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기다리는 시간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책을 쓴다는 것은 책을 붙잡는 일이 아니라, 결국 세상 밖으로 떠나보내는 일이라는 사실을. 원고를 마감할 때도 잘 몰랐고, 책이 인쇄될 때도 살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책이 세상 밖으로 나가고 나니 작가는 그 자리에서 조용히 남아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책이 세상 밖으로 나가고 나면 작가는 생각보다 할 일이 많지 않다. 원고를 쓸 때는 문장 하나하나를 붙잡고 끙끙거리기도 하고, 며칠씩 머물기도 했는데, 막상 책이 출간되고 나니 이제는 그 책이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고 있을지, 또 어떤 위로를 받고 있을지, 어떤 공감을 불러일으키는지 궁금해지는 시간이 더 많아진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누군가는 책의 첫 장을 넘기고 있을지, 아니면 다 읽고 난 후 마지막 장을 덮고 있을지 모른다.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늦은 밤 거실의 조용한 불빛 아래에서,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시며, 혹은, 지친 하루를 마치고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듯 책장을 넘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생각을 하면 참 묘한 기분이 든다. 내 손에서 떠난 문장들이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하루와 만나고 있다는 사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작가에게는 이미 충분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사실 나는 SNS 활동을 활발히 하는 사람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일도 그다지 잘하는 편이 아니다. 떠들썩한 공간보다는 조용히 글을 쓰는 시간이 더 편하고, 많은 사람에게 한꺼번에 다가가기보다는 어느 날 문득 찾아오는 한 사람과 글로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그래서일까?
조금은 천천히…. 그리고 깊고, 은은하게 여운이 남는 글로 읽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책이란 그런 것 같다. 크게 소리를 내며 다가오기보다 어느 날 문득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내려앉는 것. 그리고 그 조용함이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것. 수많은 글 중에서도 유독 내가 좋아하는 글을 보면 대개 그런 식으로 나의 마음에 닿는 글이었다. 읽는 순간, 크게 흔들리지 않지만, 어느 날 문득 떠오르는 문장…. 시간이 지나도 조용히 마음속에 남아 있는 문장…. 아마도 그래서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시간 속에서 잠시 멈춰 서고 싶었던 순간들,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에게 조용히 기대고 싶었던 마음들. 그런 이야기들을 한 권의 책 안에 담았다. 책은 작가의 손을 떠나는 순간, 더 이상 작가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 된다. 그 책에 담긴 문장 하나하나의 의미가 때론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도 하고, 또 작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며, 어느 순간 조용한 깨달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 나는 조금 특별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책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고 조용히 기다리는 시간이다. 서평이 하나둘씩 올라오기를 기다리는 마음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아마도 이것일 것이다.
“지금쯤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있을까?”
많은 사람에게 닿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어느 날 누군가가 이 책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었구나.”
이 한 문장 같은 마음을 조용히 건넬 수 있다면 이 책은 이미 내 역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차분한 마음으로 이 시간을 지나가 보려 한다. 어딘가에서 이 책을 읽고 있을 그 누군가를 가만히 떠올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