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아키 Jul 17. 2023

스크류바, 월드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아이스크림>

역시 아이스크림을 가장 자주 사 먹었던 때는 초등학교 다닐 적 여름날 하굣길에서였다. 주머니에 꼬깃 가져간 1000원짜리 지폐를 손에 쥐고 슈퍼에 들어가 냉동고를 열어젖혔다. 뜨거운 땡볕이 아이스크림 하나 있으면 그나마 견딜만했다. 여러 아이스크림 중에서 스크류바를 집어 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7분에서 10분 남짓이었는데, 그렇게 걷는 기간 동안 나는 스크류바를 열심히도 먹었다. 친구와 함께 먹는 날도 있었고, 혼자 먹는 날도 있었다. 이가 시린 느낌이 싫어서 씹어먹지 않고 스크류바는 이름처럼 손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빙빙 돌리며 빨아먹어야 제맛이었다. 지금의 스크류바는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빨간 색소가 그대로 입술과 혀에 물들어 버리곤 했다. (그땐 죠스바를 먹어도 입술과 혀가 파랗게 물들었다.) 호로록, 호로록, 마치 연필 끝처럼 스크류바를 뾰족하게 만들었다.



가끔씩은 담임 선생님이 아이스크림을 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땐 비싼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어서 월드콘을 사다 달라고 했다. 심부름을 자처하며 쪼르르 선생님 돈을 들고 슈퍼로 달려가기도 했다. 죠스바, 수박바, 더위사냥, 뽕따 같은 아이스크림들을 검은 봉투에 잔뜩 담았다. 그중에서도 월드콘은 비싼 아이스크림에 속했다. 다른 아이스크림들이 300원일 때, 월드콘은 500원이었으니까. (굉장히 옛날이야기 같다. 그런데 옛날이 맞긴 맞다.)


월드콘의 매력은 아이스크림을 거의 다 먹었을 즈음 만나게 되는 플라스틱 고깔에 있다. 플라스틱 고깔 안에는 아이스크림보다도 초콜릿이 들어있었는데, 월드콘은 결국 나에게 초콜릿까지 가는 여정과 같았다. 다른 친구들은 그 꼬다리가 싫다며 나를 주기도 했는데, 그럼 난 또 그게 좋기도 했다. (순서는 다르지만 뽕따 꼬다리도 좋아했다.)



얼마 전에는 선물 받은 기프티콘으로 배스킨라빈스의 아이스크림을 배달시켰다. 아이스크림을 사 먹어도 이제는 젤라토라던지, 아니면 아포가토 정도 아니면 먹게 되는 일이 없어져서 배스킨라빈스는 아주 오랜만이었다. 메뉴를 쭉 내려보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아직도 있었다. 당시에는 신제품이었지만, 지금은 클래식 같은 메뉴가 되어버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담았다. '엄마는 외계인'도 담았다.


배스킨라빈스에 새 메뉴가 나왔다고 먹어보러 가던 때도 있었다. 그때의 클래식은 '베리베리 스트로베리'라던지, '망고탱고' 같은 것들이었는데 지금은 이름만 봐서는 무슨 맛인지 모를 메뉴들도 잔뜩 나왔다. 배달받은 배스킨라빈스는 회사 냉장고로 들어갔다. 3시에서 5시 사이, 출출해졌을 때 배스킨라빈스와 숟가락을 기세등등하게 꺼낸다. 아이스크림을 책상에 올려놓고 화면을 노려보며 퍼먹기 시작하면, 왠지 단맛 때문인지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요샌 너무 달아서 한 번에 왕창 먹을 수는 없어졌다. 추억으로 먹는 것 같기도.

매거진의 이전글 찰나의 행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