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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근몬스터 Dec 27. 2021

08. 티모시, 그리고 티모시

자꾸 자꾸 보고 싶은 배우

얼마 전 극장에서 <듄>을 봤다. 극장에서 개봉한지는 꽤 돼었지만 기필코 CGV 용산 아이맥스로 봐야겠다는 집념 하나로 기다리고 또 기다렸던 탓이다. (이런 내가 가끔은 좀 지독하게 느껴진다...) 엄청나게 크고 방대한 세계관과 압도적인 비주얼, 웅장한 음악에 나는 압도되었고, 특히 주인공 '폴' 역을 맡은 티모시 샬라메에 다시 한 번 반해버렸다. 큰 스크린에 티모시 샬라메의 얼굴이 꽉 들어찰 때마다 나는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고, 많은 사람들은 아마 나와 똑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사실 그는 정석적으로 '잘 생긴' 배우는 아니다. 흔히 '잘 생겼다' 말하는 기준은 마치 깎아놓은 것처럼 또렷하고 진하게 생긴 외모일텐데, 티모시 샬라메는 확실히 그런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배우들 못지 않게, 때는 더욱 뇌리에 남는 분위기를 가진 배우다. 돌이켜 보니 그가 주연한 작품들을 꽤 많이 봤고, 그 중 한 두 편은 내가 직접 마케팅도 했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해서 나 혼자 보기 아까운 티모시 샬라메의 주연작들을 말해보려 한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2018 


티모시 샬라메의 필모그래피에서 이 영화를 뺄 수 있을까?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나 또한 이 영화를 보고 '티모시 샬라메란 배우 미쳤구나'라고 생각했었고,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영화판에서 거의 '티모시 신드롬'을 일으킨 수준이었다. 

이 영화의 진짜는 엔딩이다. 올리버를 정말 사랑했던 엘리오는 그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고 모닥불 앞에 앉는다. 영화의 테마곡과 함께 스크린을 꽉 장식하는 티모시 샬라메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아직 보지 않으신 분들이 있다면 강추 (물론 주연인 '아미 해머'는 다소 흐린 눈이 필요하다...) 


<듄>, 2021


'폴 아트레이더스' 역에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티모시를 캐스팅한 드니 빌뇌브 감독의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 주인공 '폴'은 아트레이더스 가문의 후계자로써 전 우주를 구원할 운명을 타고난 인물이다. 하지만 그런 인물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면 자기 자신이 엄청난 존재라는 것을 그렇게 믿지 않으며, 항상 자신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고 그 운명이 내 운명이 맞는지 확신하지 않고 흔들린다. 

티모시는 그런 엄청난 운명을 가진 '폴'이라는 인물의 내면을 섬세하게 잘 표현했으며, 거대한 서사 속에서 꺾이지 않는 특유의 존재감을 뿜어낸다. 의상과 헤어 스타일, 어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찰떡 같이 소화해냈음은 덤이다. 


<뷰티풀 보이>, 2019


티모시는 <뷰티풀 보이>에서 마약 중독자인 소년 '닉'을 연기했다. 아버지인 '데이비드'는 스티브 카렐이 맡았는데, 연기 존잘과 연기 존잘이 만났으니 그냥 믿고 보는 것이다. 

'닉'은 총명하고 뛰어난 소년이었으나 열두 살때부터 마약에 손을 대고 그것을 끊지 못한다. 치료를 위한 시설에도 들어가고, 잠시동안 끊기도 하지만 정말 그것은 잠시일 뿐. 피폐함과 퇴폐적의 어디쯤 가운데에 있는 '닉'은 티모시가 아니면 누가 연기했을까 싶다. 착 가라앉은 차분한 티모시 샬라메를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작은 아씨들>, 2020


엠마 왓슨부터 시얼샤 로넌, 플로렌스 퓨, 엘리자 스캔런 같은 쟁쟁한 배우들이 출연한 <작은 아씨들>에서 티모시는 '조'(시얼샤 로넌)를 좋아하는 옆집 소년 '로리' 역으로 등장한다. 여성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돈 많은 남성과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야 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대, '조'는 그런 여성상을 거부하며 자신이 쓰고 싶은 글을 쓴다. 로리는 그런 조를 응원하며 항상 곁에 있고, 그녀를 위한 마음을 꾸준히 표현한다. 

'조'를 향한 '로리'의 사랑은 오랫동안 지속된다. 조를 바라보는 로리의 눈빛은 그저 완벽하다. (위의 스틸만 봐도...느껴지지 않나) '로리'라는 캐릭터와 갸날프고 섬세해 보이는 티모시의 얼굴은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티모시와는 별개로 영화 또한 너무 좋으니 추천


<미스 스티븐스>, 2019


극 중 티모시는 연기에 특별한 재능이 있지만, 학교에 순응하지 않는 요주의 인물 '빌리' 역을 맡았다. 영화는 빌리와 마고, 샘, 그리고 영어 선생님인 '스티븐스'가 함께 주말 3일 동안 열리는 연극 대회에 참가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았다. 

선생님인 스티븐스는 학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지도자의 위치이지만, 아픔을 가지고 있고 빌리는 그녀의 아픔을 알아채고 위로하려 한다. 이들이 참여하는 것은 연극 무대이지만 사실상 그들은 인생이란 연극 속 저마다의 사정을 가진 배역들이고, 3일 동안의 연극 대회는 그들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일종의 전환점 같은 역할을 하게 된다.

"내가 기쁘게 해 줄 방법을 아는데, 저한테 자꾸 가라고만 하셨잖아요?"라는 대사를 내뱉는 티모시를 보지 않는 건... 그에 대한 유죄일지도... 




마찬가지로 최근에 본 <프렌치 디스패치>도 굉장히 좋았지만, 티모시의 분량이 많지는 않아서 제외했다. 하지만 매 작품마다 본인의 매력으로 완벽하게 배역을 소화하는 이 '티모시 샬라메'란 배우는, 더욱 큰 일(?)을 할 배우임이 틀림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나는 크게 좋아하는 외국 남자 배우가 없는 편이었는데 (TMI. 여자 배우는 케이트 블란쳇을 좋아한다) 앞으로 누가 물어본다면 티모시 샬라메를 꼽지 않을까? 나는 이미지가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배우가 좋다. 그런 면에서 티모시 샬라메는 완벽한 배우인 것 같다. 아직까지 보지 못한 그의 필모그래피를 마저 부숴야겠다! <돈 룩 업>과 <레이니 데이 인 뉴욕>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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