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했으면
괜찮은 부모 아닙니까

기대하지 않고 기댈 수 있는 거리

by 김미영

멀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 무너지지 않기 위해 거리를 배우기 시작했다.

기대는 곧 사랑의 표현이다. 하지만 그 사랑이 지나치면, 어느새 상대를 옭아매는 끈이 되어 버린다. 나는 아이에게 걸었던 수많은 기대를 내려놓으며 비로소 마음의 숨통이 트였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기대는 버려야 할 짐이 아니라, 서로가 스스로 설 수 있을 때 비로소 따뜻하게 기댈 수 있는 마음이라는 걸.

부모가 자식에게 기대를 거는 일은 참 자연스러운 일이다. 마치 나무가 햇빛을 향해 가지를 뻗는 것처럼, 어쩌면 본능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밝은 미래, 더 나은 삶을 위한 바람은 아마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부모의 소망이자 희망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내 아이들을 통해 그 본능이 얼마나 쉽게 아이의 자유를 짓누를 수 있는지, 또 얼마나 잔인한 무게로 변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아직도 잊을 수 없다. 큰딸이 나를 향해 뱉었던 그 말, “엄마가 왜 내 꿈을 좌지우지해.” 그리고 한동안 숨을 고를 수 없었다. 지금까지의 모든 희생과 수고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간섭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으니까. 사실, 어떻게 보면 아이가 스스로의 길을 걸으려 할 때마다 내 마음속에서 떠돌아다니던 불안감이 아이를 자꾸 붙잡으려 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 아이의 그 말은 엄마인 나로부터 기대를 서서히 떼어내는 첫 가위질이었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처음엔 상실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은 뜻밖의 자유로 변했다. 집착에서 풀려난 가벼움, 기대하지 않음에서 오는 평온. 나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었고, 그 자유가 곧 책임과 짝을 이룬다는 사실을 분명히 일러주었다.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감당하는 것. 그게 바로 성장으로 가는 길일 테니까. 다만, 경제적 지원만큼은 아이들이 독립하기 전까지 부모의 몫이라고 생각하기에 가능한 한 지원을 해주려고 노력했다. 대신 그 너머의 삶은 온전히 아이들 몫으로 남겨두었다.

이렇듯 기대를 내려놓자 놀라운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 시작은 딸이 고등학교, 대학교에서의 전공 과목을 스스로 선택했고, 이후 엄마인 나를 데리고 대만으로 자유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곳에서도 모든 스케줄을 혼자 다 감당해 내면서 결국 3박 4일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스페인 교환학생 준비를 혼자서 척척 해내고 있는 과정인데, 경제적 지원만큼은 부모가 도움을 주기로 했다. 이 모든 과정이 딸의 선택이었고, 또 딸의 발걸음이었다.

이처럼 부모가 한발 물러난 자리에서 아이는 스스로를 일으켜 세웠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며 참 많은 생각이 들었다. 부모가 아이에게 기대를 덜수록 아이는 자기 자신에게 더 크게 기댄다는 사실을.

아들의 경우는 또 달랐다. 그의 사춘기는 게임중독이라는 얼굴로 다가왔다. 방 안에 틀어박혀 온종일 모니터 속 세계에 빠져 있는 모습을 볼 때마다 차마 미래에 대한 기대조차 할 수 없었다. 부모의 모든 개입은 반발로 돌아왔고, 어느 순간, 아이에게 간섭할 힘조차 잃고 말았다. 그리고 동시에 내 삶조차도 피폐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살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오롯이 나만 바라보기로 했다. 지인들과 만나 외곽으로 드라이브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고, 자기 계발에도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아이의 삶에 나를 가두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로서의 역할을 내려놓은 건 아니었다. 단지 옆집 아이 대하듯 했을 뿐이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이 스스로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스스로 몸을 관리하며 비만의 껍질을 벗어내더니, 자기 성향을 분석하며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아갔다. 그리고 결국 명문대에 합격했을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부모의 기대가 사라진 자리에, 아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세워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아마도 부모가 계속 아이의 일에 개입하고, 기대하고, 상관했었다면 결코 만나지 못했을 결과였던 것이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부모의 기대는 때로 아이의 숨통을 조이는 족쇄가 된다. 하지만 기대를 내려놓은 자리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다시 채워지기도 한다. 물론 아이들이 다 책임을 짊어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부모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신호를 받으며 자기 길을 개척해 나간다는 것이다. 게다가 자식은 부모의 기대를 벗어난 온전한 자유 속에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기약 없는 공백 기간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부모의 입장은 숨이 막힌다. 자식을 향한 부모의 기다림... 그래서 그 기다림은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사랑이 아닐까 싶다.

“사람은 스스로 버티는 힘을 가질 때, 비로소 타인에게 기댈 수 있다.” 이 문장은 인간 관계에 있어서 깊은 깨달음을 준다. 아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에 나도 언젠가 그들에게 기댈 수 있음을 꿈꾸게 된다. 기대하지 않음 속에서 기댈 순간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부모의 긴 여정이자, 성숙한 사랑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또 이런 문장도 있다. “기대는 실망을 낳고, 내려놓음은 자유를 낳는다.” 실제로 부모로서 기대를 내려놓으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집착이 사라지고, 자유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자유는 나에게 평안을 가져다주었고, 아이들에게는 자기 삶을 개척할 숨구멍이 되어주었다.

언젠가 아이들이 단단히 홀로 서는 날이 오면 그때는 내가 기대어 보려 한다. 다만 기댄다는 것은 의존이 아니라, 의지가 될 것이다. 아이들 어깨에 무거운 짐을 얹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벼운 속삭임으로 “든든한 너희들이 있어서 참 좋다”라고 전하는 사랑의 메시지다. 기대를 포기한 자리가, 오히려 서로 기대어 설 수 있는 자리가 된다는 것. 나는 나의 아이들을 통해서 그 값진 자리를 배울 수 있었다.

혹시 당신도 누군가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고 있지 않은가.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뀔 때, 마음 한켠이 텅 비어버린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빈자리는 실패가 아니라, 관계가 다시 숨 쉴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평온, 그리고 그 평온 위에서 다시 연결되는 따뜻함. 그곳이 바로 부모와 자식이 진짜 어른으로 마주 설 수 있는 자리일지도 모른다.


<이 문장 앞에서>

기대를 내려놓은 자리에 오히려 서로 기댈 수 있는 여지가 남는다.


<함께 살아가는 연습>

기대는 관계의 무게를 늘리고, 신뢰는 그 무게를 덜어준다. 모든 걸 함께 할 수는 없지만, 함께 있어 줄 수는 있다. 필요한 순간에 손을 내미는 용기보다 더 단단한 신뢰는 없다. 서로의 생각을 존중할수록 의지도, 독립심도 함께 자란다.


1. “네가 해줬으면 좋겠어”라는 말 대신 “이건 내 몫이지만, 네 생각은 어때?”라고 묻는다.

2. 자녀에게 도움을 요청할 땐 감정보다 상황을 솔직히 설명한다.

3. 기대를 줄이면 감사의 빈도가 높아진다.

4. 도움을 받았을 땐 “고맙다” 이상의 진심을 표현한다.

5. “이건 네가 해줘야 해”가 아닌, “이건 함께하면 좋겠어”의 톤으로 말한다.

6. 의존보다 교류로서의 기대를 연습한다.

7. 부탁은 짧게, 고마움은 길게. 관계의 온도는 그 순서에서 결정된다.

작가의 이전글이만큼 했으면 괜찮은 부모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