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크림>
하필 버스를 탔는데 만원버스였고, 하필 에어컨 바람이 미적지근했다. 끓어오르는 불쾌지수를 가까스로 억누르고 내리니 습기 가득 머금은 뜨끈한 열기가 그대로 몸에 달라붙는다. 몇 걸음 걷자마자 순식간에 땀 투성이가 됐다. 샤워하고 싶다. 얼른 이 옷가지를 벗어던지고 싶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이 너무 먹고 싶다.
집에 아이스크림이 있었던가. 어젯밤 마지막 남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박스를 털어버린 기억이 난다. 하나 사서 가야겠다. 송골송골 땀이 맺힌 채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갔다. 고민없이 고른 건 셀렉션이다. 우리집 냉동실의 필수품. 여름이고 겨울이고 늘상 냉동실 한 켠을 차지하고 있는 메뉴다. 셀렉션의 바코드를 찍으니 5500원이 뜬다. 5500원? 5500원이라고? 항상 냉장고를 채워넣는 건 엄마와 아빠의 몫이라 셀렉션 한 통의 가격을 잘 몰랐다. 아이스크림 할인점이라며? 이거 할인된 금액 맞아? 믿기 힘든 가격에 괜히 아이스크림을 한 번 들었다 놓았다. 그 순간 다른 손님이 아이스크림 가게의 문을 열었고, 순식간에 훅 더운 열기가 느껴진다. 아이스크림 냉동고앞에 있다보니 잠시 바깥의 더위를 잊고 있었다. 아직 집에 가려면 조금 더 남았으니 얼른 계산하고 가게를 나왔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집에 올라가며 고민했다. 하나 먹고 씻을까? 아니면 샤워하고 먹을까? 고민하는 내내 갈증이 났다. 그래. 지금은 아이스크림의 순간이 아니라 냉수의 순간이다. 최고로 맛있는 셀렉션을 먹기 위해 조금 더 참기로 한다. 지금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시원한 달콤함마저 텁텁하고 눅눅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후다닥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땀에 절은 몸을 깨끗히 씻고나니 다시 태어난 것마냥 몸이 가벼웠다. 머리를 대충 말린 후 남은 물기는 창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맡기기로 했다. 그리고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아까 아껴뒀던 셀렉션 상자를 열었다. 한입 베어무는 순간 달콤한 초코가 입안에 가득 퍼졌다. 정말로 달콤하고 시원했다. 텁텁함과 끈적거림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다. 머리가 찌릿하도록 강렬한 아이스크림이었다.
몇 입 먹으니 어느새 나무막대밖에 남지 않았다. 다시 냉장고 문을 열고 새 것을 꺼낸다. 앉은자리에서 셀렉션을 두 개나 까먹은 적은 거의 없는데, 정말이지 이 날의 아이스크림은 그 어떤 음식보다 맛있었다.
두번째 셀렉션을 먹는 속도는 조금 느려졌다. 그러다보니 아까 못다한 생각이 다시 이어진다. 어릴 땐 셀렉션이 얼마였더라? 흔히 먹는 메로나, 스크류바, 빠삐코보다는 비쌌던 것 같다. 셀렉션과 엑설런트는 꽤 귀한 아이스크림이었는데. 그러고보니, 엑설런트를 안 먹은지도 정말 오래됐네. 다음엔 엑설런트를 사 먹어봐야겠다. 가격보고 놀라 자빠지는 거 아닌가 몰라. 의식의 흐름이 이어지다보니 어느새 두번째 나무막대가 나타났다. 여전히 기분좋은 달콤함이 입안에 남아 있다.
덩그러니 남은 나무막대를 쓰레기통에 버린 뒤 침대에 누웠다. 올 여름 먹었던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이었다. 아까먹은 저녁은 기억도 나지 않을 만큼 말이다. 아주 단잠에 들 것 같은 여름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