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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비 Apr 09. 2024

가족과 함께 밥을 먹을 때 어떤 이야기를 나누시나요

작동 먹자 골목에서

아빠가 엄마의 젖은 머리를 드라이기로 말려주면서 나누는(둘만 들릴 것 이라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드라이기 소리와 함께 웅웅거리는 소리로 들리기 시작한다.


'왜 집안일을 남자가 도와준다고 말을 하는거냐 는거야. 같이 하는 것 인데. 요즘은 도와준다고 하는게 아니라 같이 하는 거라고......'



어느 티비 프로그램에서 들은 것을 그대로 전달해서 아빠한테 얘기해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요즘 시대는 많이 변했으니 요즘 남자들처럼 집안일 좀 도와봐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이번엔 드라이기 소리에 묻혀서 아빠가 그 다음에 뭐라고 했는지는 들을 수 없어서 이게 참 아쉬웠는데 아무튼 뭐라고 답을 한 것 같다. 엄마가 말한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어느 박사가 이야기한거라니까. 남자 박사가 그러더라고'




우리 가족에게는 아마도 이제는 어떤 의미도 감흥도 사라져버린, 설날이 하루 지난 다음 날 아침. 내가 일어나자마자 들은 대화다. 오늘은 곧 점심을 먹으러 다같이 외식을 하기로 한 날이다. 각자의 생일이나 명절, 아니면 어버이날이나 연말 같은 그런 특별한 기념 행사가 있어야 우리 가족은 모처럼 다 같이 모여보기로 어색하게 약속을 잡아본다.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으로. 한 지붕에 같이 사는 우리 가족은 그렇게 약속을 잡는다.






아마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아니더라도 너무 어려서 기억도 잘 안나는 그 나이 쯤에, 오늘 같이 시간을 내서 우리 가족이 종종 찾아가던 먹자 골목 이라 부르는 곳이 있다. 서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는데 차로 10분도 채 걸리지 않는 작동 쪽에 있는 먹자 골목이다. 오늘같이 외식하는 날이면 엄마 아빠는 남동생과 나를 데리고 이 곳에 오래 전부터 찾아온 것 같다.




골목 초입에 들어가면 바로 정면에 산채보리밥 이라 적혀있는 식당이 크게 보이고 그 왼쪽에는 손칼국수 집이 바로 붙어있다. 두 집 다 이 곳을 대표하는 맛집인 듯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는데 주변에 다른 식당들이 많이 있지는 않다.


엄마가 칼국수집으로 가자고 해서 그 집 앞으로 차 앞꽁무니를 슬슬 비추며 분위기를 살폈다. 동생이 웨이팅이 있는지 확인하러 내렸고 뭘 물어보고 있는건지 꽤 시간이 지나 돌아오는데 직원이 퉁명스럽게 알려줬다며 퉁명해진 말투로 앞에 13팀이 있다고 한다. 약을 안먹어서 허리 아파 죽겠다는 엄마는 그냥 옆에 있는 산채보리밥 집으로 바로 들어가자고 한다.






말이 많고 쾌활하며 친구도 늘 많은 것 같고 대화도 자연스럽게 잘 하는 것 같은, 나랑 달라서 고마운 동생 덕분에 동생이 껴있는 가족과 같이 있으면 나는 마음이 놓인다. 사실 나는 출발하기도 전부터 이미 마음이 삐딱해져있었다.



나는 밖에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말하는 법을 잊는다. 무뚝뚝한 첫째 딸. 말이 없고 애교도 없는 큰 딸.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딸. 왠지 어려운 딸. 그런 딸이 여기 이 가족 가까이에 여기 이 집 안에서 숨만 붙어있는 유령처럼 돌아다닌다.






맛있네. 이것도 좀 먹어봐. 배부르다. 정도의 대화들을 기분 좋게(여기까지는) 나누며 밥을 다 먹고서, 동생이 2차로 카페에 가서 다같이 커피 한 잔을 신청한다.


할 이야기도 없는데..... 라는 생각부터 들어버리지만 얼른 무시한다. 단지 어색할 뿐이지 사이의 문제가 없는, 평범하고 단란한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우리 가족은 아무튼 내가 밥을 다 먹고 급하게 검색해서 알아본 근처의 조용하고 괜찮아보이는 카페로 향했다.




카페는 기대했던 만큼보다 더 좋았다. 카페로 들어가는 길이 좁았었는데 차 안에 사공이 많아 시끄러워지기는 했어도 아무튼 카페는 조용했고 근사했다. 설 연휴라 그런지 가족끼리 온 테이블이 대부분이었고 운 좋게 자리를 잡았다.


시끌벅적하게 각자 메뉴를 고르고, 굉장히 정성스러운 맛이 느껴지는 맛있는 커피와 케이크를 받은 뒤 이제 대화다운 대화를 시작해보자는 것 같은 분위기의 그 타이밍에 나는 결국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너 나이 정도 되면은 ---만원 정도는 있었어야지..... 자취하고 싶다면서 지금 그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있는거 아니야....'




악의를 가지고 말하지 않아도 악의로 받아들이기 쉬우며(때로는 악의를 가지고 상처 내기 위해 긁기도 하며), 이만큼의 받은 걱정을 저만큼의 오해로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어째 피로 끈끈하고 진하게도 연결되어있는 가족 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는 이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건 다른 사람들이고. 난 나인데 왜 또 비교를 해. 이제 모을거야.'

'어디 그때 가서 내가 한번 지켜볼게.'

'엄마가 왜 그때 가서 지켜봐? 내 인생인데.'



세상에서 가장 싸늘한 목소리로 엄마가 낸 목소리보다 더 크게 소리를 치는 것으로 상황은 순식간에 끝이 난다. 결국, 끝끝내 결국. 혼자서 뭘 그렇게 참고 참아대며 구겨놓은 종이 조각 같은 것들을 죄 없는 엄마한테 던져버리고 만다.






동생이 주제를 바꾼다. 자연스럽게 넘어갈 줄 아는 재주가 있는 동생이 늘 고맙고 든든하고 미안하다. 자연스럽게 넘어갈 줄 모르는 나는 이제 말을 닫아버리기로 한다. 고개를 푹 숙이고서 핸드폰을 꺼내 괜히 유튜브를 틀어놓고 뭐라고 하는지 들리지도 않는 소리를 그냥 듣는 척 하며 대놓고 불효를 저지른다.




엄마와 동생 둘이서 한참 이야기를 이어서 나누고, 아빠는 이따금씩 그 이야기에 꼈다가 다시 핸드폰을 보다가 그렇게 앉아있다. 마지막에는 결국 가장 큰 걱정거리인 나를 향해 엄마가 조용히 손짓하며 아빠에게 눈치를 보낸다. 바로 옆에 있기에 모를 수가 없다.




'좀 물어봐... 앞으로 뭐 어떡할건지.......'

'뭘 그런걸 물어봐....'

'엄마, 나는 엄마가 그런거 물어볼 때가 제일 어이가 없었어. 아직 뭐 말할게 없는데 뭘 자꾸 물어보는거야.괜히 스트레스야.'


아빠가 말하고 동생이 거든다. 다 듣고 있으면서 못들은 척 앉아있는 내가 내 모습을 보기 힘들어서 빨리 나가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나와서 혼자 카페나 가야지, 집에는 오늘 못있겠다.






내가 이상한 건가 하는 생각을 또, 한다. 아직도 그런 허무맹랑한 꿈을 꾸고 있는걸까. 종종 불안할 때가 있어도 결국 잘 될거라는 자신만만하고 기세등등 해지던 그런 근자감 같은 것이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면 다시 불안 속으로 추락해버린다.

꼭 성공해서 효도하고 말겠다는 뜨거운 다짐 반. 근데 이게 정말로 이루어지기는 하는걸까 하는 미적지근한 의심 반.




엄마가 하는 이야기들이 불편했다.


'(동생에게)너 친구 걔는 연봉이 그래서 얼만데?'

'어느 직장인데? 걔는 대학도 거기 나왔던 애이지'

'괜히 주변 사람들 어떻게 살고 있는지 들여다보고 있으면 스트레스야'



드라마나 책에서 흔하게도 나오는 저런 종류 것들의 단어들이 섞인 그런 대화들이 바로 내 앞에서 펼쳐진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잠깐 졸았다. 밖으로 나가있지는 못할 것 같다. 그냥 방에서 잠이나 자야겠다.




집 앞에 도착해서 혼자만 차에서 내렸다. 셋이서 차 문제로 볼게 있는 것 같아서 나 혼자 올라오는데 현관문을 열고 비어있는 집에 들어서자마자 갑자기 눈물이 떨어졌다. 왜 문을 연 바로 그 순간에 코코가 보였을까.(코코는 3년 전에 무지개 다리로 먼저 건너간 내가 사랑하는 강아지 이름이다)


멀리서 걸어오는 발소리가 시작되면 그 사막 여우 같은 작고 귀여운 귀를 쫑긋 세운 채 곧 문이 열리자마자 종종 걸음으로 흥분하며 달려오는 코코의 모습이 갑자기 눈에 선명하게 그러졌다. 가슴 깊이 사랑하는, 가슴 깊이 미안한, 죄스럽고 미안한 추억 밖에 주지 못한 사랑하는 코코.




대충 씻고 옷을 갈아입고 누웠다.

보고 있었던 영화를 마저 켰다. 금방 졸린 눈이 되어 멍하니 보다가 끄고 눈을 감았다.

시간은 오후 다섯시였고 다시 눈을 뜨니(중간에 한 번 눈을 뜨기는 했지만 시간만을 확인하고 곧바로 다시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새벽 다섯시가 되어있었다. 오늘은 일찍 하루를 시작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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