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오빠가 오랜만에 본가인 전주에 내려와서 이런 말을 했다.
"와 여기는 엘리베이터에서 아직도 다들 서로 인사하고 그러는 게 신기하다."
"왜? 원래 그런 거 아닌가?"
어릴 적 아파트에 살 때 마주치는 이웃마다 전부 인사를 꾸벅꾸벅했다. 참 해맑게 잘도 하고 다녀서 '인사 잘하는 1104호 애들'로 우리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 소식이 엄마, 아빠의 귀에 자주 들려와 뿌듯해 하셨다. 항상 오빠랑 한 세트처럼 다니면서 보는 사람마다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그래서 혼자 승강기를 타는 날에는 (인사 잘하는 애들 중에 다른 한명인) "오빠는 어디 갔나 보네?"라고 물어보실 정도였다. 그렇게 이웃 어르신들의 칭찬과 관심을 받으며, 다른 것은 못해도 인사 하나는 참 잘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왜 서울은 뭐 사람 사는데 아니래? 인사하면 안 되나."
"서울에서는 인사하면 음... 큰일 나."
"왜?"
"뭐랄까, 인사하면 사람들이 오해해. 저 아세요?라고 하거나, 저 사람이 나한테 뭐 원하는 게 있나 하고 의심의 눈초리로 훑어보지. 특히 애들은 모르는 사람하고 절대 말하면 안 된다고 교육을 받기 때문에 인사도 잘 안 하지. "
엄마가 듣다가 얼른 거들었다.
"맞어 오빠네집은 사람 마주치면 그냥 멀뚱히 서있어야 되더만잉. 나는 깝깝혀 죽것어. 사람 봤는디잉 뭔 말을 해야지, 못한 게"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그럴 수 있겠구나. 세상에는 험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모두가 경계심을 안고 살아가고 있구나. 그리고 이 지경까지 오게 되어야만 했던 우리 사회가 안타까워 씁쓸함이 웃음으로 나왔다.
서울 오빠네 집에 갔다.
승강기를 타는 쪽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강아지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인사를 할 뻔했는데 주춤하며 오빠가 했던 말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또 시끄럽게 떠들면서 다른 방향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까르르 아파트 현관에는 온통 그들의 목소리와 웃음으로 가득 차 버렸다. 두 명이서 한 10인분의 소리를 쏟아내다가 우리보다 먼저 반대 방향의 승강기에 몸을 실었다.
그 뒤 정적이 흘렀는데 우리 앞에 있던 남녀가 인상을 쓰며 서로를 쳐다보더니 남자분이 "아씨 진짜 엄청 시끄럽게 하네..."라고 중얼거렸다. 내가 보기에도 그 두 명이 여기 있던 네 명의 혼을 쏙 빼놓았던 것 같았다.
귀를 진정하고서 아직도 오지 않은 승강기를 바라보는데 묘한 긴장감이 들었다. 그 누구도 한마디도 하지 않고 침묵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사람 네 명과 강아지는 좁은 승강기 안에 타게 되었다.
마지막에 타게 된 나에게 오빠가 슬금 눈치를 줬다. 무슨 말을 하려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은데 알아듣지 못해서 머뭇거리고 있었더니 오빠가 입을 반절만 열고 말했다.
"버튼. 닫힘 버튼. 눌러"
"응..? 어차피... 금방 닫히는 거... 아닌가?..."
라고 하는 동시에 오빠의 손이 쑥 들어와서 닫힘 버튼을 눌렀고, 그 사이 지체된 시간에 문이 자동으로 닫히기 하기 한 1초 전에 오빠의 손이 조금 더 빨라서 문을 닫았다. 불과 몇 초 만에 오고 간 대화와 상황이었다.
왠지 모르게 긴장을 하게 되면서 손이 방황을 시작했다.
가로로 버튼이 붙어있는 부모님의 집과는 달리 이곳은 세로 형식으로 버튼이 있었다.
오빠가 사는 16층을 누른다는 것을 버벅 거리다가 18층을 눌러버린 것이었다. 오빠의 손이 16층 버튼으로 왔을 때는 이미 늦어있었다. 그리고 그 상황은 좁은 승강기 안에서 모두의 시선 속에 생중계되고 있었다.
순간 모자 쓴 남자분의 '아씨 진짜 엄청 시끄럽게 하네'라는 말이 스쳤고, 이분한테 잘못 걸리면 안 되겠다 싶어 그분들이 사는 층을 필사적으로 확인했다.
'망했다. 19층 사시네....'
슬쩍 옆을 보니 오빠는 심상치 않음을 감지해서 꾸물거리고 있었고 난 얼굴이 붉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죄송하다고 말할까, 어떡하지 큰일이네' 라며 망설이는 도중에 이미 그 말을 했어야 하는 시기는 지나버렸다.
'미치겠네. 우리는 먼저 내리지만 저분들은 괜한 18층에 멈춰 서서 문이 한번 더 열리게 될 텐데....'
당혹스러워서 오빠를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눈치 없는 기계소리만 덜컹덜컹 나더니 드디어 16층에 멈추었다.
'말하고 내리는 게 낫겠지? 아닌가? 그냥 조용히 갈까? 그래도 사람이 그러면 안되지. 아 어떡하지 진짜'
"ㅈ.. 죄..."
오빠가 불쑥 말을 가로챘다. "아.. 실수로 버튼을 잘못 눌러서.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였다.
나도 오빠에 묻어가며 고개를 푹 숙여냈다.
그런데 그 두 분이 갑자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고개를 같이 숙였다.
"아.. 아 아뇨 괜찮습니다"
곧 문이 닫히고 나는 크게 한숨을 쉬었다.
예상처럼 거칠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안도감과 할 말을 제때에 하지 못했던 용기 없던 내 모습을 한심해하는 마음으로. 결과적으로 오빠 덕분에 해야 할 말을 하고 나오니 그래도 마음이 편했다.
오빠는 나를 쳐다보고 웃으며 주먹을 불끈 쥐어내고 알밤을 놓는 시늉을 했다.
"근데 엘리베이터 타면 무조건 닫힘 버튼 눌러주는 게 매너지."
"어차피 혼자 닫히는데 조금만 기다리면 안 되나?"
"응 안돼. 기다릴 시간이 없지. 사람들 다 바쁜데"
'몇 초 더 버는 것뿐인데...'
나도 예전에는 승강기에 타면 닫힘 버튼을 누르기에 바빴었다.
그런데 이는 프랑스에 살면서 무뎌진 것 중에 하나였다.
느리게 사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있다.
프랑스의 승강기는 아주 아주 작다. 사람이 따닥따닥 붙어서 타면 3명 정도가 겨우 탈 수 있는 크기이다.
그래서 장을 잔뜩 보고서 이웃을 마주칠 때면 둘 중 한 명이 먼저 가라고 말한다.
그럼 상대방은 "고맙습니다. 승강기 밑으로 내려 보내드릴게요."라고 하는 게 일상이다. 사실 밑에서 누르면 승강기가 스스로 내려오지만 굳이 '내가 내려 보내 준다'라는 능동의 형태를 쓴다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승강기 자체가 아예 없는 곳도 다반사다. 건물마다 다르긴 한데 지금까지 봐온 여러 집들은 보통 이 정도의 크기 거나 조금 더 크거나 훨씬 더 작은 것도 있었다. 대부분의 경우가 여닫이 문을 열어야 그 안에 미닫이 문이 있다는 것도 특이한 점의 하나다. 닫힘 버튼이 없는 곳도 있으며, (지금 사는 집의 경우에는 열림 버튼만 있다) 닫힘 버튼을 눌러도 바로 닫히는 적이 없다.
마치 승강기가 '후' 하고 들숨을 끌어올리고 난 후에 '파'하고 내뱉는 날숨에 작동이 되는 듯이 한참 후에 문이 닫힌다.
프랑스 생활 초기에 승강기를 타던 꼴로 닫힘 버튼을 마구 눌렀는데 함께 탄 이웃 사람이 무슨 급한일이 있냐고 물으며 눈을 찡긋 해 보였다. 그 사람은 나의 사생활이 정말로 궁금해서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서두를 필요 없다'는 의미로 살짝 메시지를 전했다는 것도 정말 잘 파악했다.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한마디였다. 그 뒤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신기하게, 그들은 숫자가 쓰인 버튼 이외에는 손도 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초반에는 느린 프랑스의 승강기의 답답함에 분통이 터져 기다리다가 줄곧 계단으로 내려가버리기도 했다.
상황이 반복되자, 하나의 습관이 되었고 이제는 초조함 없이 잘 기다린다.
인간의 한계치를 늘 시험하는 프랑스라는 나라는 고맙게도(?) 그 인내만은 똑 부러지게 가르쳐줬다.
프랑스에서는 인사를 하지 않으면 오히려 큰일이 난다.
승강기, 계단을 내려가는 도중, 건물 로비 등에서 사방으로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여기에서 주고, 받는 인사는 인간의 기본이며 예의이자 도리이다.
아파트의 건물에 사는 내 이웃이 아닌 잠시 들어오게 된 외부인이더라도 일단 인사를 한다. 잠시 지나가는 우편과 택배 배달원, 전기 검침인, 공사 인부, 수리공, 청소부, 이웃들의 친구들 등 또는 아이든 어른이든 일단 누군가가 있으면 바로 인사를 한다.
생각해보니 보통 우리나라에서는 사람들과 관계, 인사는 수직적이다. 유교문화의 영향 때문인지 상하관계로 구성되어 있어 나이, 직함에 따라 인사를 하면 상대가 받아주는 형태이다. 예를 들어 이웃집 할어버지를 보고 '안녕하세요'라고 했을 때 '안녕하세요'라고 받아치는 어르신보다 '네, 그래요' 또는 고개만 끄덕거리는 경우가 많았다.
또 아이들이 먼저 어른들에게 인사를 하는 경우가 많고, 어른은 '그래, 안녕' 정도로 받는다. 상점이나 음식점을 가면 종업원은 인사를 하고 손님은 주로 받기만 하거나 아예 아무 말도 안 하는 경우도 많다. 개인적으로 이 행동은 사람에 대한 '무시'가 될수 있다고 생각하여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다.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걸까 생각해보다가 독특한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나라에서 인사의 의미가 안녕(安寧), 한자의 '편안할 안', '편안할 녕'을 써서 편안(便安)하고 강녕(康寧)함의 뜻에 '~하세요?'동사를 붙여서 결국에는 정말로 했는지 묻는 의문문의 형태라는 것이 무척이나 흥미롭다.
언젠가 입으로 전해지는 말이라며 적힌 것을 읽었는데, 의학이 발달하지 못했던 옛날에는 밤을 넘기지 못하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는 이들이 많아서 사람을 만나면 밤 사이에 혹시 아프거나 불편했든 무슨 일이 없었는지 묻던 '못본새에 평안하셨냐'는 말이 지금의 '안녕하세요'가 되었다고.
우리나라의 안녕하세요는 서양식으로 의역하면 'are you ok?'와 같은 의미 이기 때문에 주로 '네' 하고 대답을 하는 게 아닐까. 사람 간에 수평관계를 유지하는 서양 문화권에서는 성별, 지위, 나이를 막론하고 '안녕하세요?'를 했을 때 '안녕하세요.'로 받는다.
아무튼 나름대로 인사를 잘하기로 한가닥 했었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실제로 프랑스에 살면서 현지의 사람들이 하듯이 시도 때도 정신없이(?) 의식적으로 정말로 잘하게 되기까지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지하철을 타려고 표를 개찰구에 넣었다. 그런데 '삐'하는 소리와 함께 나의 표가 인식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몇 번을 해보고 옆의 다른 기계로도 했는데 마찬가지였다. 당황하며 어쩌지 하고 있다가 다른 표가 남았는지 확인하니 마지막 표였다. 당시 프랑스어 듣기는 비교적 잘했지만 말은 똑 부러지게 하지 못했다. 심호흡을 한번 하고 옆에 조그마한 창구로 가서 표가 투명한 창 너머로 잘 보일 수 있게 앞세웠다.
막상 말을 하려고 했는데 직원의 얼굴을 보니 두려움이 닥쳤다. 호흡만 거르고 해야 할 말은 거르지 못한 채 무작정 부딪치게 된 것이다. 곧 직원이 무슨 일이냐는 듯이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얼른 말하라는 듯이 고개를 추켜올렸다.
"음... 그... 내 티켓... 음 티켓이... 고장 났어요!"
손에 든 표와 함께 고개를 절래 절래 저어 보였다.
부끄러움이 사무쳐왔다. 이 상황도 설명을 못할 정도로 모자란 실력을 가지고 있었음에 새삼 놀랐다. 변명이라면 프랑스어 회화 책에는 표를 살 때 쓰는 프랑스어는 적혀 있지만, 그 표가 불량일 때 쓰는 프랑스어는 적혀있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던 게 아닐까.(라고 해본다.)
'그 많은 단어 중에 고장이라니.. 진짜 바보 같다.'
어쨌든 뭔가 개떡 같은 말이라도 했으니 찰떡같이 알아들었을까 눈치를 보고 있었는데 창구의 직원이 커다란 눈을 크게 뜨고 눈썹을 이마 끝까지 올리더니 운을 뗐다.
"안녕하세요, 나는 여기서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서요. 인사 먼저 한다면 당신 표 바꿔줄게요."
이 말을 듣고서 내가 알아들은 게 정말 맞나 귀를 의심했다. 완벽한 문장으로 이해는 못했지만 분명히 단어 단어를 연결해 보니 확실히 그 말이었다.
"아아.. 빠흐동.. 봉쥬..."
프랑스어를 유창하게 할 줄 알았다면 얼굴이 빨개지지 않고 여유롭게 "아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급한 마음에 빨리 하려고 하다 보니 헤헤" 라며 웃었을 텐데.
그 뒤로 생각에 잠겼다.
'안녕하세요, 나는 여기서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서요. 인사 먼저 한다면 당신 표 바꿔줄게요.' 래...
'안녕하세요, 나는 여기서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서요. 인사 먼저 한다면 당신 표 바꿔줄게요.'라니...
'안녕하세요, 나는 여기서 일하는 기계가 아니라서요. 인사 먼저 한다면 당신 표 바꿔줄게요.'라고 하다니......
내가 그런 말을 들었다니...
집에 오는 길에 충격적인 상황을 돌이켜보니, 기분이 몹시 상하기도 하면서 그분의 말이 맞기도 해서 그렇기도 하겠다는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사실 애도 아니고 20살이 넘었는데 이런 일로 지적을 받았다는 것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런데 또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하는 게 훨씬 인간적으로 상대를 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 일은 이어 프랑스에서 받게 될 거대한 설움의 서막일 뿐이었다.
동시에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건은 돈 주고도 어디 가서 배우지 못할 '프랑스 문화'편을 야무지게 배운 계기였다.
프랑스에서는 버스를 타면서도 운전기사님에게 무조건 인사를 한다.
가끔 정말 예의 바른(?) 사람은 내릴 때도 아주 큰 소리로 버스가 떠나가라 '안녕히 계세요'하고 내리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 정도의 내공은 없다.
점점 잊혀 가는 '사람 냄새'가 계속해서 나고 있는 프랑스가 대단하다고 느껴진다.
우리 시대에는 많은 것들이 디지털화, 기계화되면서 관계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이 참 많다. 새로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프랑스 사람들에게 무한한 답답함을 느끼지만 이런 인간 중심적이고 이성적인 문화는 반드시 지켜내고 배워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가 오히려 인사에 대해 굉장히 민감해졌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내가 인사를 얼마나 중요시 생각하고 있는지 아주 잘 알고 있다. 직장에서 가끔 사람들이 매일 만나다 보니까 아까도 본 것 같은 느낌이라 그런지 은근슬쩍 업무 이야기로 넘어가거나 또는 일을 하다 보면 정신이 팔려서 생략하고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기억해놓고 "나한테 인사도 안 하고 고맙네?"라고 장난 반 진심 반으로 말하거나 상대가 자연스럽게 인사 없이 어떤 말을 시작하면 일부러 이야기한다.
"근데, 안녕하세요? 네 말씀 계속하세요. 듣고 있어요."
프랑스에 살면서 원래의 본성이 나온 건지, 방어 기질 때문인지 성격이 조금 바뀌었다.
"저것이 프랑스 살더만 어째 더 시큰둥하고 차가워졌당게."
"엄마, 근데 여기 살면 어쩔 수가 없어. 자꾸 그런 식으로 되네. "
엄마 말대로 좋게 말하면 야무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냉랭하고 공격적이다.
줏대 없이 휘말려서 끌려 다니던 한국에 있을 때보다 조금은 이빨을 드러내 보기도 한 프랑에서의 삶이 어쩌면 더 속은 편할지도 모른다. 반면에 (불행히도) 프랑스에 살면 자주 겪게 되는 차별과 같은 문제에 있어서 과하게 예민해진 나를 볼 때면 예전의 유순함이 그리워져서 마음이 안 좋다.
예전에는 조금의 피해는 별것 아니니 넘어가자는 마음가짐이었는데, 지금은 조금이라도 피해를 입게 되는 일이 생기면 절대 가만히 있지를 못한다. 그래서 택시기사와 싸운 적은 세어보면 손가락 열개를 다 접어야 하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한 번은 여행 온 엄마를 옆에 두고 서로 거친 욕을 하며 싸운 적도 있을 정도다. 최대한 조용히 다니는 편인데도 길에서, 또는 마트와 같은 곳에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시시한 일로 시비를 걸고 무시하거나 인종 차별적인 행동이나 발언을 한다면 절대 당하고 있지 않는다.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다 보니 (슬프게도) 방어력이 공격력과 함께 상승했다.
엄마는 항상 걱정한다.
"조심해야지. 너무 그러지 말고 참을 때도 있어야혀. 그 사람이 해코지하면 어떡해. 큰일 나 이놈아."
"안돼. 당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가만히 못 있어."
"아이고 너도 살라고 애쓴다."
"사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거야. 여기서는"
"우리 딸 독해졌당게"
독해지긴 했다.
그래도 독하게 먹은 마음 덕분에 엄마 딸은 프랑스에서 예의 없다는 소리는 안 듣고, 모르는 사람에게 혼이 된통 날 일도 없게 되었다.
인사는 일방적으로 하는 것보다
주고 받으면 훨씬 기분이 좋은 말.
아무리 바빠도 몇 초만 투자하면 싱그러움이 되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