돌을 놓아야 한다.

바둑은 돌을 놓아야 시작한다. 돌을 놓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다. 특히 내가 흑을 잡고 있는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다. 우리 삶의 대국도 포석을 놓고, 착수하며, 치열한 사활을 겪고 위기 상황을 타개하여야 집을 지을 수 있다. 집을 지어도 끝난 것이 아니다. 삶은 바둑 한 판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에 끝나고 복기도 해야 한다.

밖에서 보는 대국과 실제로 대국을 행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두려워말고 자신의 첫 돌을 굳건한 삶의 태도를 담아 놓기를 바란다. 그리고 첫 돌의 마음가짐을 잊지 않고 자신만의 바둑의 길을 찾아가길 바란다.


앞으로 AI시대가 다가오면서 AI와의 삶의 태도를 겨룰 순간들과 마주할 것이다. 이세돌이 불리한 대국을 이어가다 결국엔 신의 한 수라 불리는 78수가 희박한 승률을 뚫고 알파고를 꺾었듯이 나는 인간만이 지닌 고유의 힘을 믿는다. 이 세상에서 오직 인간들만이 어우러지며 만들어낼 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

AI의 답에 대항해 우리는 과정을 중시하면서 던지는 우리의 질문과 물음표가 앞으로의 길에 빛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바둑에서의 위기십결

1. 부득탐승(不得貪勝) : 승리를 탐하면 얻지 못한다. (결과 집착 말고 평상심 유지)

2. 입계의완(入界誼緩) : 적의 진영에 들어갈 때는 너무 깊숙이 가지 말고 여유를 두라.

3. 공피고아(攻彼顧我) : 상대를 공격하기 전에 먼저 나를 돌아보라.

4. 기자쟁선(棄子爭先) : 작은 돌을 버리고 선취점(선수)을 잡아라

5. 사소취대(捨小就大) :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곳을 취하라.

6. 봉위수기(逢危須棄) : 위험에 처하면 모름지기 버려라.(미련을 버림)

7. 신물경속(愼勿輕速) : 경솔하고 빠르게 두지 말고 신중하라.

8. 동수상응(動須相應) : 돌이 움직일 때는 서로 상응해야 한다.(돌들의 연결)

9. 피강자보(彼强自保) : 상대가 강한 곳에서는 내 돌을 먼저 보호하라.

10. 세고취화(勢孤取和) : 세력이 고립되면 조화롭게 어울리는 방법을 찾으라.



바둑에서는 바둑을 두는 데 필요한 열 가지의 필수 격언이 있다. 바둑뿐 아니라 어느 시대나 분야나 통용되는 격언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투자에 적용해도 투자의 기본원칙들이 나온다.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에 적용해서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예전부터 마음에 담아 두고 있는 격언들은 기자쟁선과 신물경속 그리고 동수상응이다. 본인의 마음에 드는 격언이 있으면 언제든 떠올려도 좋다. 모든 격언을 알맞은 상황에 적용해도 좋다.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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